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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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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떨쳐냈다. 8층 정도 높이면 확실할 것 같기도 한데. 요즘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자살 충동은... 정말 힘겹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순간에는 들지 않는다. 그런 순간에는 의외로 우울감이나 무력감 같은 느낌보다는 오히려 분노와 투쟁심이 우선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약간은 짜증스럽고 약간은 피곤하고 약간은 구질구질한... 그런 비교적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아무 이유도 없고 맥락도 없이 불현듯 찾아드는 게 아닐까 싶다.


.........

내가 겪은 일들은 별로 특별할 게 없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하고, 세상에 비극은 이미 넘치도록 많다. 그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고통이 내게 있어서는 유일하고 확고하다는 것도 명백한 진실이다. 그 유일하고 확고한 고통이 내게 아무리 절실한 것이었다 해도 타인이 그를 이해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나는 그것을 배웠다.

내 문제는 전적으로 내게 속한 것이며, 어떻게든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훨씬 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건 불가능하건 그 과정은 너무도 힘겹고... 누가 대신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가끔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 역시 들어줄 수 있기를 바랐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럴 수 있을 듯한 사람이 나타나도 믿을 수가 없다. 그 모든 것들은 이제 아무래도 상관 없는 게 되었다. 가끔, 아니 꽤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에게서 위안을 받고, 누군가의 위안이 되어 주고 싶었던 몇 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 앞에 있다면 나는 그 나를 비웃을까, 동정할까.

요즘은...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그 고통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내 고통을 얄팍하고 하찮은 것으로 취급한다고 해도, 그에게 '너도 나와 똑같은 고통을 겪어봐야 한다'고는 요구하지 못하겠다. 최규석 화백의 만화 <습지 생태 보고서>에서는 친구들끼리 둘러 앉아 술을 마시다 누군가가 힘겨운 개인사 이야기를 꺼내자 다들 '겨우 그 정도 가지고'하며 경쟁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장면이 나온다. 고통마저도 자기 과시에 소비되는 그 한심한 작태라니.

항상 올바르게 살 수는 없다. 그래도 해선 안 될 일에 대한 기준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명예다.


그렇다면, 차라리 누구에게도 이해되지 않는 쪽이 더 낫지 않을까. 나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홀로 견디고, 세상은 평화롭고, 신은 저 멀리 있고.

+

핸드폰 메모리 에러 때문에 전화번호부가 모두 지워졌다. 켜지지도 않던 걸 칩을 교체해서 일단 쓸 수는 있게 되었지만 예전 번호들은 복구할 수 없을 모양이다. 예전에 사랑했던 분 번호도 지워져 버렸다. 어차피 이제는 연락하지 않을 생각이긴 했지만 '내가 결정한 것'과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것'은 전혀 다르다.

남은 건 사진 몇 장과 끝내 건네주지 못한 선물, 그리고... 추억 정도구나. 사람 사는 게 그런 거려니 싶으면서도.... 좀..... 그렇다.

설니홍조雪泥鴻爪, 라고 했던가.

+

그래도, 견딜 수 있다. 내 '강함'은 그 정도로 하찮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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