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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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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생명 앞에서 촬영. 원래 7시 집결 예정이었지만 조금 늦게 도착했다. 지상으로 올라서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닭장차들과 전경들. 그들도... 보통 때는 적당히 선량하고 적당히 비겁한,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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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사거리 이순신 장군상. 여기서 전투복 차림의 아저씨들 몇 명을 만났다. 다음 아고라에서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다, 전경들로부터 어린애들과 여자들을 지키겠다는 의미에서 전투복을 입고 가겠다'고 하는 예비역 분들의 글을 봤는데, 그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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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면세점 앞에서. 세번째 사진은 MBC 기자분.

당초에는 입구만 봉쇄하면 참가자들을 막을 수 있는 청계광장보다 사방이 트인 광화문 쪽이 참가자들에게 유리하리라고 예상했는데, 전경들 측에서도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인지 블럭 별로 병력을 축차 투입해서 참가자들을 둘러 싸 고립시키는 전술을 썼다. 그 때문에 동화 면세점 앞에 모인 인원은 수 백여 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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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경, 문화제가 끝난 뒤 본격적인 집회가 시작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배후'가 없이 시민들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참가한 집회의 특성 상 집행부의 목소리가 미약했고, 이것은 조직적이고 통제된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약점으로 이어졌다. 이 뒤에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거냐고 사람들은 저마다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한 채 서로에게 물었고, 저마다 청계 광장으로 가자 명동으로 가자 종로 3가로 가자 말들은 많았지만 통일된 움직임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난 길 건너 청계 광장에 천여 명 가량이 모여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쪽으로 가려 했으나 한 참가자 분이 '사복경찰들이 시민들 틈에 섞여 감시하는 모양이니 돌아서 가라'라고 귀띔해 주셨다. 여자분 2분과 함께 시청 쪽으로 우회하여 청계 광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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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비아에서 온 손님들. 난 내가 한국인임을 구체적으로 자각하고 자랑스러워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단지 숨을 쉬고 밥을 먹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먼 곳에서 온 방문객들의 시선을 살피며, 난 왠지 참기 힘든 부끄러움을 느꼈다.

청계 광장에서는 종로 3가에서 가두 행진 중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는 사람들과 합류할 것이냐, 이 자리를 지킬 것이냐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사람은 머릿수가 늘어날 수록 충동적이 된다고 보는 나는 동화 면세점 쪽에서 같이 온 여자분들에게 가급적 이곳에 남는 게 안전하다고 설득하려고 했지만 그 두 분은 우리가 가서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속으로 답답하기도 하고 걱정도 됐지만... 한 편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이처럼 의견이 갈린다는 것 자체가, 통일된 움직임이 어렵다는 것 자체가 배후 따위는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난 그 여자 분들을 설득하려고 했으나 그 분들은 계속 합류 의사를 밝히셨고... 난 마지못해 두 분을 따라가 무사히 합류하시는 걸 보고 돌아가겠다고 했다. 분위기 험악한 곳에 여자 둘만 떨렁 보내자니 마음에 걸렸다=..=

11시 반 경, 종로 3가 도착. 도로에는 수 만명이 발디딜 틈 없이 들어차 있고, 방송국 차량도 군데군데 보였다. 당장 충돌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 난 인파에 섞여 들어, 시민들 선두에서 어떻게든 사람들을 막아 보려고 노력했으나 무리였다. 옆에 계시던 스님 한 분에게 군중들을 진정시켜 주실 수 있냐고 부탁해 봤지만 그 분도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셨다.

앞으로는 방패를 앞세우고 도열한 전경들, 뒤로는 분노한 군중들을 두고 그 사이에서... 난 깨달았다.

나는, 이명박의 퇴진보다도 시위 참가자들의 안전을 훨씬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것은 전자만큼이나 이뤄지기 어려운 바람이라는 걸.

지금... 술 마시면서, 아프리카 방송 생중계를 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마음이 복잡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 집회에 배후 따위는 없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사람들을 조직화하고, 체계화시켜 그들의 의지를 한 곳으로 모을 지도부가 필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다. 그리고 난 그렇게 생긴 지도부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휘둘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없던 '배후'가 생길 때 정부는 탄압의 확실한 빌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난 그게 걱정된다, 너무도.

ps=그 여자분들 2명은 과연 그 날 무사히 돌아가셨을까,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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