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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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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틀이나 지났지만...-_-

 

엊그제, Asdee 님이 서울로 출장을 오시는 김에 던젼 월드 테스트 플레이를 해볼까 하는데 관심 없냐고 하시길래 무려 2시간이 넘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역까지 갔다 왔다.

 

아침 7시 쯤에 집을 나서서, 건대입구의 롯데 시네마에서 <지슬>을 본 뒤... 점심 먹고 홍대입구로 가 책 몇 권을 사고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오니 3시 쯤이었다. 그런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후드를 뒤집어쓰고, 초기 약속 장소던 카페를 찾아 헤매기 시작했는데...

 

엄써

 

...다시 서울역으로 돌아와서는, 카페 위치가 어디냐고 전화를 걸었다.

 

안 받아

 

....비는 오고, 바람은 강하고, 뭔가가 틀어진다 싶어서, 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짜증이 뭉실뭉실 솟아남을 느끼다가-아무래도 나는 자제수치가 좀 높긴 할 망정 '다혈질' 단점이 있는 거 같다는 망상도 좀 하다가- 연락이 됐다. 아까 뒤진 곳을 다시 뒤져보니... ....얼레, 아까는 못 봤는데 건물이 있네?

 

....그런데 콘센트 꽂을 데도 없고, 무선 인터넷도 안 잡히네?

 

.........하여, 다시 Asdee님께 연락. 근처의 투 썸 플레이스로 약속 장소를 옮겼다. 담배 뻐끔뻐끔 피우면서 룰을 다시 읽어보던 중-괴물들 파트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클래스 별 개념이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D&D와 진짜 비슷하더라- 5시 쯤 Asdee님이 도착하셨다. 잡담 좀 하다가... 곧 김성일 님이 오시고-카리스마 돋는 미중년. 조국 교수 닮으셨다-, 뒤이어 이너크라잉 님과 김주현 님, 위즈마시아 님이 도착. 원래 참가 예정이던 오승한 님이 회사 일이 많아 늦어진다고 연락을 해오셨고, 그 덕에 김주현 님이 플레이어로 참가하실 수 있게 됐다.

 

시작은 우선 클래스 배분. 나는 '일단 던젼물이고+아직 분위기나 그림이 애매할 때는 닥치고 힘센 전사로 하면 기본은 재미있다'는 천승민 님의 지론을 따라(...) 힘 16짜리 전사를 골랐다. 킥스타터에 야만전사가 없어서, 설정만 야만전사스럽게 슥슥(컨셉은 디아블로3 야만용사 여캐). 고블린 주술사 '아조쓰'가 부족의 성지를 파괴하고 조상들에게 바쳐진 위패를 훔쳐가서 그걸 되찾으려 한다는 설정이 즉석에서 생겼다. 김주현 님은 성기사, 이너크라잉 님은 드루이드, 위즈마시아 님은 도둑을 고르셨고... PC들이 서로를 아는지,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나리오가 좀 더 구체화되고, 각자 시트에 '인연'이 기입되었다.

 

플레이가 시작되고 가장 적응이 안 됐던 것은 턴 방식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먼저 선언하는 쪽이 짱 먹는(...) 리얼타임이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전술 적용에 있어 선택지가 룰로 정해져 있는 D&D나 겁스와는 달리 그런 건 말로 하는 '묘사'로 때우고, 세부적인 건 위험돌파로 전부 처리하는 극도로 추상화된 방식이기도 했고. 그래서 상황을 쫓는데 급급해 거시적으로 상황을 조망하기가 어려웠다. 이걸 빨리빨리 처리하는 것도 실력이긴 한데...:Q

 

아조쓰의 부하 고블린들이 마을을 습격하는 걸 발견한 게 시작이었다. 이 서전에서 가장 활약한 건, 이너 크라잉 님이 플레이한 드루이드 캐릭터. 곰과 매를 비롯한 오만가지 동물로 두루두루 변하면서 예비 점수를 벌어 그걸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센스가 돋보였다. 위즈마시아님의 도둑도 훌륭한 다이스를 앞세워 숨고 독 단검 던지기를 반복하며 최고의 딜링을 뽑아냈고. 개인적으로는 미칠 듯한 다이스 불운이 가슴아팠다(...) 위즈마시아 님의 도둑 캐릭터에게 무언가를 빼앗기는 느낌. 아즈망가 대왕의 치요 말투로 "제 주사위 가져 갔죠?" "제 주사위 돌려줘요~" 드립을 쳤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셔서 좀 아쉬웠다(...) 판정에서 실패하면 경험치를 받는 룰 때문에 경험치 하나는 쭉쭉 잘 오르더라(...) 불타는 신전 가운데서 힘겹게 골리아쓰를 격파하고 서전을 마무리하고 나자 하이 프리스트가 나와 아조쓰의 부하들이 태양신의 신상을 훔쳐갔다고 한다. 그 신상이 없으면 해가 더 이상 뜨지 않게 될 거라고 하는데(1레벨 모험 치곤 좀 지나치게 에픽한데?)... 김주현 님의 성기사 캐릭터가 나서서 교섭을 해 신상을 되찾아 오겠다고 하고, 내 캐릭터 역시 아조쓰에겐 빚이 있으니 우리에게 맡기라고 했다(매력 판정에 근소하게 성공, 하이 프리스트는 '사흘의 말미를 줄테니 그 때까지 신상을 회수하지 못하면 도끼가 부숴져 먼지가 될 거요'라는 조건을 걸었다).

