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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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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날, 이 블로그에서 몇 차례 투덜댄 적 있는 예의 그 교수 수업이 있었다.

이전 수업 시간에 민노당과 무려 민주당을 놓고 '둘 다 좌파 정당임ㅋ' '한국 사회의 분열은 북한의 음모ㅇㅇ' 같은 소리를 할 때부터 이미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라갔다. 참다 못해 몇 마디 했지만 '니가 어려서 뭘 모름' '훗 하여간 철없는 이상주의에 쩐 대학생이란' 식의 소리만 들었다. 

그 교수의 정견을 수정해 놓겠다는 식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나 자신도 올바름으로 이뤄져 있다거나 한 건 결코 아니고, 나이가 들고 젊은 시절부터 보고 들은 게 전부 그런 식이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그것이 개인의 정견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진실인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문제다. 

지각이나 결석 등 이래저래 교수한테 안 좋게 보일 거리도 좀 있고, 저번에는 내가 좀 무례했다는 생각도 들어서 왠만해서는 참으려고 했는데.... 목요일날 유성 기업 자동차 노조 파업 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거기 노동자들 연봉이 대단하거든요? 그런데도 야근이 끊이질 않으니까, 그 돈 안 받고서라도 좀 쉬고 싶다고 파업한 거에요. 물론 힘들기야 하겠죠. 하지만 그 직장도 없어서 고생하는 실업자들이 한 둘이 아니거든요? 여러분들 취직 고민되죠? 여러분들이 보기에 좀 그렇지 않아요? 게다가 유성 기업에서 생산하는 피스톤링이 국내 자동차 생산업체 공급 점유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파업 때문에 현대 같은 기업들이 큰 손해를 봤어요. 거기 노동자들이 죽창이나 쇠파이프 같은 거 안 휘두르고 드러눕는 정도로 평화시위한 것까지는 높게 평가해줄 수도 있지만 국익이 훼손된다고요. 여러분들도 노동자 관점에서만 보지 말고, 기업주 입장도 좀 헤아릴 수 있는 '폭넓고 균형잡힌 시야'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무상급식 같은 파퓰리즘에 휘둘리지 말고."

플러스 알파.

"여러분들도 정치나 사회에 관심 좀 가지세요, 늘 멍하니 학교에서 시간만 때우다가 수업 끝나면 술 마시러가고 피시방 가고 하지 말고. 그런 식으로 살면 루저 밖에 못 되요. 승리해야죠, 안 그래요? 인생의 패배자가 되고 싶어요? 제가 말이 좀 지나치긴 한데, 충격 요법을 좀 써봤습니다. 정신들 차리라고."

아아, 그러쿠나... 노동자 관점에서만 보면 편향적이니 기업주 입장도 헤아려야 하는 것이어쿠나.... 인생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되는 것이어쿠나......

...........

내가 왜

-_-

이미 안드로메다에 가 있던 어이가 다시 시동을 걸더니만 급가속해 전력으로 오리온을 천원돌파하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태클 걸 곳이 많아서 어디서부터 걸어야할지 모르겠어, 이건 뭐 총체적 난국이군요?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웃을까? 웃어야 하는 건가? 응응응?

....경쟁 체제는 그 정의 상 본질적으로 '승자'는 소수이며, '패자'는 다수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출발선의 위치 자체가 너무나도 현격히 차이가 나면 그 가능성은 더욱 감소하고,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은 이미 고착화되어 가고 있다. 승자는 패자가 존재하기에, 자신이 쌓아온 희생자들의 시체를 딛고 있기에 그 승리를 잡을 수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삶의 목적은 고통과 희망으로 가득한 삶 그 자체를 누리는 것이지 승리가 아니다.

기업주 입장도 생각해야 한다라, 국익이라. 그 노동자들도, 그리고 곧 졸업을 앞두고 있는 나도 명백한 '약자'다. 이건 뭐 쥐가 고양이 생각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 고양이가 최소한 쥐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가능한 생존을 위해 최소한만 쥐를 먹으려고 하고, 쥐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다면-예컨데, 이웃집의 사납고 그저 재미삼아 쥐 사냥을 하는 고양이와 맞서 싸운다거나- 그럴 수도 있다('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가 아무리 관대하다 해도 그 고양이의 새끼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익을 내는 것이 존재 의의인 기업이 퍽이나 그러겠다. 게다가 뭐, 국이익? 그 알량한 국익이 국민들한테 얼마나 돌아갔는데!? 양극화만 심화됐을 뿐이지.

폭넓고 균형잡힌 시야, 물론 중요한 거다. 하지만 그게 적절한 사안이 있고 아닌 사안이 있다. 교수의 논리는 전제 자체가 글러 먹었다.


결정적으로 내가 빡치는 건, 취직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을 학생들에게 자신의 논리를 강화시키기 위해 '너희도 취직하고 싶은데 고액 연봉받는 노동자들이 파업 같은 거 하면 아니꼽지 않냐'라는 식의 비겁하고 교활한 화법을 씀으로써 학생들이 그 노동자들에게 공감하고, 약자로서의 연대를 이룰 가능성을 차단하려고 했다는 거다.


더 이상은 못 참아주겠다. 학기도 거의 끝나가고, 조금만 입다물고 있으면 교수가 내게 괘씸죄를 적용하지 않은 한에야 그럭저럭 B정도는 받고 마무리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더는 아니다. 그 교수가 오직 그 교수에게만 배울 수 있는 독보적이고 특별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작자하고 한 강의실에 있다는 것 자체가 견딜 수 없이 짜증난다. 차라리 학점 포기를 하고 다음 학기에 교양 하나 더 듣고 만다 썅. 또 그런 교수를 만난다면 대략 시발 망했어요 되는 거지만 이번 학기 참는다고 해서 그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게 만일 회사였고, 인사권을 쥔 상사가 저런 소리를 했다면 나 역시 참을 수 밖에 없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아직 대학생이고, 교양과목 교수가 내게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은 F를 띄우는 것 뿐이다. 받아주지 망할, 알량한 학점 몇 점 때문에 신념을 팔아치울 것 같냐. 아니, 이건 신념 이전에 내 자존심의 문제다. 자기 논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렇게 비열한 화법까지 쓰는 상대에게까지 굽신거리고 싶지는 않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