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스포 많음.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라거나 한 요소들은 가급적 언급 안하고, 확고한 장단점 위주로 쓴다.
장점:
1)라이트세이버 검술과 포스가 조합된 멋진 전투씬. 특히 초반 레이와 카일로 렌과의 1차전은, 둘이 물리적으로 다른 장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깨어난 포스부터 강조된 둘 간의 강한 포스 연결에 힘입어 마치 한 장소에서 접전을 펼치는 것처럼 공방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특이점을 굉장히 멋지게 시각화시켰다. 그저 정신적인 대결이 아니라 전투에 휘말려 상대방 주변의 기물이 파괴된다거나 하는 요소가 잘 살아 있어서 보는 내내 감탄했다. 라제 때 스노크 앞에서 싸우던 장면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2)과잉되지 않은, 자연스럽게 나타난 '올바름':라제에서 짜증났던 게, 원론적으로는 옳은 주제를 너무 촌스럽고 직설적이며 교조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런 거 자체를 'PC주의(엄청 웃긴 표현이다)'라고 부르며 ㅂㄷㅂㄷ거리거나 '대중 영화에 사상 담으면 안 된다' 같은 병맛 넘치는 소리를 늘어놓는 얼간이들의 광광거림은 귀담아 들을 가치가 없다. 하지만 라제는 그냥 수준이 너무 형편 없었다(카미카제 씬을 떠올리면 지금도 빡친다. 정치적 올바름을 조롱하는 거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는 훨씬 절제된 방식으로, 이야기 흐름을 끊지 않고 그를 보여준다. 츄바카가 메달을 받는 장면, 마지막에 레즈비언 커플로 추정되는 두 여성이 키스하는 장면 등.
3)전체적으로 깨알 같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는 추억팔이 꺼리들:랜도 칼리시안의 재등장과 반가워하는 츄바카(에피 5에서는 츄바카가 랜도의 팔을 뽑으려 했었지ㅋ), 엔도 행성에 추락해 있는 데스스타2의 잔해, 포스의 영이 된 루크가 레이 앞에서 띄워 올리는 엑스윙, 다시 얼굴 비친 이워크 등등.
단점:
1)너무 뜬금 없는 팰퍼틴의 재등장 및 레이와의 관계. 사실 깨어난 포스 때부터 레이가 팰퍼틴이나 아무튼 시스 쪽 네임드와 뭔가 연관이 있으려니 싶긴 했다. 스토리 내적인 근거보다는 그저 '카일로 렌이 한과 레아의 자식이라는 '빛'에서 태어나 '어둠'을 지향하는 인물이니 그 대극인 레이는 반대로 '어둠'에서 태어나 '빛'을 지향하는 인물로 설정되어야 아다리가 맞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결국 그 추측이 들어맞긴 했는데 전혀 감흥이 없다. 이 스타워즈 시퀄 3부작은 구 6부작을 계승하는 동시에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스타워즈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라제에서는 그걸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무리수를 많이 둔 데다가 너무 터무니 없는 초전개가 많아서 문제였을 뿐 그러한 근본적인 필요성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얌마.
팰퍼틴은 옛 은하계를 어둠으로 뒤덮으려고 했던 절대악으로, 결국 다스 베이더는 스스로를 희생해 그를 제거함으로써 포스의 균형을 가져올 자라는 예언을 실현시키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구원하게 되었다(클래식 3부작의 주인공은 루크고, 이 과정에서 루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긴 했지만 결국 개심하고 최종보스에게 막타를 친 게 베이더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그 전까지 보여준 최종보스다운 사악한 카리스마는 물론 강렬하기 짝이 없었지만, 상징성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팰퍼틴(나아가 시스 세력)은 노골적으로 나치를 모델로 한 악역 집단으로써 21세기에는 안 어울린다(물론 나치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임팩트 있는 개새끼들이 표방했던 잔인한 배타성과 선민의식, 차별주의는 현대에도 세계 각지에서 건재하지만, 그게 나타나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상징성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깨어난 포스와 로그 원을 통해 처음 스타워즈 시리즈를 접한 젊은 관객들은 영화 시작하자마자 '그래서 팰퍼틴이 누군데 십덕 새끼야'라는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쌍제이는 앞서의 두 작품에서 언급 한 마디 없었던 팰퍼틴을 뜬금 없이 되살려내서 다시 최종보스로 삼았다. 아니 그럼 베이더의 그 장렬했던 희생은 뭐가 된 건데 응응응?
