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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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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임모 씨가 1)정말로 자살했고 2)보도 자료에서 나온 대로 20년 동안 근속해 온 보안팀 직원이고 3)유서도 조작되지 않았다 라는 세 가지 전제가 전부 참이라고 일단 가정하자면(영 의심스러운 껀덕지가 많지만 어디까지나 '일단' 그렇다고 치고)....


유족들은 안 됐지만, 난 임모 씨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국정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게 20년 전이다. 1995년이라면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기고, 이 무렵은 군사 독재를 끝내고서 문민정부가 들어섰다는 상징성과 더불어 금융 실명제, 하나회 척결, 5.18 진상 규명 등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던 시기다. 그와 더불어서, 중정이 안기부로 바뀜과 더불어서 중정 시절의 온갖 막장짓이 슬슬 언론에 풀리던 시기고. 안기부장의 의전 위상이 격하된 것도 이 시기다(중정 시절 중정부장은 대통령과 독대가 가능했다). 하지만 94년의 미림 팀 재건 등 여전히 어둠이 채 걷히지 않았던 무렵이고... 바로 이런 시기에 당시 안기부 보안팀에 취직했다는 것은 "난 내 직장이 불과 10여 년 전까지 민주화 운동 탄압하고 정권 보위를 위해 온갖 악랄한 정치 공작을 펼쳤으며 지금도 여전히 뒤가 구린 곳이어도 상관 없다"고 선언한 거나 다름 없다. 그 사람에게 안기부 안 들어가면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거라거나 하는 식으로 협박한 사람도 없었고, 이로부터 2년 뒤 IMF가 터질 때와는 달리 이 당시 한국은 경제 상황도 썩 괜찮은 편이었다. 외압도 없었고,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있었고, 지난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슨 짓거리를 해왔는지 정보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데도 불구하고 임모 씨가 안기부에 취직을 했다는 건, 자신의 직장에서 그간 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그런 짓거리가 옳다고 여겼거나, 그냥 자신은 시키는 일만 할 뿐 자신과는 상관 없는 문제라고 여겼다는 의미다.


유서에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메시지 보니까 구구절절하던데(이것도 일단 조작되지 않은 거라고 치고).... ....임모 씨가 일하던 직장에서 납치하고 고문해서 반병신 만들고 미치게 하고 죽인 수많은 사람들도, 바로 그런 가족들이 있었다. 난 그 둔감함을, 무관심을, 자기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는 너무나도 간단한 외면을 증오한다.   


난 임모 씨를 동정하지 않는다. 더 큰 죄를 지은 놈들이 이걸 방패로 도망칠 게 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아마 2년 뒤에도 경제드립에 빨갱이드립으로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리고 이민갈 돈도 연줄도 없는 나는 계속 이 나라에서 살아가야 할 거라는 사실이, 지금의 어린 아이들 역시 이런 나라에서 자라나며 그 둔감함과 무관심, 외면을 내면화해 갈거라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속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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