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초에는 입구만 봉쇄하면 참가자들을 막을 수 있는 청계광장보다 사방이 트인 광화문 쪽이 참가자들에게 유리하리라고 예상했는데, 전경들 측에서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블럭 별로 병력을 축차 투입해서 참가자들을 둘러 싸 고립시키는 전술을 썼다. 그 때문에 동화 면세점 앞에 모인 인원은 수 백여 명에 불과했다.
청계 광장에서는 종로 3가에서 가두 행진 중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는 사람들과 합류할 것이냐, 이 자리를 지킬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사람은 머릿수가 늘어날 수록 충동적이 된다고 보는 나는 동화 면세점 쪽에서 같이 온 여자분들에게 가급적 이곳에 남는 게 안전하다고 설득하려고 했지만 그 두 분은 우리가 가서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속으로 답답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지만... 한 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이처럼 의견이 갈린다는 것 자체가, 통일된 움직임이 어렵다는 것 자체가 배후 따위는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난 그 여자 분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그 분들은 계속 합류 의사를 밝히셨고... 난 마지못해 두 분을 따라가 무사히 합류하시는 걸 보고 돌아가겠다고 했다. 분위기 험악한 곳에 여자 둘만 떨렁 보내자니 마음에 걸렸다=..=
11시 반 경, 종로 3가 도착. 도로에는 수 만명이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고, 방송국 차량도 군데군데 보였다. 당장 충돌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 난 인파에 섞여 들어, 시민들 선두에서 어떻게든 사람들을 막아 보려고 노력했으나 무리였다. 옆에 계시던 스님 한 분에게 군중들을 진정시켜 주실 수 있냐고 부탁해 봤지만 그 분도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셨다.
앞으로는 방패를 앞세우고 도열한 전경들, 뒤로는 분노한 군중들을 두고 그 사이에서... 난 깨달았다.
나는, 이명박의 퇴진보다도 시위 참가자들의 안전을 훨씬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것은 전자만큼이나 이뤄지기 어려운 바람이라는 걸.
지금... 술 마시면서, 아프리카 방송 생중계를 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마음이 복잡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집회에 배후 따위는 없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사람들을 조직화하고, 체계화시켜 그들의 의지를 한 곳으로 모을 지도부가 필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난 그렇게 생긴 지도부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휘둘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없던 '배후'가 생길 때 정부는 탄압의 확실한 빌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난 그게 걱정된다, 너무도.
ps=그 여자분들 2명은 과연 그 날 무사히 돌아가셨을까,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