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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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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10081738301&code=910303

이미 며칠 지난 기사지만 몇 줄 적는다.

저 기사는, 경향 신문이 논설을 통해 '민노당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3대째 권력 세습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라고 요구하자 현 민노당 당 대표인 이정희 의원이 경향에 대해 보낸 답신이다.

이정희 의원의 논리는 이러하다. '대외적으로 우리가 진보임을 드러내는 것에는 관심 없다. 북한과의 관계를 평화와 대화로 풀어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이며, 그를 위해 북한의 권력 세습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겠다. 이미 북한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충분히 많으며, 우리까지 그에 끼어들 이유는 없다.'

얼핏 보기에는 그럴 듯 해 보이지만, 그러한 주장은 크나큰 약점이 있다.

우선 지적하고 싶은 것은, 지난 10년 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그토록 노력해 왔고 비록 아쉬운 점이 많을 망정 어느 정도 성과도 일궈 낸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지 민주노동당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두 전 대통령은 확실히 우파였고, 보수의 스펙트럼에 속하는 인물들이었다. 그 둘은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를 위시한 수구 세력으로부터는 빨갱이라고 비난받고, 강성 노조나 사회 단체로부터는 FTA나 이라크 파병 결정 등을 이유로 비정한 신자유주의자라고 비난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 정책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화적인 대북 정책은 작지만 확실한 성과를 일궈오고 있었다. 민노당은 평화와 협력을 이야기하면서도 그에 대해 실질적으로 공헌한 바가 거의 없다. 물론 민노당은 작은 군소정당에 불과하며, 대북 관계에 있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폭이 극히 작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는 민노당은 대북 문제에 있어서 내내 당위만을 교조적으로 외쳐 왔을 뿐 작지만 중요한 일들에 대해서는 태만히 해 왔다는 점이다. 난 최소한 대북 문제에 관련해서는, 민노당을 한나라당 만큼이나 신뢰할 수 없다.

이번 권력 세습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며,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으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북한과 대화의 길이 아예 막혀 버리는 건 아니다. 물론 쉬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정치의 기술이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도 그렇게 치열하게 경쟁하는 와중에도 필요하면 대화를 나눴다. 그런데 아예 입을 다물겠다는 것은 외교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이정희 의원은 북의 권력 관계를 언급하는 게 남북 관계 악화로 직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태도를 취하면 취할 수록 북한에게 계속 우선권을 내주고 끌려 다니게 된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았다.

혹은 실용적인 관점에서, 이번 세습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지속적인 연락 채널을 열어둘 수 있도록 한 목소리로 비판하는 대신 일부는 비판하고 일부는 침묵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괜찮은 접근법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 견해도 나름 설득력은 있다. 김정은의 세습이 성공한다면 그를 비판하던 한국의 정당들은 접촉에 난항이 생킬테고, 실패한다면(개인적으로는 성공적으로 권력이 이동하리라고 보지만) 침묵하던 정당들이 대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만 보자면 나쁜 전략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은 그러한 역할을 맡을 수 없다. NL과 PD의 통합을 위한 권영길 의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진보신당이 떨어져 나가고 종북주의적인 색채가 강한 NL파가 민노당의 의사결정 구조를 장악하고 있는 이상 민노당은 결코 올바른 대안이 되지 못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 해도 민노당은 야당 중에서도 마이너한 소수 정당에 불과하며, 그러한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책을 취할 입장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단지 북한의 권력 세습에 대해 침묵하는 걸로 끝낸 게 아니라 '침묵하겠다'고 당대표가 대외적으로 천명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의 말인 이상 이것은 반쯤 민노당의 공식 입장으로 봐야 한다(그렇지 않다면 대표씩이나 되 놓고 할 말 못할 말 안 가리는 이정희 의원은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봉건 왕조나 다름 없는 북한 체제 아래서 고통받는 하층민들을 외면하고 북한의 지배계급 눈치만을 보겠다는 말과도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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