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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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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장례식 갔다 왔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위 질환 때문에 투병 중이라는 뉴스는 얼핏 봤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다. 그가 죽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8일 날 사망 소식을 듣고 멘붕했다가, 멘탈이 좀 회복되자 마자 반사적으로 든 생각이...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 추모용 단편 소설 하나 써서 유가족들한테 건네줘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식음을 전폐... ...까진 아니고, 서너 시간 눈 붙였다가 일어나 밥 먹으면서 글 쓰고, 다시 대 여섯 시간 잤다가 일어나 글 쓰고를 이틀 간 반복했다. 그리고 어제 저녁인 30일, 예의 소설은 2/3 정도가 완성되어 있었지만 더 이상 완성이 늦춰졌다가는 죽도 밥도 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래서 난 31일 오전 9시까지 일반인 조문객을 받는다... 는 기사만 확인한 뒤 출발해 밤 10시 반을 좀 넘어서 잠실나루 역 도착, 아산 병원으로 향했다. 전에 이모가 거기서 수간호사로 일한 적이 있었고, 어렸을 때 팔이 부러져서 거기 한 달 정도 입원한 적도 있었는데... 워낙 오랜만인데다, 이사를 한 이후로는 처음이라 좀 헤맸다(...)

 

병원에 먼저 들러 빈소 위치를 확인한 뒤, 다시 잠실나루 역으로 돌아와 근처 PC방에 들어가서는 메일로 보내 놓은 소설을 마저 쓰기 시작했다. 새벽 4시 쯤, 소설은 거의 완성됐지만 이제 슬슬 병원에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묘한 촉이 잠깐 왔는데, 조금만 더 고치면 급조한 작품치곤 괜찮은 게 나올 것 같았다. 어쩔까 잠깐 고민하다가... '마왕 횽아 가시는 길인데 성의는 보여야지!' 싶어서 좀 더 고치는 걸 택했다.

 

아침 7시 쯤 드디어 완성, 프린트로 뽑고는(새삼스럽지도 않지만 PC방에서 프린트는 할 게 못 된다) 이제 이걸 유가족 분들께 위로 건네면서 같이 주면 된다, 만일 그럴 만한 타이밍이 안 되면 조의금 봉투에 같이 넣어두면 나중에 볼 거다.... ....라는 가뿐한 심정으로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빈소에 사람이 없어

 

......9시까지 일반인 조문 받는다면서;ㅁ;!!!!!!!!!!!!!

 

일하던 사람에게 늦게 도착해서 헌화는 커녕 조의금조차 아직 못 냈는데 유가족 분들 뵐 수 없냐고 하니, 아래 영결식장으로 가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려가 봤더니...

 

이미 신부님이 장례미사를 시작해 버렸어

 

미사 끝나고 물어 물어서 조의금하고 소설 쓴 거 건네 드려야겠다.... 싶어서 기다렸다(신해철은 무신론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천주교 세례명까지 있더라). 장례미사가 끝나고 이 타이밍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 싶어서 어느 분이 유가족 분이시냐고 물어물어 찾아가.... ...려고 했는데, 경호원인 듯한 사람이 날 제지했다. 기자 내지는 조문 온 다른 가수들 구경 온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상황 설명을 하려다가 지금은 유가족들도 한참 바쁘고 정신 없을텐데 내 딴에는 좋은 의도였어도 이런 상황에선 오히려 민폐일 수도 있고, 경호원 입장에서는 나를 통과시켜 줄 이유가 못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침 미사 집전 하시던 신부님이 옆에 지나 가셔서 대충 사정을 말씀드리자 바깥에 유가족들이 있을 테니 얼른 나가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캄사합니다! 라는 심정으로 장례식장을 나가 보니....

 

기자들 짱 많아

다른 조문객들 짱 많아

게다가 김세황, 김영석, 싸이, 이승철, 윤도현(얼핏 봐서 확신은 못하겠지만 신대철 옹 닮은 사람과 한대수 옹 닮은 사람도)이 주변에 사람들 잔뜩 데리고 있어

 

아 ㅅㅂ 이래선 도저히 무리다, 반드시 기한 내로 이 소설 완성해서 유가족 분들께 드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커피를 생수처럼 퍼 마시면서 지난 사흘을 내리 달렸는데 의미가 없어, 조의금 챙겨 왔는데 그것도 못 냈어, 새벽에 슬슬 가야겠다는 촉이 왔을 때 대충 마무리하고 들고 올 걸.... 등등 온갖 생각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차는 발인하러 떠나 버렸고... 정신을 차려 보니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 앉아서 공기를 관찰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프린트 뽑아놓은 거 불에 태울까................. 마왕형 하늘에서 읽어 줄 거지?! 

 

+

 

금방 기사 뜬 거 보니 화장 중단하고 의료 사고 여부를 확실히 검증하기 위해 부검할 모양이다. 본인의 평소 성격이나 행동에 비춰봤을 때도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다고 마왕이 돌아올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적어지겠지.

 

+

 

일반인 조문객만 1만 명이었다고 한다. PC방에서 밤새 완성한 걸 끝내 건네주지 못한 건 사실 아깝지만, 그 인원을 접대해야 했을 유가족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자면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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