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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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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화폐인 인간의 피를 통해, 이미 죽은 육신을 이끌고 자신들의 일그러진 '생명'을 이어가는 흡혈귀들이 있었다. 세계의 멸망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투쟁을 계속해 나가는 늑대인간들이 있었다. 이제는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이상향을 애타게 그리워 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 세계를 덧없이 떠도는 요정들이 있었다. 인류 역사의 그늘 속에 온갖 괴물들이 숨어서 암약해 왔음을 깨닫고, 그를 박멸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이단심문관들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완전한 이상을 위해 '현실'을 거역하는 마법사들이 있었다.

흡혈귀의 고독. 늑대인간의 분노. 요정의 비탄. 이단심문관의 헌신. 그리고 마법사들의 이상이 있었다, 이 세계에는.


이 금단의, 어둠의 세계(World of darkness)도 현실 세계와 닮아 있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초자연적인 요소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세계, '세계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한다'라는 극히 당연한- '상식'이라고 불리는 믿음. 마법사들은 그 믿음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마법사들은 저마다 '이 세계의 온당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있고, 그 신념을 현실에 투사하여 그를 바꾸는 힘을 갖는다. 그들은, 그걸 마법이라고 불렀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고대인들이 믿었을 때, 지구는 '실제로' 평평했다. 태양은 매일 밤 죽었다가 아침이 오면 부활한다고 고대인들이 믿었을 때, 태양은 '실제로' 매일 죽음과 부활을 반복했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그 숱한 인간들의 역사와 맞물려, 다른 초자연적 존재들도 저마다의 힘을 가지고 각자의 욕망과 신념을 겨뤘다. 그러나 '이 세계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법칙'이 일반인들의 믿음에 달려 있다는 걸 알고, 자신이 꿈꾸는 완전한 세계를 향한 의지를 통해 수 많은 인간들의 믿음으로 짜여지는 이 세계의 현실- 태피스트리(Taffestry)를 바꾼다는 점에서 마법사들은 신에 가장 근접한 존재들이었고, 그 욕망과 이상으로써 마법사들의 일곱 갈래 전통(Tradition)은 진정으로 중세의 밤을 지배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그 수많은 일반인들이 자아 낸 이 세계의 패러다임을 쥐고서, 한편으로는 이상도 신념도 없이 그저 적당히 매일을 살아 가는 무지몽매한 일반인들을 마음 속 깊이 경멸하고 동정하면서.


시간이 흘렀고, 중세 말 경 이단심문관들의 노력 끝에 결국 인간들은 무의식적으로나마 초자연적 존재들이 이 세계에 실존함을 직감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반역의 횃불을 들었다. 흡혈귀들의 관은 태양 아래로 끌어내어 졌고, 대규모의 늑대 사냥이 행해지며 늑대인간들은 후세를 남기기 힘들어 졌으며,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학생들에게 요정 같은 건 없다, 그런 것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훗날 인퀴지션(Inquisition)이라고 불리게 되는 이 반역으로 기존의 초자연적 존재들은 크나큰 타격을 입었고, 인간들 사이에서 계몽주의와 인본주의의 싹이 돋았다. 이 새로운 개념이 과연 앞으로 이 세계를 움직이는 근본 법칙이 될 것인가- 이 세계의 확고한 패러다임으로 자리할 것인가를 두고서 마법사들 사이에는 격론이 오갔고, 그것은 현대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전쟁으로 발전했다.

마법사들은 각자의 신념을 마법의 근원으로 삼고 있기에, 개인마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아집에 차 있고 오만하긴 마찬가지다. 극히 당연하게도 갈등과 분열은 항상 있어 왔다. 그러나 지금까지 없었던 이 거대한 변혁 가운데에서 제 1차 만국 박람회가 개최되었고, 기구와 범선, 증기기관차의 힘으로 '세계가 좁아진 것'에 힘입어 전 세계의 이름 높은 마법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과학과 이성'이 다가올 신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자리할 것임을 깨달은 일단의 마법사들이 기존의 전통에서 이탈하여 '이성의 결사(Order of reason)'를 조직하고는 오만하고 폐쇄적인 기존의 일곱 전통에 대항하는 운명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들은, 그걸 마법사의 성전(Sorcerer's Crusade)라고 불렀다. 르네상스와 그 이후로 산업 혁명을 거치며 인류의 이성은 급속히 진보했고, 그에 따라 이 세계의 패러다임은 점차 보편적, 분석적, 계량적인 형태를 띄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의 집단의식은 점차 이성과 합리가 인류를 완전한 경지로 이끌 수 있으리라고 믿기 시작했고, 애매하고 신비주의적인 것들은 배격되었다. 이것은 곧, 일곱 전통 대 이성의 결사 간의 세력 비가 역전됨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성의 결사 내에도 분열은 있었다.  


