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알라토텝… 미(M)친 불(B)도저… 내가 마지막 국민이다… 이제 들어줄 이 없는 말을 해야겠다….
그 시작이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으나 아마도 몇 달 전이었으리라. 당시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던 긴장감은 오싹한 것이었다. 정치, 사회적으로 격변의 시기였으며, 기이하고 음산한 물리적 위기감까지 덧씌워져 있었다. 그 위기감은 너무도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한밤의 가장 섬뜩한 환영에서만 상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겁에 질린 창백한 얼굴로 혼자서는 입에 올리거나 인정하지 못할 경고와 예언을 속삭였다. 터무니 없는 공포와 탐욕이 이 땅을 휩쓸었고, 행성 간 심연에서 솟구친 냉기로 인해 사람들은 어둡고 외딴 곳에서 몸서리쳤다. 계절의 변화에도 사악한 변화가 깃들어, 그 해 가을은 소름이 끼치도록 무더웠다. 사람들은 누구나, 지구뿐 아니라 우주의 통제력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미지의 신과 세력에게 넘어갔다고 생각하였다.
한국에서 쥐알라토텝이 출현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다만 쥐를 닮은 모습과 토건의 피를 지녔다고 알려졌다. 한국의 노년층들은 그를 볼 때마다 황망히 무릎을 꿇었으나, 그들 스스로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쥐알라토텝은 자신이 근현대 한국사의 암흑에서 깨어났으며, 수도 서울을 하느님에게 봉헌했노라 말하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호리호리한 체구, 불길하고 음산한 모습을 이끌고 문명 세계 도처에 나타난 쥐알라토텝은 도곡동 땅을 비롯한 부동산과 조중동 같은 언론을 장악하여서는 그것들을 결합하여 이상한 기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경제, 특히 건설업과 부동산을 자주 입에 올렸으며, 그 힘을 몸소 시연함으로써 군중들을 경악에 빠뜨렸으나, 그럴수록 그의 명성은 드높아졌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쥐알라토텝을 보라고 권하면서 몸서리쳤다. 쥐알라토텝이 가는 곳에 휴식은 사라졌다. 그가 잠시 머무는 시간마저 악몽의 비명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악몽의 비명이 그처럼 공공의 문제가 된 적이 일찍이 없었다. 현자들도 잠시나마 잠들기를 두려워하였다. 다리 아래 푸른 수면에 비추는 창백하고 가여운 달빛과 병적인 하늘을 배경으로 부서진 4대강들을 바라보면서 도시의 비명을 듣는 편이 더 낫다고 여겼기에.
내가 사는 곳, 거대한 범죄의 온상이자 끔찍한 이 옛 도시에 쥐알라토텝이 나타났을 때를 기억한다. 친구 한 명이 쥐알라토텝을 보고 느낀 매혹과 황홀경을 내게 알려 왔을 때, 나는 그 절대적인 신비를 파헤쳐 보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친구는 나의 거친 상상력도 미치지 못할 만큼 끔찍하고 강렬했노라 단언했다. 그가 단언한 7% 경제성장과 일인당 국민소득 4만불과 세계 7대 강국 반열 진입은 쥐알라토텝이기에 가능한 예언이며, 그가 부시 형님의 골프 카트에 가득히 채운 FTA 양보안들을 목격한 군중들은 자신도 모르게 전대미문의 언어를 토해낸다고 말이다. 게다가 쥐알라토텝을 믿는 사람들은 남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내가 쥐알라토텝을 보기 위하여 불안한 군중 틈에 끼어든 것은 어느 뜨거운 가을밤이었다. 숨 막히는 밤, 소망교회 제단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 그림자가 진 휘장, 나는 보았다. 폐허 속에서 일렁이는 한국전쟁의 그림자와 빛나는 근대화의 기치 너머로 스치는 노동자와 농민들의 얼굴을. 이 세계가 암흑에 맞서, 절대적 공간에서 밀려드는 파괴의 물결에 맞서 싸우는 것을, 소용돌이와 격동 속에서 희미해지고 싸늘해지는 태양 주위를 돌며 몸부림치는 것을. 