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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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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부터 줄곧 나온 이야기고, 어차피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지만 정리 차원에서 몇 자 적는다.


"경찰들은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촛불은 진화하지 못하고 있다."
-집회 뒤, 커피숍에 앉아 쉬던 중 옆 자리의 어떤 아저씨의 말

촛불이 단순히 권력자들의 주구가 된 공권력을 조롱하고 거리로 나서는 일탈을 즐기는 유희가 아니라, 이 정부의 거듭되는 실정에 반하는 유의미한 움직임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 강행이라는 병진 인증 짓거리에 대한 '분노'를 계기로 본격화되었고, 크게는 저항의 범주가 어디까지냐부터 작게는 개별 단위들이 전경들과의 대치 국면에서 어떻게 움직일 것이냐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인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힘든 한계가 있다.

지난 여름 이후 몇 개월이 지났고, 시민들의 머리도 한결 차가워진 지금 일시적인 감정에 휘말려 무리수를 두진 않을 테지만...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는 현장에선 하나의 의지를 모아 집단 행동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무언가가 부재하고 있다.

만일, 그러한 '무언가'가 생긴다고 해도 거기엔 필연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독선과 전횡에 대항한다는 '대의'는 명백히 옳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생긴 '무언가'는 자신의 정치적 명분이라는 스탠스를 유지하고, 그를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 가시적인 지표를 필요로 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는 희생양을 찾게 된다. 파시즘은 그렇게 해서 태어난다.

싸워야 할 적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적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 그 적과 닮아가야 한다. 이 모순에 대한 해결점을 촛불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으며, 나 역시도 그러하다.

....허이구우....


집으로 돌아온 뒤, 컴 앞에 앉아 찍은 2009년 첫 아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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