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6.4 지방선거 전날이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49재이기도 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인터넷 각지에서는 '왜 서해 페리호 침몰과 삼풍 백화점 붕괴 이후, 20년이상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의문이 숱하게 제기됐다. 그리고 그에 대해 사회 구조 상의 문제, 한 발 더 나아가 한국의 정치적 결함에 대한 문제로 답이 소급될 때마다, 커뮤니티를 막론하고 거의 반드시 나오는 소리가 '조용히 추도만 하자, 정치 이야기로 분란 일으키지 말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치가 일상의 모든 문제를 결정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에 대해 입을 다무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세월호 참사와 정치를 별개 영역으로 놓을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해방과 건국, 한국 전쟁, 그 이후로 이어진 개발 독재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 나라 국민들의 의식 기저에 심겨진 성장과 효율의 신화가 그 효용을 다 했다는 것이 상징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아니라 김구나 심지어 여운형이 초대 대통령이 되었어도, 한국은 미 소 냉전 체제 간의 대리 전장이 되는 운명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소련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이 일본을 거쳐 태평양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줄 훌륭한 교두보였던 이상 김일성이 없었어도 그와 비슷한 인물이 비슷한 역할을 수행해서 한국 전쟁이 일어나 나라가 둘로 갈라졌을 가능성이 높고, 그 이후에 비교적 정상적인 방식으로 정권 교체와 권력 이양이 이뤄졌다 하더라도 당시의 시대 상황에 비춰봤을 때 급속한 압축 성장은 그대로 진행되었을 테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성찰은 자본주의가 가져다 주는 물질적 쾌락을 따라잡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었다면, 그것이 국민들 일반에 있어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대세'로 받아들여질 수는 있어도, 빨갱이들이 온 나라를 집어삼킬 것이라는 식의 공포와 군사 독재 정권에게 엉겨 붙어서라도 나와 내 가족들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탐욕으로 수렴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가장 큰 죄는 다른 게 아니라, 이러한 공포와 욕망을 국민들 일반의 의식 구조를 이루는 두 축으로 고착시키고 그를 끝없이 자극함으로써 한국에서 권력을 손에 넣고 유지하는 왕도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세월호가 침몰했다. 304명이 죽었다. 선장은 뭐라고 했는지는 몰라도 국정원과 한참 문자를 주고 받다가 속옷 차림으로 탈출했다. 해경 간부는 "해경이 못한 게 뭐가 있냐"라고 큰 소리를 쳤다. 갓 스물 먹은, 정몽청 아들내미는 오열하는 유가족들보고 미개드립을 쳤다. 대전 지법 소속 관료 하나는 유가족들의 한은 스스로 풀어야 하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새누리당 최고 의원은 좌파 단체들이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피플뉴스인지 피볼뉴스인지의 편집국장은 유가족 중에 종북좌파가 있다면 애도할 필요가 없으며 학생들 죽은 건 자기들 운명이니 관심 없다고 페북에서 선언했다.
파편화된 국민 개개인의 힘으로 그러한 지금의 현실을 바꾸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적어도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그러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낫게 만들 수단은 국민들의 손 안에 있다. 정치가들은 자기 권력의 획득과 유지가 최우선 명제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그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정치가들에게 재갈을 물릴 수 있는 것은 국민들 뿐이다. 그러한 현실에서 세월호 참사와 정치를 연관짓지 말라는 것은 그런 참사를 방조하고 사태 수습조차 등한시한 책임자들의 실체를 지워 버리고 모든 것을 유가족과 희생자들의 개인적인 불운으로 소급하려고 하는, 더 없이 비열한 요구다.
외면한다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사건은 앞으로도 일어날테고, 그 때는 내가, 내 가족이, 내 친구가, 내 동료가 희생될 수도 있다.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키워드는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