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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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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광화문에 나가 있었다. 집회는 마무리되고, 난생 처음 보신각 타종 행사도 현장에서 지켜봤고, 이미 집까지 가는 차편은 전부 끊겨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월호 분향소 앞에서 짧게 기도한 뒤 어디서 밤을 샐지 고민하면서 거리를 헤매는 가운데 몸과 마음을 채우던 고양감이 가시고 나자 추위가 밀어닥쳤다. 옷을 두껍게 입고 있었지만 그 추위는 지독했다. 그건 그저 물리적인 온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변하는 게 아무 것도 없어도 상관없다, 나의 투쟁은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오직 나만의, 오직 나 자신에 대한 지하드다. 끝없이 불경처럼 되뇌면서도 그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플라자 호텔 주변을 몇 바퀴 돌다가, “시불탱 한국 최고의 번화가 중 하나인데 근처에 하루 밤샐 만한 카페나 PC방도 없냐!”고 혼자 짜증을 내기가 수 차례였다. 왠 아저씨 하나가 다가와서 아가씨 찾냐고 묻길래 화를 내서 쫓아냈다. 이 성전 속에서조차 추위와 피로는, 지극히 일상적인 온갖 어질더분함은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헤매던 도중, 난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이 연에 매달아 띄워 올린 촛불 하나가 하늘 가운데 떠서, 빛을 밝히고 있었다.

 

담배를 피워 문 채 그 빛이 아득히 높이 올라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이제는 이런 집회현장에서조차 듣기 어려운 민중가요 한 소절을 속으로 흥얼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인터내셔널 가였던 것 같다. 우주에서 오직 나만 듣는 그 노래가 끝날 즈음 담뱃불이 꺼지고, 하늘의 빛도 사라졌다.

 

다시 걸음을 옮기고 나서 20여 분 뒤 간신히 청계광장에 있는, 24시간 영업하는 탐앤탐스를 찾아내 몸을 녹일 수 있었다.

 

그 후로 1. 난 여전히 남루한 일상을 이어간다. 삶은 똑같이 팍팍한 가운데 나이는 더 들었고, 소설도 쓰지 못했고 변함없이 사람이 싫다.

 

하지만 적어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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