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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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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이나 아인스타인과 같이 과학자들의 대명사로 알려진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름 없이 연구를 수행한다.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몇 가지 방법 중에 하나는 과학적인 발견을 이룩한 후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아무 문제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 실제로 과학적인 명명을 둘러싼 논쟁은 너무 자주 일어난다. 일례로 열역학의 영법칙 (zeroth theorem)은 이름의 시조가 된 것으로 잘못 명명된 것이다. 이 법칙은 실제로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였던 로버트 머튼 (Robert Merton)이 만들어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티글러 법칙 (Stigler’s Law)으로 불리고 있다. 잘못 명명된 과학적 발견의 다섯 가지 예를 찾아보자.

살모넬라 (Samonella)

이 박테리아는 가장 강력한 식중독을 일으키는 병원체로 실제로는 복잡한 그룹이다. 살모넬라라 불리는 박테리아는 두 개의 종이 존재하며 미묘하게 다른 박테리아들이 존재한다. 처음으로 발견된 이 박테리아종은 살모넬라 엔테리카 (Samonella enterica)로 1885년에 발견되었다. 이 발견은 수의학에서 중요한 학자인 다니엘 엘머 살몬 (Daniel Elmer Salmon)의 실험실에서 이루어졌다. 살몬은 그의 실험실을 매우 효율적으로 관리했으며 특히 그는 최상의 조교들을 뽑는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1883년에 그는 티오발트 스미스 (Theobald Smith)라고 불리는 젊은 연구원을 채용하였다. 스미스는 전통적인 돼지열병 (또는 돼지 콜레라, hog cholera)으로 알려진 질병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다. 그는 성공적으로 질병에 걸린 돼지의 샘플에서 한가지 박테리아를 분리하는데 성공했으며 이 질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는 너무 솔직했다: 고전적인 돼지열병은 실제로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며 이 바이러스는 1892에 이르러야 발견된다. 1885년에 이 새로운 박테리아의 발견은 Samonella cholerae-suis로 발표된다. 결국 모든 발견의 공로는 살몬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실제로 이 질병을 발견하는데 그의 역할은 전무했다. 이것은 고전적인 마태효과 (Matthew Syndrome)으로 좀더 유명한 과학자는 덜 알려진 학자보다 더 많은 명성을 얻게 된다. 살몬은 또한 근대적인 과학활동, 즉, 실험실의 수장이 젊은 연구원의 업적을 갖게 되는 초창기 예가 된다. 1887년에 스미스의 연구는 고전적인 돼지열병 백신을 개발하게 된다.

한센병

나병 (leprosy)으로 보통 잘 알려진 한센병 (Hansen’s disease)는 기원전 600년경부터 기록되기 시작하지만 성경에 나타나는 나병은 잘못된 번역의 결과로 다른 피부질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중적인 나병의 이미지는 살이 썩어가고 끔찍하게 몸이 손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증상은 2차 증상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말초신경시스템의 손상이다. 그 결과 환자들은 상처를 입었을 때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약한 자상도 심각하게 감염될 수 있다. 그래서 환자들은 이러한 신체손상을 막기 위해 지속적으로 자신의 몸을 조사해야 한다. 나병은 공식적으로 노르웨이의 의사인 게하르트 아르마우어 한센 (Gerhard Armauer Hansen)이 이 질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를 발견하면서 명명되었다. 한센은 1873년에 미코박테리움 레프레 (Mycobacterium leprae)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 박테리아를 배양하거나 실제로 나병과 연관되는지를 보여주는데 실패했다. 이후 임질박테리아 (gonorrhoea bacterium)을 발견하여 명성을 얻게 되는 알베르트 나이서 (Albert Neisser)가 연관성을 보여주었다. 그는 한센을 방문하였으며 한센은 나병환자들로부터 채취한 많은 샘플을 나이서에게 주었다. 나이서는 성공적으로 이 박테리아에 대한 생체염색을 수행했으며 1880년에 나병의 원인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후에 한센은 이러한 소식을 듣고 격노했으며 어떻게 그가 1870년 이후 연구를 진행해왔는가에 대한 긴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궁극적으로 나병학회에서 한센의 공로를 인정하고 네이서의 오만한 행위는 비난 받으면서 몰락의 계기가 되었다.

