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CLOUD

  • Total :
  • Today :  | Yesterday :



사실 이건, 저 자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볼 분들은 없으려니 생각하면서도 몇 자 적습니다.

윤석열을 막기 위해선 이재명을 찍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재명을 찍는 이유가 '윤석열이 되면 나라를 조질 것'이라는 공포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윤이 나라를 조질 것이라는 징후는 수없이 많습니다만, 일단 그건 둘째 치고요.

왜냐하면 공포를 동력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상대가 누구를, 어떤 이유로 찍었건 간에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 모두를 한데 묶어서 ‘배제해야만 할 사악한 적’으로 규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두려워하는 대상이 자신보다 약하면 잔인해지고, 자신보다 강하면 비굴해지기 쉽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인간의 도덕성에 큰 기대가 없고,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언제 어디나 다 비슷비슷하게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인이나 군자가 결코 아닌, 그런 탐욕과 이기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 민주주의이며 너도 나도 그런 평범한 사람들인 만큼 민주주의는 결국 그 정도 수준에 맞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가치 있는 이유는, 그런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끝없이 서로 갈등하고 대립해가면서도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서로 좀 더 배우고 나아질 기회를 주는 유일한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의 무수한 시행착오, 서로에 대해 쌓이는 오해와 편견, 불신이 매우 비싼 사회적 비용인 건 사실이고, 그게 민주주의가 가혹한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역시 개인적으로 저는, 현 제1야당이 보수 정당이 아니라 퇴행적이고 수구적이며 반드시 박멸해야 할 사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윤을 앞세운 ‘그 당’이 나라를 조질 것이라는 공포심 때문에 이재명을 찍었는데도 그가 당선되지 못했다면, 그 공포심에 잡아먹혀 윤을 지지한 모든 이들을 증오하게 될 겁니다. 그들 역시 앞으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만일 바뀌지 않는다 해도 여전히 이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민주주의 하의 동료 시민인데도 불구하고요. 어쩌면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과 저 자신)이 잘못된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르죠. 그리고 그러한 증오는 '개빻은 저들을 전부 속 시원하게 쓸어버릴 착한 독재'에 대한 욕망을 부추길 겁니다.

사실, 저 역시 윤의 당선이, 그리고 ‘그 당’이 집권여당이 되는 미래가 두렵습니다. 그러나 윤이 아니라 이재명을 찍는 이유가 오직 그러한 공포심 때문만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신념과 의지를 한 표에 싣는 게 더 나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정책에 있어서는 심상정이 이재명보다 더 낫습니다. 심상정은 예일 뿐, 자신의 계급과 입장을 더 잘 반영하는 다른 제3의 후보에 힘을 실어주는 것 역시 가치 있는 선택입니다. 당선이 되지 않는다 해도 득표율은 그 후보가 표방하는 가치를 대외적으로 증명하고, 그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을 집결시킵니다. 무효표를 던지거나 투표를 포기하는 건, 아무 것도 나타내지 못합니다. 

전 내일 ‘착한 독재’를 거부하는, 민주주의의 약점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향하는 사회의 시민이 되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그리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최악의 가능성이 현실이 된다 해도 윤이나 ‘그 당’ 의원들, ‘그 당’ 친화적인 고위 관료와 언론은 미워할망정 동료 시민들끼리는 너무 증오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