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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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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는, 모든 사람의 한 걸음.'

민주주의의 요체는 한 명의 영웅이 모두를 '구원'한다는 믿음을 거부하고, 이름 없는 만인이 스스로를 '진보'시킨다는 것이다(정치 성향적 의미에서의 진보가 아니더라도).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의 당선이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진 분위기에서 내가 우려했던 것은 이명박이라는 이름이 상징하고 있는 현대 한국의 모든 부정성이 실체를 얻어가고 있다는 것도 있었지만, "MB가 다 해주실 거야"라는 식의 이명박 개인에 대한 영웅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굳이 대상이 이명박이라서가 아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세상을 뜬 이후 그 추모 물결에 심정적으로는 공감하면서도 결국 빈소를 찾지 않은 것은 그가 자살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노무현이라는 개인을 영웅화하는 분위기가 불편해서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그가 생전에 취한 정책 상당 부분-특히 한미 FTA와 이라크 파병-에 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작년 그 무렵의 줄을 잇는 애도들에서는, 나의 개인적인 정치 성향을 넘어서서 뭐라고 말하기 힘든 거북함이 느껴졌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정도 차이만 있었을 뿐 개인에게 지나친 기대를 걸고, 그 기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너무나도 쉽게 실망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노회찬 대표의 조선일보 창간 기념식 참석을 보고서 난 '그럴 사람이 아니다, 좀 더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말인즉슨, 나도 진보 진영의 별 노회찬이라는 개인의 '영웅성'에 자신도 모르게 현혹되어 있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대전제인 '이름 없는 만인에 대한 신뢰'를 가진 게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자면 노회찬의 결정도 머리로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는 추상적인 악이 아니라 엄연히 현존하며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는 객관적인 실체다. 정서적으로, 또한 이념적으로는 언젠가 배격해야만 할 대상이라고 해도 그것이 확고히 존재하는 이상 정치인은 투쟁적인 관점에 매몰되어 보이는 모든 것에 칼을 들이대서는 안 될 것이다. 당 대표로서 항상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염두에 둬야 하는 입장도 있고. 여전히 심정적으로는 약간 불편할 망정, 납득은 할 수 있다.

쉽게 쉽게 기대를 걸고, 쉽게 쉽게 실망해 버리고, '정치하는 놈들은 전부 똑같다'고 생각해 버리고 그냥 거기서 끝내는 것은 얼마나 쉬운 일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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