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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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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러는 일단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까놓고 말해서 난 그렇게 스무스하게 잘 진행되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그 사람은 꽤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고, RPG경력도 풍부하지만 단순히 '설정을 오픈해 둔다'는 정도가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캠페인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좌우하는 키를 쥐는 합의제는 아직 국내 RPG 계에서 생소한 방식이다. 김성일 님의 표현에 의하면, 저수지를 차지하기 위해 안달복달하던 게 기존의 플레이 방식이라면 합의제에서는 언제든 비가 내리도록 할 수 있다. 단지 지금 비를 내리는 게 필요하냐, 너무 남발하는 것 아니냐, 내린다면 얼마나 내리게 해야 할 것이냐를 생각하는 게 합의제의 핵심이지만... 국내 RPG계에 있어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이렇게 '가진 힘을 적재적소에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정신적 훈련에 익숙하지 않다.

게다가 그 사람은 소설가다. 캠페인을 구상할 때도 배경 설정을 대단히 꼼꼼하고 세밀하게 하는 편이고, 그렇게 세계를 완성시켜 둔 뒤 '디렉터'나 '오퍼레이터'로서가 아니라 철저히 '인터페이스'로서의 마스터링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합의제 플레이에서 배경 설정에 공백을 많이 두는 이유는 플레이어가 설정을 대신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플레이의 진행에 따라 유연하게 메꿔넣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걸 이해할 지에 대해선 솔직히 회의적이다.

지금까지 봐온 바로, 그 사람은 상당히 영리한 편이다. 하지만 합의제로써 캠페인을 운영한다는 것은 전통적인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전제와 사고방식을 갖기를 요구하는 것이며, 이것은 단순한 머리의 좋고 나쁨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게다가 워낙에 생소한 방식이니만큼 궁금한 것도 많을 텐데 전혀 질문을 해오지 않는다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게다가 합의제는 플레이 전후, 플레이 도중 할 것 없이 지속적으로 참가자들의 의견 교환을 필요로 한다. 정치 체제로써의 공화정이 그렇듯이, 합의제가 이뤄지기 위한 가장 필수적이고 근본적인 전제는 '참가자들의 적극성'이다. 그러나 첫 플레이 시작까지 30분도 안 남은 지금-_ 아직 시트도 안 올린 플레이어가 있다는 건 썩 좋지 않다, 쩝.

일단 몇 세션 굴려보고... 영 아닌 것 같다 싶으면 텔러에게 건의해서 이 방식은 철회하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해볼까도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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