주절주절 말이 너무 많다는 문제도 있다. 팰퍼틴은 레이에게 "나를 죽여라, 그럼 네가 팰퍼틴 여제가 될 것이다"라고 대놓고 말해 버린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면 레이가 자신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라는 계산이 있었으니 한 소리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자신의 의도를 그렇게 면전에서 대놓고 밝힌다는 게........ 어............ 음........넹...............................................-_-
2)엑세골에 대충 데굴데굴 굴러 다니고 있는 신형 스타 디스트로이어:확 깨는 설정. 영화의 내용으로 봤을 때 이 스타 디스트로이어들은 사실 살아남았던 팰퍼틴이 재기를 꿈꾸며 총력을 동원해 다시 모은 한타 병력이다. 물론 그만큼 강하고 임팩트 있게 나와야 맞긴 하다. 하지만 하나 하나가 데스스타급 파괴력을 가진 주포를 상비하고 있는, 설정 상으로는 역대 최강의 스타 디스트로이어가 얼핏 보기에도 100대 넘게 날아오르는 건 너무 오버 밸런스다. 분명 '와 씨 개쩐다' '전례 없는 위기다' 라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 장면인데 '이런 깡촌 변두리 행성에서 저 정도 함대를 꾸릴 수 있는 자금과 자재, 인력은 어디서 나온 거지?' '이 정도 대공사를 치르는 게 티가 안 날 리가 없는데?'라는 생각부터 든다.
말하자면... 깨어난 포스에서 퍼스트 오더라는 듣보잡 집단이 겨우 수십 년 사이에 신 공화국 내부에서 세를 불려왔고 영화 시작부터 이미 강력한 적대 세력이 되어 등장하는 거 보면서 '저게 말이 되나?' '초기 상황 세팅일 뿐이니 그러려니 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너무 신경쓰이는데?' 생각 들었던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하나 하나가 데스스타나 다름 없는 이 전례 없는 막강한 함대는 레이가 포스 라이트닝 받아치기살법 한 방으로 팰퍼틴을 물리치는 순간 너무 허무하게 무너진다. 에피 4의 데스스타는 영화 절반이 그걸 파괴하기 위한 과정으로 채워졌고, 훗날 나온 로그 원에서 진 어소 일행이 그 설계도를 빼돌리기 위해 희생하는 과정을 보여줘서 비장함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스타 디스트로이어 함대의 경우는 '뜬금 없이 갑툭튀한 지나치게 강한 적이, 또 너무 뜬금 없이 전멸했다' 싶어서 감정적으로 따라갈 수가 없다. 야임마.
3)헉스의 뜬금포 배반과 사망:권력욕에 눈이 멀어 정치적 라이벌일망정 어디까지나 같은 편인 카일로 렌을 제거하기 위해서 명백한 적인 저항군과 손을 잡는다는 거 자체는... 뭐, 현실 역사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깨어난 포스에서 묘사된 헉스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적대 세력 중에서도 신비주의적, 초월적, 영적 성격을 띄는 적인 '시스'와는 대비되는 물질주의적, 세속적, 현실적 성격의 적인 '제국의 부와 군사력, 직접적인 억압성'을 상징한다(클래식 트릴로지에서는 다스 베이더와 타킨 총독이 각각 그 역할을 맡았다). 그걸 명백히 드러내는 장면이, 의지의 승리를 패러디한 그 연설 장면이다. 그런데 라제에서는 비중이 폭락해서 카일로에게 충성충성충성거리는 개그 캐릭터가 되었다가, 이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는 뜬금 없이 죽어 버린다. 정말 이게 최선이었습니까 쌍제이? 라제 감독은 라이언이었으니 댁이 직접 책임은 없긴 한데, 그래도 정말로 이런 식으로 수습하는 게 최선이었냐니깐?
4)레이-카일로 러브라인 극혐:솔직히 인정한다. 나 원래 로맨스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공정하게 못 보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둘의 러브라인은 도대체 이해해먹질 못하겠다. 카일로는 둘째치고, 레이 입장에서 카일로는 단순한 적일 뿐 아니라 지 애비를 찔러 죽인 패륜아고 자신에게도 잔혹한 고문을 가한 상대다. 옘병 장난하냐?
주관적으로는 이 둘 키스 씬 보고 라제에서 핀과 로즈가 뜬금 없이 키스하는 장면을 봤을 때랑 똑같이 빡쳤다. 그리고 객관적으로는 그보다 더 질이 나쁘다고 본다. 게다가 이후 카일로는 포스의 영으로 승화한다. 저기요, 포스의 영 바겐세일 기간입니까 요즘? 포스의 영이란 거 원래 최고의 제다이 중에서도 한정된 극소수만 될 수 있는 거 아니었어요?
총평:
미친 듯이 욕을 먹은 라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결국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스타워즈를 포기하고 억지로 추억팔이용 옛 소재들을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던 쌍제이의 고뇌가 느껴진다. 그래도 그런 영화 외적인 이유로 실드쳐주기엔 너무 눈에 밟히는 문제점이 많다. 좋게는 평가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