그때 놀랍게도 군중의 머리 위로 북풍이 일었고, 천안함이 침몰했다. 형언할 수 없는 기괴한 그림자들이 나타나 사람들의 머리에 웅크리고 앉았다. 누구보다 냉철하고 과학적이었던 나는 온 몸을 떨면서 억눌린 목소리로 그의 ‘BBK 실 소유 여부’와 ‘고소영&강부자 인사’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였다. 쥐알라토텝은 우리를 이끌고 아찔한 계단을 내려와 음습하고 뜨거운 한 밤의 거리로 나갔다. 나는 두렵지 않다고, 그럴 이유가 없다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위로하려고 함께 소리쳤다. 도시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일 거라고, 아직은 살아 있을 거라고 우리는 서로에게 다짐하고 다짐받았다. 불빛이 희미해지기 시작하자, 우리는 촛불을 너무 모자라게 챙겨왔다고 연거푸 안타까워 했고, 서로의 기묘한 얼굴 표정에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달빛에 의지한 채 상상할 수 없는 운명을 예감하듯 무의식적으로 행렬을 이루어 가는 동안, 나는 녹색의 달에서 떨어지는 무엇인가를 보았다. 그런데 거리에 들어서자, 파헤쳐진 보도를 대신해 잡초가 채워져 있었고, 시가 전차의 철로는 녹슨 흔적 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 곧이어 창문 없는 시가 전차 한 대가 옆으로 기우뚱하게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지평선을 바라보자, 청계천에 있던 소라기둥 탑이 사라지고 없었고 서울 광장도 붕괴되어 있었다. 그때부터 행렬의 대오가 여러 줄로 나뉘어져 각각 다른 방향으로 이끌려가기 시작하였다. 그중에서 한 무리는 왼쪽의 비좁은 ‘대형 교회’ 오솔길로 들어섰는데, 그들이 사라진 뒤로 소름끼치는 신음만이 메아리쳤다. 잡초가 무성한 ‘좌파 적출’ 지하철 입구를 따라 내려간 또 다른 행렬, 그들 사이에서 광기어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속한 행렬은 교외 ‘친 재벌’ 쪽으로 휩쓸려갔고, 문득 후덥지근한 가을밤에 어울리지 않는 오싹한 냉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두운 황야를 지나갈 때, 오싹한 달빛에 반짝이는 것은 떨어진 주가였다. 자취 없는 불가사의한 주가의 눈발이 한쪽에만 흩날렸고, 반짝이는 눈의 장막 사이에 더없이 어두운 심연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어둠의 심연 속으로 꿈결처럼 들어가는 행렬의 모습이 뿌옇게 흐려졌다. 나는 뒤에서 서성였다. 녹색으로 물든 눈송이와 그 틈에 숨겨진 암흑이 두려웠고, 총총히 사라지는 개미 투자자들 뒤로 불안한 통곡의 메아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행렬에서 벗어나 뒤에 남아 있고픈 나의 의지는 오래 가지 않았다. 앞서 간 사람들의 손짓에 이끌리듯 나는 반쯤 공중에 떠서 거대한 폭락 주가의 눈더미 사이를 지났고, 공포에 전율하면서 상상할 수 없는 한반도 대운하 속으로 들어갔다.
울부짖는 정신, 침묵의 착란, 그것을 신만이 알리라. 손이 아닌 손에서 몸부림치는 메스껍고 예민한 탐욕이 있었다. 부패하는 생물의 한 밤을 세차게 소용돌이쳐서, 한때 도시였으나 지금은 죽어서 곪은 세상의 시체들을 스쳐서, 희미한 별빛을 어루만져 떨게 만드는 공포가 있었다. 세상 저 너머 파시즘의 어렴풋한 유령. 지하의 이름 모를 암반에서 시작되 빛과 어둠의 영역 너머 아찔한 진공까지 치솟은 불경한 배금주의의 사원들의 희미한 기둥. 그 역겨운 물신의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억눌린 광기의 북소리가 들려왔다. 시간 너머의 불 꺼진 방에서 불경한 피리 연주의 희미하고 단조로운 선율도 들렸다. 고약한 북과 피리 소리에 맞춰 천천히, 서툴고 우스꽝스럽게 춤을 추는 거대하고 음산한 신들. 눈도, 목소리도, 영혼도 없는 그 괴물들의 중심에 쥐알라토텝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