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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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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설

우리가 생각하는 낮은 곳보다
더 낮고 험한 곳으로도 눈은 내린다
햇살에 저 매서운 빙정이 해체되기까지
눈은 내려서 내린 그대로 있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구두는 눈을 밟는다
헌 구두를 신은 사람은 헌 마음으로
새 구두를 신은 사람은 새 마음으로
겉으론 태연한 척 눈을 밟는다
눈보다 흰 눈을 우리가 밟고 갈 때
발길에 채이는 것은 눈의 순결이 아니라
순결이 아니라 우리들의 살점이다
눈을 밟으며 흰 살점을 도려내는
스스로의 아픔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
그리하여 눈은 잠 속으로 사라진다
사라진 후에도 돋아나는 비늘들
정말 무서운 것은 강한 햇살에 녹지 않고
구석에서 차갑게 번뜩이는 저 은비늘이다
단 몇마리의 삶을 위하여
수천의 알을 깔기는 물고기처럼
끝끝내 살아남는 몇점의 비늘을 남기려고
이 밤도 흰눈은 무작정 쏟아진다
우리가 생각하는 낮은 곳보다
더 낮고 험한 곳으로도 눈은 내린다
햇살에 저 매서운 빙정이 해체되기까지
눈은 내려서 내린 그대로 있고 싶어한다

-이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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