 

아조쓰와 그의 부하 고블린들, 아조쓰와 동맹을 맺은 지저엘프들이 숨어 있는 동굴 근처에서 야영. 도중 지저엘프 암살자들과 거대 거미가 기습을 해 왔다. 암살자들은 이럭저럭 처리했는데 거미가 말썽을 부렸다. 장갑이 높으니 데미지가 안 박혀.....'_` 마치 겁스에서 피하기가 높은 괴물과 싸우는 느낌. 횃불을 휘둘러 방어에 집중하고, 내 전사와 위즈마시아 님의 도둑이 너덜너절해지도록 싸운 끝에 겨우 잡은 뒤(내 캐릭터는 유일하게 레벨이 올랐다) 생포한 암살자 한 놈을 포로로 붙잡고 오만 가지 시도를 다 한 끝에, 겨우 내부 정보를 알아냈다. 이런 건 역시 성기사가 짱이더라.

 

암살자에게서 들은 동굴의 비밀통로를 통해 아조쓰가 의식을 집전하고 있는 최심부의 방 입구까지 도착. 안의 기척을 살피려다가 실패, 기왕 들킨 거 다른 패거리들이 몰려오기 전에 보스만 잡고 신상과 위패를 회수해 튀자... 고 결정하고는 문의 경첩을 때려 부수고는 난입했다. 안에서는 아조쓰가 후방에 대기하며 신상을 가운데 놓고 궁시렁 궁시렁 주문을 외우고 있고, 호위병인 듯한 지저엘프 검호 두 녀석과 고블린 사제 하나가 대기 중.

 

내 캐릭터는 "불카토스여, 당신의 종에게 가호를!"이라고 외치며 아조쓰에게 차지, 일격에 최대 데미지를 띄우면서 보스를 즉사시켜 버렸다(....) "한 방에 최종보스가 죽다니!" 라고 경악하던 Asdee님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아조쓰도 죽어가면서 반격을 가했지만 그럭저럭 맞아줄 만했다. 성기사가 검호 한 놈을 붙잡아 두고, 멧돼지로 변한 드루이드가 다른 한 놈을 상대하는 사이에(도둑은 보물더미를 뒤지기 시작했다) 내 전사는 고블린 사제에게 연이어 돌격. 역시 한 방에 눕혀 버렸다. 초반의 부진을 마지막 전투에서 전부 복구하는 느낌 오오. 반격이 꽤 아프게 들어왔지만 신경 안 썼다(...). 이 시점에서 이미 복수도 했겠다 이젠 신상과 위패만 찾으면 되니 굳이 오래 살 필요도 없다는 심정이 된 터라. 중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검호에게 돌격, 무장해제를 시도하지만 저쪽도 똑같이 무장해제를 해오고... 둘 다 빈손이 된 상태... ...였지만 마스터가 한 발 빨리 "검을 다시 줍습니다!"라고 선언해 버렸다(...) 그에 대해 나도 맨 손으로 쇄도, 녀석을 쓰러뜨리고 마운트를 잡아서는 목을 꺾는다는 선언으로 대응. 다시 한 번 최대 데미지가 뜨면서 아예 목을 뽑아 버리는 장면이 나왔지만("불카토스여, 제 운명을 당신의 손에 맡깁니다"), 그 놈도 최후의 발악으로 할복하듯이 내 캐릭터와 자신의 복부를 한꺼번에 꿰뚫어 버렸고... 생사 판정에 실패, 최후를 맞이했다.

 

드루이드는 황소로 변신해 내 캐릭터의 시신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몰려오는 적들 때문에 실패, 적들 사이에서 홀로 싸우는 성기사만을 뒤에 남기고 도둑(과 그가 챙긴 신상)만 태우고서는 탈출. 도둑은 신상을 팔아먹을 생각을 하고 도중에 도망치려고 했지만(...) 제지당했다. 그 이후로 신상은 제 자리를 찾고 태양은 다시 떠올랐으며, 문제의 동굴은 봉인되는 걸로 엔딩. 성기사의 생사여부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느낀 점은

 

1)딜링, 탱킹, 메즈가 전부 '공격' '방어' '위험회피'로 통합되어 추상적으로 관리되다 보니 다양한 전술 옵션이 구체적으로 지원되지 않는다

2-1)룰의 추상성에 더해, 빨리 선언하는 쪽이 짱이다 보니 머릿속에서 '그림'이 잘 안 나온다. 그걸 빨리빨리 처리하는 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이긴 한데... 내 취향은 아닌 듯. 어쩌면 던젼물이라는 플레이 방식 자체가, 자유로이 의견을 교환하고 '이야기'의 방향을 짜올리는 룰의 취지와는 어긋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2-2)던젼물이라는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룰의 취지를 살리려면 부득이하게 '전투 상황'과 '비전투 상황'을 확실히 구분하고, '전투 상황'에서만이라도 턴 제로 관리를 하며 천천히 전술을 짜고 자원을 관리하며 순차적으로 적을 격파하는 식이 되야 할 것 같은데... 문제는 D&D 4판에서 이걸 확실하게 구분하려다가 전투가 지나치게 모듈화되어 버려 '전투'와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엮이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났다는 거다.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 같긴 한데 잘 안 떠오른다.

3)캐릭터들 간의 인연 관련 룰은 상당히 좋은 접근이라고 생각되는데, 테스트 플레이에서는 그걸 어필할 기회가 많지 않아서 아쉽다. 역시 던젼물이다 보니 더 그런 거 같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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