벤포드 법칙 (Benford’s Law)

19세기 말에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인 사이먼 뉴컴 (Simon Newcomb)은 빛의 속도와 다른 천문학적인 상수를 측정하는 작업에서 손을 떼고 대수 (logarithm)에 대한 책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그는 처음 페이지들은 낡고 뒤쪽 페이지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881년에 그는 <American Journal of Mathematics)에 짧은 논문을 발표하면서 숫자들은 불균형적으로 낮은 숫자부터 시작된다는 사실, 특히 1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밝혔다. 그는 또한 주어진 숫자에서 시작되는 숫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공식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 이상한 사실에 대해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했다. 뉴컴의 이러한 발견은 거의 60년 동안 잊혀지게 된다. 하지만 이 공식은 1938년에 광학물리학자인 프랭크 벤포드 (Frank Benford)에 의해 재발견되었다. 벤포드는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그도 확실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는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에 논문을 발표했다. 벤포드가 축적한 증거들은 법칙으로 불릴 수 있을 만큼 충분했으며 그의 이름을 따라 법칙의 이름이 명명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컴은 최초의 발견자가 된다. 벤포드 법칙은 1996년 까지 적절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수학자인 티어도어 힐 (Theodore Hill)은 이 법칙은 우주에 걸쳐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아레니우스 식 (Arrhenius equation)

모든 고등학교에서 화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이 식을 알고 있을 것이다.

k = Ae-Eα/RT

이 식은 반응이 진행될 때 화학반응속도와 온도와의 관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식은 또한 많은 현상에 적용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예로 아레니우스 식은 크리켓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를 계산하여 온도를 알 수 있다. 이 식은 스웨덴의 화학자인 스반테 아레니우스 (Svante Arrhenius)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다. 그는 물리화학의 주요 학자 중에 하나이며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지구온난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한 최초의 과학자이다. 하지만 아레니우스는 이 식을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 아니다. 이 식은 네덜란드의 화학자인 야코부스 헨리쿠스 반 호프 (Jacobus Henricus van Hoff)가 1884년에 그의 책인 화학동학 (Chemical Dynamics)에서 많은 각기 다른 화학반응에 대한 연구를 근거로 제기되었다. 5년 후에 아레니우스는 화학반응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에너지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에너지활성의 개념을 알게되면서 반 호프의 발견에 대한 물리학적인 설명을 제공했다. 그는 논문에서 반 호프의 발견을 인정했지만 이 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레니우스와 연관되었다. 실제로 ‘아레니우스-반호프 식’은 너무 긴 이름이었다.

핼리혜성

핼리혜성의 발견은 이상한 이야기이다. 대중적인 믿음과는 달리 에드먼드 핼리 (Edmond Halley)는 이 혜성을 발견하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은 그의 혜성에 대한 연구를 과소평가하는 것이었다. 이 혜성은 기원전 240년경부터 관측되기 시작한다. 당시 중국의 천문학자들이 이 혜성을 관측했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관측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하네스 케플러 (Johannes Kepler)는 1607년에 이 혜성을 보았으며 핼리 자신도 1682년에 간단한 관찰을 수행했다. 몇 년 뒤에 핼리는 이 혜성이 1607년과 1531년에 관측된 혜성과 매우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로부터 그는 이 혜성은 주기적인 혜성으로 매 76년 만에 한 번씩 지구에 근접하게 된다고 추론했다. 그는 이 결과를 왕립학회의 학회지인 <Philosophical Transactions>에 1705년에 발표하게 된다. 다른 천문학자들은 이 혜성이 주기적으로 지구로 귀환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핼리는 이러한 혜성을 먼저 발견해야 했다. 그는 또한 언제 이 혜성이 지구로 귀환할 것인가를 예측했다. 그의 계산은 프랑스의 수학자들에 의해 다시 정교화되었다. 이 혜성이 핼리 사후 16년 뒤인 1758년에 지구로 접근하면서 핼리혜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즉, 이 혜성은 핼리가 처음 발견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것이 아니라 그 혜성의 주기를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에드먼드 핼리는 사실 과학에서 잊혀진 영웅이었다. 그가 활동하던 당시에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하기에 쉬운 시기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범하였다. 그는 남반구의 별자리에 대한 지도를 작성했으며 잠수종을 개발했으며 기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히는데 기여했으며 나침반이 항상 북쪽을 향하지 않는가에 대해 설명했다. 그리고 별들이 이웃 별들에 대해 상대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핼리는 대중들에게 알려지기를 싫어하는 아이작 뉴턴을 설득하여 인력의 법칙 등의 중요한 과학적 발견이 포함된 책인 <Principia Mathematics>를 출판하도록 했다. 이 책의 출판에 들어가는 비용은 핼리가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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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http://radar.ndsl.kr/tre_View.do?ct=TREND&lp=SI?&cn=GTB2008080144&SITE=KLIC

연구성과 뺏긴 스미스 씨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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