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CALENDAR

«   2025/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 CLOUD

  • Total :
  • Today :  | Yesterday :



지인 결혼식이 있다. 안 본지 꽤 된 친구도 올 모양인데.... 전에는, 그 친구랑 좀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친구 앞에서는 좀 AT 필드가 무너진달까....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 내 안에 유쾌하고 즐거운 화제는 별로 많지가 않다.

 

딱히 나한테 우울증 증세가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일도 하고 있겠다, 밥도 잘 먹고 있겠다, 주말마다 RPG도 잘 하고 있겠다, 요즘 슬럼프긴 하지만 소설도 아직 쓰고 있겠다.... 늘 마음 속 한 구석이 침울하고 가끔 별 이유도 없이 확 나쁜 기억이 떠오를 때는 혼자 멍하니 술을 퍼마시지만 평소에는 거기에 짓눌릴 정도는 아닌, 딱 그 정도 수준이 몇 년째 계속 이어지고 있다.

 

다만... 그 친구는 그런 이야기를 무척 잘 들어주는 편이고, 한 때는 나도 모르게 그 친구에게 꽤 의존했던 모양이다. 지금 그 친구는 결혼했고, 아마 남편과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친구한테, 오랜만에 만난 자리-게다가 축하해야 할 날-에서 굳이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 난 여전히 그 친구를 좋아하고 아끼지만, 그 친구 역시도 그러할지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본다 생각하고 갈까... 내 안에 쌓여 있는 것들이 튀어나오겠다 싶으면 중간에 돌아오지 뭐ㅋ

 

 

내 문제는 내 문제일 뿐이다. 해결할 수 없다면 적어도 혼자 견디기라도 해야 한다. 삶이 쉬운 사람 따위는 아무도 없고, 이 나이 먹고 그런 푸념을 늘어놓는 건 추하고 나약한 짓이다. 지금까지 난 대체로 잘 해왔고, 앞으로도 어떻게든 될 것이다. 난 '强者'가 되길 원해왔고, 그런 내게 '강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좀 더 마음을 열고 타인을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해줬던 사람은- 한 때 더없이 소중한 친구라고 여겼고 나 역시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고 간절히 여겼던 사람은 이제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대상이 되었다. 그 사람이 애초에 악의적으로 날 속인 것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텐데, 나는 그 말이 최소한 당시에는 선의와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내가 절망한 이유다.

 

괜찮다. 지금까지 난 대체로 잘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난 강하고, 혼자서도 어떻게든 해낼 수 있다. 다르게 살 수도 있을 거라고 여겼던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내 앞에 있으면 '네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건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고 비웃으면서 두들겨 패 준 뒤, 술 한 잔을 사주고 싶다는 망상도 종종 한다. 

 

하지만 가끔씩, '도대체 언제까지?'라는 의문이 들면 미치도록 두려워진다.

 

 

그 친구가, 이 글을 읽지 않으리라는 것이 다행스럽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