이성의 결사 내에는 2가지 파벌이 존재했다. '과학과 이성으로 인류를 훈육하고 계몽시켜,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낙원을 건설하자'는 유토피아 파벌. 그리고, '흡혈귀나 늑대인간, 특히 일곱 전통 소속의 마법사들처럼 세계와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들을 제거하고 인류를 그에 대해 무지한 상태로 남겨두어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자'는 인류수호 파벌. 그렇다, 그들도 처음에는 결코 사악한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전통을 따르는 마법사들이 각자의 '이상'을 쫒는 그 힘과 의지로 어떻게 '현실'을 뒤틀고 찢어 냈는지, 무지한 대중들이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는 지를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적은 너무 많고 강했고, 아군은 너무 적고 약했다. 그들은 강력한 공통의 적들 앞에서 단결했고, 이 세계의 패러다임이 점차 변화해 감과 더불어 이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 그러나 수단이 목적을 추월하게 되는 경우는 인류 역사 상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일이고, 신에 가장 가까운 존재이면서도 결국 신은 되지 못하는 존재인 마법사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인류수호 파벌은 점차 극단적이고 교조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고, 도를 넘어서는 행동도 서슴치 않기 시작했다. 그들은 인간 사회의 문화와 교육, 특히 정보를 장악하고서 일반인들에 대해 끊임없이 '흡혈귀 같은 괴물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입시켰다. 그 믿음을 완전한 현실로 고정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말할 것도 없이 그런 괴물들을 전부 없애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인류를 수호한다-우리의 뜻에 거스르는 자는 인류의 안전을 위협하는 자다-그들은 적이며, 인류의 안전을 위해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는 단순명쾌한 논리는 결사의 신참 마법사들을 매료시켰다. 인류수호 파벌은 전통 마법사들에 대한 학살, 흡혈귀 등 다른 초자연적 존재들에 대한 사냥을 적극적으로 펼치는 한편 일반인들을 상대로는 '이 세계에 괴물이나 마법 따위는 없다'는 믿음을 널리 전파하며 과학과 이성이라는 그들의 패러다임을 확고히 했다. 유토피아 파벌을 구성하는 선즈 어브 에테르(Sons of Ether) 분파는 인류수호 파벌의 행동이 다양한 가치의 교환을 막고 세계를 단일화, 획일화시키고 있다는 것- 한 발 더 나아가 이 세계가 더 이상 변화하고, 상처받고, 치유하며 조금씩이나마 진보하는 걸 가로막고 그 대신 세계를 정체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류수호 파벌이 만들어 낸 전투용 사이보그의 실험장(그들이 사용하는 '과학'의 마법은 일반인들이 화승총을 막 만들었을 무렵에 이미 기관총을 만들어 냈다. 단지 그 시대의 패러다임은 그런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기에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세계의 법칙인 패러다임에 거역해서 무리하게 마법을 사용하면 세계 자체가 마법의 행사를 거부하고, 마법사는 패러독스라고 불리는 부작용을 입는다)에 사고로 인해 전통 마법사 한 명이 들어오게 되었고, 사이보그는 그 마법사를 '인간'이 아니라 '방해물'로 간주해 사살했다. 인류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 과학이, 마음이 없는 살인병기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에 결정적으로 충격을 받은 선즈 어브 에테르 분파는 완전히 인류수호 파벌과 결별하여, 전통 마법사들의 진영으로 전향했다.

다시 세월이 흘렀고, 세계는 2번의 대전쟁을 겪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이성의 결사는 이 세계를 통합한다는 그들의 이상에 따라서 국가적 단결과 통합을 기치로 내걸은 추축국을 암중에서 지원하며 자유로운 연합국 편에 선 전통 마법사들과 그림자의 전쟁을 벌였다. 그러나 이성의 결사를 구성하는 분파 중 버츄얼 어뎁트(Virtual adept)라는 분파가 있었다. 원래 버츄얼 어뎁트는 그레이엄 벨이 전화를 발명함으로써 처음 이 세계에 나타난 '가상 공간'이라는 개념에 기원을 둔 분파로,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무선 통신과 컴퓨터 전산망 상에 거점을 두고 있었다(그들이 사용하는 마법도 주로 '공간'에 관련된 것이었다). 버츄얼 어뎁트는 익명성과 개별성이 가져다 주는 자유에 대해 일찍부터 눈을 떴고, 추축국을 지원한다는 결사의 방침과는 달리 내부적으로 전통 마법사들과 휴전을 맺고 연합군을 지원했다. 버츄얼 어뎁트 분파의 마법사들이 정체를 숨긴 채 배후에서 제공해 준 지식을 토대로 미군은 독일군의 에니그마 암호를 깨는 울트라 판독기를 만들어 냈고,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버츄얼 어뎁트의 행동을 이성의 결사에 대한 반역- 한발 더 나아가, 인류의 안전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한 결사 상층부는 인공지능과 가상 현실의 개념을 세계 최초로 창안해 냈으며 버츄얼 어뎁트 마법사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천재 과학자 앨런 튜링을 암살함으로써 보복했다. 이에 분노한 버츄얼 어뎁트 분파는 선즈 어브 에테르 분파의 뒤를 이어 전통 마법사들의 진영으로 전향했다.


세계 대전이 끝났다. 이제는 아홉 전통이 된 전통 마법사들은 승자인 연합군 측을 지원했으나, 정작 중요한 이성의 결사와의 전쟁에서는 이기지는 못했다. 시대는 다시 한번 바뀌었고, 승리를 거둔 미국과 유럽 열강들은 전통 마법사들의 기대와는 달리 돈과 정보, 기술과 교육을 통해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결정은 이 세계의 패러다임을 획일화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모든 내부 불만 세력들을 떠나 보내거나 죽여 버린 이성의 결사는 테크노크라틱 유니온(Technocratic Union)- 약칭 테크노크라시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재편하고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아홉 전통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자신들의 이상과 욕망을 건 마지막 전쟁- 어센션 워(Ascension war)의 개전을 선포했다. 그리고 세기말을 눈앞에 둔 지금, 테크노크라시는 어센션 워에서 승리를 거두고서는 흩어져 잠적한 모든 전통 마법사들에 대한 척살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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