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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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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는, 그리스도 사후 신학계 최대의 화두였던 선악의 일원성 대 이원성이라는 두 가지 상이한 신학적 관점 중 후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의문- 신이 무한히 선하고 인자하다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 무수한 '악'들은 어디에 기원을 두고 있는가. 이 세계에서 명백히 실존하고 있는 악에 대해 신은 책임이 없는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숱한 신학자들이 여기에 매달렸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초대 교회가 세워지고, 그 영향력이 유태 지방은 물론 그리스 쪽으로도 뻗어 나가면서 초기 기독교는 신 플라톤 철학과 만났다. 인간이 인지 가능한 물질 세계는 모두 현상을 초월한 완전한 관념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데아 이론과 기독교 교리가 만나면서 영지주의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당시의 신 플라톤 주의자들의 이론은 이렇다: 태초에 완벽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일자'가 있다. 형상으로 가득찬 우주가 되기를 원한 '일자'는 마치 태양이 빛과 열을 발하듯이 자신을 방사하여 '존재'를 유출한다. 인간이 말하는 신은 바로 이 '존재'다. '존재'는 다시 '누우스(정신)'를 유출한다. 존재론적 우위와 도덕적 우위를 동일시했던 그들은 누우스까지는 '일자'가 욕망한 우주의 완성에 기여하는 것이기에 선하긴 하되, 이러한 유출이 거듭될수록 그 완전성은 열화되어 간다고 보았다. '누우스'가 자신의 존재를 생각함으로써 '프시케'가 만들어졌다(삼위일체 교리에서 성부가 자신의 존재를 생각함으로써 성자가 생기는 것과 같다). 그리고 프시케는 최종적인 유출물인 질료에 이데아와 물리적 형상을 새겨서 이 물질 세계를 창조해 냈다.

당시의 신학자들 일반은 이 세계에 횡행하는 악의 존재를 부정하자니 너무 비현실적이고, 긍정하자니 신의 선함을 부정해야 한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해 있었다. 모든 것이 신의 피조물이라는 성경의 문구는 너무 명확했고, 학자들은 신이 창조한 것들 중에 '악'이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논증해야 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학자 바실리데스가 그 때까지 '신앙보다는 지식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하나의 학문적 태도에 불과했던 영지주의를 이데아 이론과 결합하여 본격화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 세계가 본질적으로 악하며 천하다고 믿었다. 이 세계는 사탄의 것이라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가르침과도 비슷한 면이 있지만, 영지주의자들은 무한히 선한 신이 이러한 악한 세계를 만들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그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영지주의자들은, 신보다는 못하지만 큰 힘을 가고 있으며 사악한 의지를 가진 '무언가'가 물질세계와 인류를 창조했다고 믿었다. 2세기의 영지주의자 마르키온은 이 '무언가'에 사탄의 칭호를 부여했고,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정의롭지만 너무도 엄격하고 가혹한 신을 사탄이며 물질세계의 창조자로 규정했다.

2세기 이집트의 영지주의자인 발렌티누스는 마르키온의 이론을 승계하여 악을 설명하는 최종적인 정의를 내렸다: 악은 신 이후로 유출이 거듭되며 완전성이 열화됨으로써 생긴 형이상학적 결과로 처음 생겨났다. 이 유출의 끝에 '아카모스'가 있었고, 아카모스는 구약의 신-즉 사탄-을 생성했다. 사탄은 물질을 통해 인간의 육체를 만들었고, 따라서 이 물질 세계에 속한 인간은 물리적으로 사악하다. 그리고 영혼 본연대로라면 선해야 할 인간이 마음과 육체를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생긴 도덕적 결과를 통해 우리가 말하는 '악'은 이 세계에서 실체를 얻었다.

영지주의 내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발렌티누스 학파가 구약의 신을 사탄이라고 보아 구약의 내용을 대부분(혹은 완전히) 부정하고, 완전히 선하고 순결한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도 물질적인 육체를 가지지 않고 대신 인간 비슷해 보이는 형상을 임시로 두른 채 지상에 왔다 갔다는 이론(가현설이라고 부른다)을 정립함으로써, 영지주의는 정통 기독교계로부터 완전히 이단으로 규정되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공인 이후 급속히 힘을 얻은 기독교는 탄압당하던 지하 종교의 위치에서 벗어나 지배자와 권력자의 종교가 되었고, 이단에 대한 물리적인 박해도 가능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진다. 그렇게 커진 기독교의 압박과, 지금까지 너무도 많은 신화와 전승을 외부로부터 차용해 온 나머지 생기기 시작한 내부적인 모순(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존재론과 도덕의 동일시라던지)이 격화된 결과 영지주의는 4세기 경 명맥이 끊어진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며 기독교 교리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성직자의 금욕주의나 순결주의 확립에 그 흔적이 크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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