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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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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간단했다. 중요한 건 대의였다. 작가에게는 사소하건 거창하건 간에 자신의 신념이, 대의가 있어야 한다. 작가에게는 반드시 말해야만 하는 중요한 것이 있어야만 하고, 반드시 써야만(I must) 하는 글이 있어야 한다. 유명한 작가가 된다는 것은 그러한 신념을 충실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밀어 붙였을 때 나오는 효과 내지 성과의 일부분이거나, 그러한 신념을 완수하기 위한 전략이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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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첫날, 교수님이 나를 연구실로 불렀다. 이전부터 내 소설을 상당히 좋게 평가해 주셨던 분이고, 개인적으로도 존경하고 있던 분이지만 주임 교수와 학부생이라는 관계는 썩 편안한 게 되지 못한다. 약간 긴장한 채 앉아 있는 내게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자네는 매우 특별한 종류의 재능을 가지고 있어. 다듬어 지지 않은 원석 같달까. 그저 마지 못해 학과에 남아 있고, 얼른 졸업해 '평범한' 직장을 잡으려는 대부분의 다른 학생들과는 달라. 하지만 자네 소설에는 예술성이 부족해. 소설을 쓰면서 '정의'를 이야기해 본 적이 있나? '화합'을 이야기해 본 적이 있나? '관용'을 이야기해 본 적이 있나? (발상의 독창성이나 소재 선택의 특이성은 됐고) 지금 자네에게 필요한 건 그거야."

그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죄송합니다만 교수님, 지금 제가 쓰고 있는 건 증오와 투쟁과 불신과 절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제 안에서 '쓰라'라고 명령하고 있는 무언가- 제1 원리가 지금 저에게 요구하고 있는 건 그런 소설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네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나는 그에 따를 마음이 없었다. 일단 나는, 내 안의 그 정언명령을 수행하는 게 먼저였다. 그러나 나는 그 때도 단순히 '내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쓰겠다'라는 생각이 먼저 였을 뿐 저 글에서처럼 '문단에 대한, 그리고 독자에 대한 작가로서의 주체성 확보'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저 글을 쓴 분과는 약간의 인연은 있지만 그렇게 친분이 있다거나, 소설과 관련해 깊은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 안에서 희미하고 불분명한, 추상적으로만 존재했던 그 무엇인가가 저 글을 읽은 순간 잠깐 그 윤곽을 드러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큰 기대는 걸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에 개안할 만한 계기가 주어진 것은 사실이다. 저 글에 언급된 책들을 읽어보고 내 나름의 관점을 정리해 두는 건 의미 깊은 작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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