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아닐까 싶다.
이 나라의 국민들은 해방 이후의 혼란과 한국전쟁 이후의 피폐함을 거치며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성찰할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다. 이승만 이래로 면면히 이어진 성장중심 개발 독재체제는 파이를 나누려면 우선 크기부터 키워야한다는 일견 그럴싸한 논리로 힘을 키웠고, 그로 인한 압축성장은 무수한 부작용을 낳았다.
지금의 일베충들 대부분은 90년대 후반 IMF 구제금융 체제 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20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의 남성들이다. 재계 20위 권 내의 대기업들도 줄줄이 문을 닫고 중소기업은 하루에 100여 개 씩 도산하며 자살률이 급증하고 그에 반비례해 출산률은 급락하던 게 그 때다. 사회에 만연하던, 질식할 것 같은 공포와 불안은 극도로 그들의 정신을 위축시켰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어떤 수단을 써서든 살아 남는 것만이 최우선이 되고, 뭐가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하찮은 게 되기 쉽다. 일베충들은 어린 시절의 그 트라우마를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그 몇 년간은 향후 한국의 모습을 거의 완전히 결정지었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구조가 고착되었고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를 거쳐 사회에 나서며 그들은 자신들이 어린 시절부터 일상적으로 보아오고 겪어 온 '어떻게든 반드시 남을 누르고 승리해야 한다' '밀려나면 죽는 길 뿐이다' 라는 강박을 내면화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승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주변부의 인생을 강요받는다.
'남을 누르고 승리해야 한다'고 여전히 마음 속으로는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대로 보자면) '패배자'의 입장을 강요받는 그들은 잠재적으로 현실은 시궁창이고 너도 나도 다 똑같은 쓰레기들이라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사회적 윤리나 도덕관념을 그들에게 들이대면 그들은 '너도 어차피 나랑 별 차이도 없는 쓰레기일텐데 누굴 욕하냐 ㅆ선비 놈아'라고 느끼고, 상대의 신상을 털거나 해서 어떻게든 꼬투리잡을 건덕지를 찾으려고 안달하고 껀수가 잡혔다 싶으면 그 정도나 성격과는 무관하게 그걸 캡처해 돌려보며 '이중잣대 클라스 보소' 하며 안심하는 거다. 자신들이 비난 받으면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내 행동은 정당하다' '그 이유가 정당한지 어떤지 한번 흑백을 가려보자'라고 하는 대신 오유는 어쩌고 클리앙은 저쩌고 엠엘비파크는 이렇고 듀게는 저렇고 하면서 모든 대상을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려 물타기하려는 경향은 이에서 비롯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베충들이 '너도 나도 다 쓰레기 막장들이고, 도덕군자연 하는 놈들은 다 위선자들이다'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진짜로 도덕이고 윤리고 상식이고 죄다 무시하면서 오직 자신의 이익과 재미만을 위해 악랄해지는 것도 어지간한 멘탈로는 못 한다. 위에서 봤듯이 그들은 보편적인 도덕이나 상식에 대해 반항적이지만, 동시에 그러한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모순적인 욕구를 함께 갖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일베로'와 '민주화'라는 두 버튼으로 대표되는 잣대를 베이스로 해서 '좌파들은 감성팔이나 해대는 좀비지만 우리는 이성적이다' '전라도 홍어 놈들은 핏줄이 그 모양이다, 이는 내 개인적 편견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증명된 객관적 사실이다' 라는 식으로 '적'으로 규정된 상대에 대한 타자화, 악마화를 정당화하려고 함으로써 '비록 우리는 쓰레기들이지만 그래도 좌좀들/홍어들/김치녀들 보다는 낫다'라는 식으로 자위하며 하다못해 일베 안에서나마 승리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거다.
물론 이 두 이유가 전부는 아닐 거다. 국정원에서 일베충들 초대해 특별 강연한 케이스 같은 걸 비롯해 현 정부에서는 정책적으로, 아주 적극적으로 일베를 지원하고 있다. 일베 전 운영자였던 새부가 일베를 판 이후, 그걸 누가 샀는지(신분세탁하고 새부 자신이 되사들였을 가능성도 높다... ...기보다는 개인적으로는 거의 확신한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 뭐... 그래봤자 서북청년회나 깨스통 영감님들과 같은 차원으로 써먹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