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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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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한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다시피한, 어떤 가문이 있었다. 마치 중세의 영주처럼 그 도시에서 그 가문의 힘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그 가문의 가주는 그러한 자신의 가문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성을 이어받은 자로서 남들보다 열등하고 뒤떨어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주는 5명의 아들들을 두고 있었는데, 첫째와 둘째, 셋째는 엄격한 가주를 만족시킬 수 있을만큼 유능했지만 넷째는 그렇지 못했다. 넷째는 어린 시절부터 식사에서 잠자리에 이르기까지 차별 당하며 자랐고, 세 형들도 넷째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셋째가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는 가주에게 온갖 욕설과 폭언을 듣고는 충동적으로 가출했다. 막 중학교에 입학했던 넷째도 얼떨결에 셋째를 따라 나섰다. 그 4일 동안 셋째는 넷째와 같은 위치로 내려왔다. 같은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밥도 잠자리도 함께 하고, 살기 위해 좀도둑질을 하는 등 나쁜 짓까지 함께 했다. 서로 도와 생활하고, 고생을 나누고, 그 4일간 그 둘은 모든 게 평등했다. 그때까지는 대화다운 대화도 나눈 적 없는 둘이었지만 그 4일 간 그 둘은 진짜 형제 다웠다.

그러나 노숙 생활이 길어지자 넷째는 감기에 걸렸고, 어쩔 수 없이 둘은 집으로 돌아왔다. 인터폰 너머에서 가주는 셋째를 꾸짖고는 대학에 합격한 걸로 처리해뒀으니 들어오라고 말했다. 둘이 안심하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던 차에, 가주는 넷째의 행방을 물었다. 가주는 말했다. 듣자하니 넷째는 떠돌아 다니며 좀도둑질로 연명했던 모양인데, 혹시 그 동안 함께 다녔다면 용서치 않겠다고. 잠시 침묵하던 셋째는 넷째에게 '미안하다'고 했고, 넷째는 '형의 열등함은 고칠 수 있는 범위의 것이며 아버지의 허용 범위 내에 있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며 섭섭한 심정으로나마 그를 받아 들였다. 혼자 남은 넷째가 허탈한 심정으로 집 앞에서 떠나려고 했을 때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고, 고개를 들려보니 문 앞에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적은 액수였고, 혼자 남겨진 것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때 그 돈은 넷째에게 위안을 주고 구원을 준 '따뜻한 돈'이었다.

그러나 한 달 뒤엔 그 돈도 다 떨어졌고, 넷째는 집 근처로 다시 돌아왔다. 곧장 집에 가지도 못하고 역 앞에서 얼쩡대고 있었을 때, 셋째를 다시 만났다. 대학에서 사귄 친구들과 함께였던 셋째는 넷째를 보고서 친구들을 먼저 보낸 뒤 은행으로 가 돈을 출금해서는 넷째에게 건넸다. 이렇게 큰 돈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려던 넷째에게, 셋째는 말했다.

" 갖고 가, 꼴 보기 싫다. 집에 돌아오지도 마."

그 돈을 쥔 채 넷째는 생각한다. '그랬었다. 잠시나마 친근하게 여겼던 내가 바보였다. 한달 전의 일은 단순한 객기. 형은 역시 나와는 달랐다. 아무튼 이걸로 약간은 남아 있던 듯 하던, 가족과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졌다. 끝났다. 좋고 싫고도 없다. 이것이 현실, 나는 혼자였다. 손에는 돈만이 남았다. 일절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얼어붙은 돈... 싸늘하디 싸늘한.... 뻣속까지 얼어붙을 듯한 돈만이......'




내가 겪었던 일들은, 물론 저 만화에서 넷째가 겪은 일과는 다르다. 넷째와 같은 선택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 심정을, '차가운 돈'에 대한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절실하게 알고 있다.


.........

나는, 두 번 다시 그런 치욕을 겪지 않을 것이다. 강해지는 것만이 내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모습이다. 나는 강자가 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강함'이 아니라 해도.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