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이 집회는 어느 정도 불법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을 망정 정당한 열정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사람들을 말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다리를 밟고 차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을 끌어 내리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건 방법이 아니라고. 몇몇 분들이 나와 함께, 올라가려는 사람들을 말렸다. 주변으로 소화기 분말이 자욱하게 내려 앉았고 윗옷을 벗은 아저씨 한 분이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나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와 다른 사람들 몇 명이 사다리를 옆으로 끌고 가려던 차에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듯한 청년이 다가와서 내게 물었다. 정말로 올라가면 안 되는 거냐고. 올라가서 이야기만 하면 안 되는 거냐고. 난,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주변을 밝히고 있던 가로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
콜록거리면서 사다리를 끌고 인파 사이를 헤쳐 나오던 중 의료 봉사하는 분들이 식염수와 생수로 눈을 씻어 주셨다. 수건과 물티슈를 받아 챙긴 채 사다리를 끌고 인도로 올라왔다. 이걸 어딘가 치워둬야 한다, 시위대의 손도 전경들의 손도 닿지 않는 곳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길 옆의 골목으로 사다리를 끌고 가는데, 어떤 분이 사다리를 돌려달라고 하길래 사람들이 자꾸 차 위로 올라가려고 해서 안된다고 했다.
"당신, 31일날 안 왔었지? 그 날에 비하면 이 정도는 진짜 평화시위야."
"그것까지는 알 바 아니고, 이 사다리는 못 내 드립니다."
"글쎄, 달라니까! 지금 당신은, 누가 또 올라가서 전경들한테 시비걸까봐 그러는 거 아냐? 앞쪽에 안 가져갈테니 돌려줘."
"안돼요."
"진짜 안 가져 간다고! 이 사다리 내가 가져온 거야. 그보다 당신은 분말 뒤집어 쓴 거나 잘 좀 씻어내, 그거 몸에 해로우니."
잠시 실랑이 끝에... 난 사다리를 돌려주고 뒷쪽으로 몸을 피했다. 청계 광장 쪽에서 몸을 추스리면서 생각했다, 오늘은 긴 밤이 될 것 같다고. 가래가 끓던 게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의료봉사자 분께 받은 수건을 뒤집어 쓰고 다시 앞쪽으로 갔다. 소화기 분말 좀 뒤집어 썼다고 빠지기엔 분위기가 너무 험악했다.
다시 앞쪽에 가보니 소화기 분말로 사방이 가득했다. 시위 참가자 한 명이 전경에게서 빼앗은 듯한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욕설을 퍼붓고 있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닭장차 창문의 철망을 뜯어내고 있었다. 차 안에 타고 있던 전경들이 필사적으로 철망을 붙잡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사람들은 뚫린 차 안을 향해 생수병을 던져대기 시작했고, 난 차 앞을 몸으로 막아섰다. 어떤 사람이 각목을 꼬나쥔 채 비키라고 요구했지만 난 거절했고, 그 때 시위대 쪽에서 날아온 생수병에 얼굴을 얻어 맞았다. 내가 비틀거릴 때 시위대 쪽에서 누군가가 달려 나와 나를 붙잡고 인도 쪽으로 끌어냈다. "막으려고 하지마, 저 사람들은 알아서 스스로를 지키고 있으니."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안경을 잃어버린 채 인파에서 빠져 나와 홀로 걷고 있었다.
화장실에서(동아일보 건물의 화장실이었다, 이런 아이러니컬할 데가!)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어낸 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흥분한 군중들을 바라보며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과연 이걸로 좋은 걸까, 이걸 뚫고 청와대로 간다고 해도 무엇이 생기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배가 고파졌고, 옆 훼미리마트에서 소세지 3개를 묶어 1200원에 파는 걸 사다 먹었다. 도로 가운데 주저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선 오마이뉴스 중계를 보며, 난 생각했다. 따끔 거리는 피부. 목안에서 끓는 가래침. 앞쪽에서 들려오는 욕설과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 소리, 그리고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소리. 이 가운데서 나는 살아 있으며, 살고자 하고 있구나. 진정으로. 가로등에는 다시 불이 들어와 있었다.
4시 경 찍은 촛불. 하늘은 혼탁했고, 별들은 모두 지상에 내려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빛은 촛농에 가라앉아 사그라 들었다. 다시 불을 붙여 봤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디씨 음식갤에서 지원나온 김밥을 씹으면서, 스스로의 마음이 의외로 고요함을 깨닫고는 약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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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을 기점으로, 촛불집회는 일종의 임계점에 달했다는 느낌이 든다. 무력으로라도 전경들을 뚫고 청와대로 가 이명박을 끌어내리자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말리며, 여기서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데 만족하자는 사람들. 뒤쪽에서 촛불 하나를 밝혀둔 채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여기 놀러왔냐고 짜증을 내는 사람들. 난 그 모두를 지켜 보았다.
앞으로 이 '움직임'이 어떻게 될지, 역사에 이 움직임이 어떻게 남을 지는... 판단을 유보한다. 그리고 난 보다 더 '알기 위해' 오늘 밤도 광화문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