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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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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보다 늦게 집을 나서는 바람에, 막차를 타고 간신히 시청에 닿았다. 가는 길 중간에 ‘촛불시위 반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젊은 나이에 어쩌다 조중동이 떠먹여 주는 것만 먹게 됐을까 싶기도 했지만-_-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서 구경하기도 하고, 몇 명은 도발하기도 하고, 몇 명은 그냥 무시하고 가자고 제안하기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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꽈배기탑 옆에서 뭉쳐 있는 예비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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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시각이 23시 40분 경. 여기저기서 모여 웃고 떠드는 사람들. '시위'나 '집회'라기 보다는 '축제'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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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님이 보고계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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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시각이 00시 50분 경. 시민들의 센스에 낄낄거리기도 하고 노래를 흥얼대기도 하면서 돌아다니며 사진 촬영 계속. 혼자 오는 쪽이 운신의 폭이 넓어 편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운데 단상 위에서 민중가요를 틀어놓고 '전경들의 폭력 진압이 시작되면 우리를 지켜달라'고 시민들에게 요구하는 카메라맨이 눈에 거슬렸지만... 잠시 뒤 일어날 일은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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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시 무렵, 오마이 뉴스 중계를 통해 시위대가 닭장차를 흔들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저러다 사고 나겠다 싶어서 촛불을 끄고 이순신 장군상 쪽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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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후로는... 한참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앞쪽은 이미 혼돈의 도가니가 되어 있었고, 분노한 시위대는 차 위의 전경들에게 물병을 집어 던지고 몇 명은 불꽃을 쏘아 올리기 시작했다. 전경들이 소화기를 쏘아대기 시작했고, 분노한 시위자 몇 명이 사다리를 가져다가 닭장차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불꽃을 쏘아대던 아저씨를 말리던 중, 난 차 위에서 한 전경이 시위대를 향해 울먹이며 외치는 목소리를 들었다. "미안해요!"

...처음, 이 집회는 어느 정도 불법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을 망정 정당한 열정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해야 할 일은... 이 사람들을 말리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다리를 밟고 차 위로 올라가려는 사람을 끌어 내리며 필사적으로 외쳤다. 이건 방법이 아니라고. 몇몇 분들이 나와 함께, 올라가려는 사람들을 말렸다. 주변으로 소화기 분말이 자욱하게 내려 앉았고 윗옷을 벗은 아저씨 한 분이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나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와 다른 사람들 몇 명이 사다리를 옆으로 끌고 가려던 차에 이제 갓 스물을 넘긴 듯한 청년이 다가와서 내게 물었다. 정말로 올라가면 안 되는 거냐고. 올라가서 이야기만 하면 안 되는 거냐고. 난,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주변을 밝히고 있던 가로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

콜록거리면서 사다리를 끌고 인파 사이를 헤쳐 나오던 중 의료 봉사하는 분들이 식염수와 생수로 눈을 씻어 주셨다. 수건과 물티슈를 받아 챙긴 채 사다리를 끌고 인도로 올라왔다. 이걸 어딘가 치워둬야 한다, 시위대의 손도 전경들의 손도 닿지 않는 곳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길 옆의 골목으로 사다리를 끌고 가는데, 어떤 분이 사다리를 돌려달라고 하길래 사람들이 자꾸 차 위로 올라가려고 해서 안된다고 했다.

"당신, 31일날 안 왔었지? 그 날에 비하면 이 정도는 진짜 평화시위야."
"그것까지는 알 바 아니고, 이 사다리는 못 내 드립니다."
"글쎄, 달라니까! 지금 당신은, 누가 또 올라가서 전경들한테 시비걸까봐 그러는 거 아냐? 앞쪽에 안 가져갈테니 돌려줘."
"안돼요."
"진짜 안 가져 간다고! 이 사다리 내가 가져온 거야. 그보다 당신은 분말 뒤집어 쓴 거나 잘 좀 씻어내, 그거 몸에 해로우니."

잠시 실랑이 끝에... 난 사다리를 돌려주고 뒷쪽으로 몸을 피했다. 청계 광장 쪽에서 몸을 추스리면서 생각했다, 오늘은 긴 밤이 될 것 같다고. 가래가 끓던 게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의료봉사자 분께 받은 수건을 뒤집어 쓰고 다시 앞쪽으로 갔다. 소화기 분말 좀 뒤집어 썼다고 빠지기엔 분위기가 너무 험악했다.

다시 앞쪽에 가보니 소화기 분말로 사방이 가득했다. 시위 참가자 한 명이 전경에게서 빼앗은 듯한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욕설을 퍼붓고 있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닭장차 창문의 철망을 뜯어내고 있었다. 차 안에 타고 있던 전경들이 필사적으로 철망을 붙잡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사람들은 뚫린 차 안을 향해 생수병을 던져대기 시작했고, 난 차 앞을 몸으로 막아섰다. 어떤 사람이 각목을 꼬나쥔 채 비키라고 요구했지만 난 거절했고, 그 때 시위대 쪽에서 날아온 생수병에 얼굴을 얻어 맞았다. 내가 비틀거릴 때 시위대 쪽에서 누군가가 달려 나와 나를 붙잡고 인도 쪽으로 끌어냈다. "막으려고 하지마, 저 사람들은 알아서 스스로를 지키고 있으니."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안경을 잃어버린 채 인파에서 빠져 나와 홀로 걷고 있었다.

화장실에서(동아일보 건물의 화장실이었다, 이런 아이러니컬할 데가!)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어낸 뒤, 잘 보이지 않는 눈으로 흥분한 군중들을 바라보며 한참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과연 이걸로 좋은 걸까, 이걸 뚫고 청와대로 간다고 해도 무엇이 생기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배가 고파졌고, 옆 훼미리마트에서 소세지 3개를 묶어 1200원에 파는 걸 사다 먹었다. 도로 가운데 주저 앉아 담배를 꼬나물고선 오마이뉴스 중계를 보며, 난 생각했다. 따끔 거리는 피부. 목안에서 끓는 가래침. 앞쪽에서 들려오는 욕설과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 소리, 그리고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 부르는 소리. 이 가운데서 나는 살아 있으며, 살고자 하고 있구나. 진정으로. 가로등에는 다시 불이 들어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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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 경 찍은 촛불. 하늘은 혼탁했고, 별들은 모두 지상에 내려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 빛은 촛농에 가라앉아 사그라 들었다. 다시 불을 붙여 봤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디씨 음식갤에서 지원나온 김밥을 씹으면서, 스스로의 마음이 의외로 고요함을 깨닫고는 약간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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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원 밖에 안 냈었는데 조금 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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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 무렵이 되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오마이뉴스 중계는 끝났고, 좀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은 불을 쬐고 있었다. 그 불을 쬐며... 이렇게 불을 피우는 건 불법일텐데, 그래도 따뜻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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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날을 기점으로, 촛불집회는 일종의 임계점에 달했다는 느낌이 든다. 무력으로라도 전경들을 뚫고 청와대로 가 이명박을 끌어내리자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말리며, 여기서 한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데 만족하자는 사람들. 뒤쪽에서 촛불 하나를 밝혀둔 채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여기 놀러왔냐고 짜증을 내는 사람들. 난 그 모두를 지켜 보았다.

앞으로 이 '움직임'이 어떻게 될지, 역사에 이 움직임이 어떻게 남을 지는... 판단을 유보한다. 그리고 난 보다 더 '알기 위해' 오늘 밤도 광화문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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