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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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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차별주의자들은 제끼고, 그 외의 사람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는 주된 논지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선 외면한 채 겉으로만 깨어 있고 올바른 척하는, 1세계 백인들(특히 미국 리버럴들)의 자기만족적 위선'이라는 건데 그 말도 나름 일리가 없지는 않다. 미국에서 흑인을 '블랙' 대신 '아프로 아메리칸'으로, 미국 원주민을 '인디언' 대신 '네이티브 아메리칸'으로 호칭하는 것도 이전에 비해 용어 자체의 차별적 뉘앙스는 확실히 옅어졌지만 정작 흑인들이나 미국 원주민들 의견은 안 묻고 백인들이 알아서 결정한 거거든. 흑인 입장에선 아프로 아메리칸이란 단어가 노예로 끌려와서 내내 차별에 저항해 온 역사적 맥락을 삭제한 밋밋하고 기계적인 표현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 의견도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봤을 때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대기업 경영자나 대형 언론인, 고위 관료, 선출직 공무원이 아닌 공장 나가는 옆집 김씨나 택시 모는 앞집 최씨, 편의점 점장인 뒷집 박씨, 고시낭인인 윗집 이씨는 애초에 개인 단위에서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여성 차별이나 동성애 혐오에 반감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난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범속한 소시민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소시민의 입장에서, 여자들 앞에서 '남자가 역차별 당한다' 같은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일상적 레벨에서 개인이 스스로를 규율하는 최소한의 기준은 되어줄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 자체를 경계해야 할 때는 오직 그 자체를 명분 삼아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쓰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었을 때 뿐이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선 그런 자들도 물론 있지만, 아직 그 정도 레벨은 아니다(애초에 그런 사람들이 주류가 될 정도라면 도덕적 명분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힘이 없어진 사회라는 뜻이다). 내가 보기엔 인간이란 원래 그런 자기만족적 위선이라도 스스로 만들어 내어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않으면 짐승보다 나을 게 없는, 근본적으로는 우리 집 고양이보다 딱히 고귀하거나 특별할 것 없는 생물이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별로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휴머니스트가 아니다.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다. 항상.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