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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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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 도중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미화하려고 하는 걸로 보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무책임함이야말로 현대의 가장 큰 악덕이라고 보며, 애초에 이번 작품을 쓰게 된 동기 자체도 '모든 죄와 책임이 지워지는 곳'이야말로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지옥'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 의식을 작중에서 직접 드러내는 건 결코 좋은 선택이 되지 못하며, 차라리 그러한 본의를 숨기고는 정 반대 방향에서 접근해서 일종의 반어법으로 표현하는 게 어떨까 싶었다.

애초에 진정한 창작 의도를 숨기고자 했고, 그게 먹혔다는 면에 있어서는 성공한 글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가 그걸 캐치하지 못한 직접적인 이유는, 탐미적인 문장과 찌질하고 마초적인 주인공이라는 부조화 때문이었다. 그런 문장으로 씌어져야 했던 이유의 절반은 반어법이었기 때문이고, 나머지 절반은 나 자신이 글의 성격에 따라서 문체를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어 있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의도를 숨기고자 했던 의도'는 제대로 먹혔지만...  글을 읽고 난 뒤 독자가 스스로 '언덕'의 진정한 의미에 이르게끔 하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애초에 그러한 방식을 채택했던 이유 중 하나가 내 문장력의 미숙함 때문이었다는 점 두 가지로 인해 미묘한 느낌이 든다. 작가의 변 시간에는 생각이 잘 정리가 되질 않아서... 대단히 미묘한 평이라는 이야기만 했을 뿐, 그걸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평이 끝나고, '작은 이야기로도 큰 통찰을 말할 수 있다, 그러니 작은 이야기를 써 보라'는 권유를 들었다. 스스로도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던 문제이며, 겹치는 사람이 거의 없는 다른 쪽 합평 자리에서도 같은 권유를 들었다. 그리고 두 모임의 참가자들 대부분이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꾸준히 읽고 써온 사람들이다. 그것은 분명 올바른 충고일 것이다.

하지만, 모르겠다. '작은 이야기'를 쓴다는 건 어떠한 것인지. 그것은 내게 있어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아마도... 좋은 친구를 만나고,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의 소소한 기쁨들을 알아야만 가능한 종류의 것일 듯 하다.

<논어>의 위정편 첫 구절에는 그런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마음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기쁨이고 외부의 사물에 대해 느끼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기쁨은 주로 '자기 만족'이나 깨달음'에서 오고 즐거움은 '감각'에서 오는 것이라고.

자기 만족이나 깨달음의 순간은 여러 번 있었다. 그 때마다 난 조금씩 더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그 순간 내게 찾아오는 것은 '이해'였지 '기쁨'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단 한 번도.


.........

난, '기쁨'을 알지 못한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