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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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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 이후 있었던 간단한 바자회에서 책도 몇 권 샀고, 타로를 칠 줄 아시는 분께 약간 마음에 걸리던 것도 물어봤다. 좋은 대답을 들었다. ...다행이다. 애초에 친구라고 하기도 힘든 관계였지만, 이제 그 사람과 난 아무래도 상관 없는 남이고... 두번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일을 되새기면 여전히 약간은 억울하긴 하지만, 그 사람이 행복하길 바랐던 마음 역시 진심이었다. 인정한다. 오래지 않아 그 사람은 날 잊어 버릴테고, 나는 여전히 때때로 그 때 있었던 일들이 떠오르면 우울해지리라는 걸.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원래 사람 사는 게 그렇다. 견딜 만 하다. 잘 지내기를, 앞으로도.

뒷풀이 자리에서 연평도 포격 이후 정황이 뉴스로 나왔다. 며칠 전, 웃고 떠들고 즐기는 건 좀 자중하기로 했던 걸 떠올리자 자리가 참기 힘들 정도로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난 과연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걸까. 나는 근본적으로 냉혈한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도리마저 저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남아 있건 말건 그건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현상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내가 뭘 어떻게 하건 간에 이명박 정부는 강경을 외칠 테고, 지난 10년 간 대북 관계에 들였던 공은 고스란히 좌빨들의 퍼주기로만 묘사될 것이고, 찜질방에서 불안한 밤을 보내는 연평도 주민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은 이들도 살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슬픔도 분노도 느끼지 못한 나는.

중간에 자리를 뜬 이유는 사실 한 가지가 더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이유이며, 역시 별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나는, '강자'여야만 한다. 하지만 다시 예전과 같은 욕구-예컨데,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거나-를 갖게 되면 그렇게 되지 못한다. 물론 그러한 감정이나 욕구들은 인간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그걸 외면하려고 하는 내 태도가 비정상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난 1년 동안 간신히 어느 정도 추스렸던 의지는 좌절되고, 스스로를 가누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난 다시 혼란에 빠지고, 냉정하게 상황을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난 이미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른 적이 있었고, 몇 년 간이나 그런 상태였다. 그리고 그 결말은 대단히 좋지 않았다. 나는 감정적인 인간이고, 한번 자제력을 잃으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기 전에 선을 그어야만 한다. 아직까지 내 마음이 내게 속해 있는 동안.

남은 것은... 많지 않다. 절조를 바치고자 했던 상대는 사라졌고, 신의를 나누고 싶었던 상대는 떠나 버렸다. 그러나 아직, 명예만은 잃지 않았다. 그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오직 그것만이 나를 강하게 만들 수 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걸 외면하고 포기해야 할까. 강함을 이루기 위해서. 人間으로서 당연히 가져야만 할 연민이나 동정 같은 것들마저 버려 가면서, 사실은 그런 것들 역시 갖추고 있어야만 진정한 '강함'을 이룰 수 있다는 걸 마음 한켠으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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