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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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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면서 본 데다, 본 뒤에 즉석에서 쓰는 글이기에 다소 거칠며... 논리적인 비약이 있을 수도 있다.

'촛불 집회, 집단 지성인가 여론 호도인가'를 주제로 한 오늘 백분 토론은 간만에 토론이라고 부를 만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지난 주에 선보인 술성영의 화려한 자폭쇼 같은 건 물론 개인적인 쾌감지수 확보에는 도움이 되지만-_- 그거야 내 반 한나라당, 반 이명박 정부 성향이 워낙 강고해서 그런 거고... 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즐거움일 뿐, 객관적으로 봐서 '가치 있는, 생각할 꺼리를 많이 던져주는'토론은 되지 못했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마무리하면서 손뱀프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특히 변희재 같은 경우는, '진중권을 노리는 매의 눈빛'이라는 식으로 워낙 희화화가 많이 된 나머지 다소 방심하고 있었는데 오늘 백토를 통해 본 그는 만만찮은 강적이라는 느낌이다. 하긴 진사마를 까려면 그 정도 수준은 되야지(....)

오늘 백토에서 가장 핵심적인 논제로 떠오른 것들은 1)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의 움직임이 과연 유의미한 가치인가 2)(1의 문제를 구체화하여)다음 아고라 토론방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조중동 광고주 압력 운동이 과연 온당한가의 2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 포스트에서는, 토론 진행을 지켜 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써 보고자 한다.

1)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의 움직임이 과연 유의미한 가치인가
종이 신문으로 대표되는 활자 매체는 그 '공인된' 전통과 권위로써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신, 바로 그 공적인 성격으로 인해 팩트를 왜곡하거나 편파적 논조를 펼치기 힘들다. '원칙적으로는' 그러하다. 오늘 백토에서 정부 측 패널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공인된 활자 매체는 보도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지지만 인터넷 여론은 그렇지 않기에 신뢰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리고 반대 측 패널은 원칙을 따지자면 그렇지만 과연 그래서 조중동이 지금까지 책임을 진 적이 있느냐,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불사무적의 프리온 신 강림설'을 이야기하던 조중동이 정권이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말을 바꾸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면서 국민들에게는 그에 대해 납득할 만한 사과를 하거나 반성의 태도를 보인 적이 있느냐는 논리로 맞섰다. 인터넷은 어디까지나 도구일 뿐이라는 게 양측의 공통된 전제로 굳어지며 화제는 인터넷의 순기능과 역기능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난 아직 20대 중반이며, 나를 비롯한 젊은 세대들에게 인터넷은 '가상 공간'이 아니라 '현실의 연장'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닉네임과 아바타를 통해 넷 상에서 자신의 진실을 감추고, 물리적 일상에서는 결코 행하지 못할 행위들을 버젓이 행한다(이쯤에서 김현처리 한번 까주는 센스!). 넷에서 드러나는 인격은 물론 일상에서의 인격과는 다르며-나 역시도 완전히 예외는 아니다- 위악도 위선도 거리낌없이 펼쳐진다. 그러나 바로 그러하기에 역설적으로 넷 상에서 개인이 드러내는 모습은 그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어느 정도는 그가 물리적 일상에서 어떠한 사람인가를 추론할 수 있게끔 해준다-물론 이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쿼크가, '부재하기에 비로소 존재를 확정하는' 요소인 것과 같은 이치로. 이러한 관점에서 봤을 때 인터넷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논하는 것은 '삶이란 것 자체는 과연 긍정적인 것인가 부정적인 것인가'라는 화두에 대해 철학적인 보편 정리를 제시하려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이다.

누군가가 온라인 게임을 한다. 물론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뚱뚱한 30대 독신 직장인 남자와, 그가 조종하는 섹시한 엘프 미녀가 동일한 존재인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로그인 할 때마다 엘프 미녀의 기억과 인격이 그에게 덧씌워지고 로그아웃하면 다시 벗겨지는 것도 아니다. 그 직장인 남자가 좀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할 수도 있고, 정해진 시나리오에 따라 퀘스트를 수행하는 과정에 자신의 직장 생활이나 대외적인 사회 생활보다도 열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 캐릭터를 '조작'하는 주체는 엄연히 인간인 그 자신이지 엘프 미녀가 아니다. 그 남자가 게임 내에서 PK를 하거나 사기를 친다면 그 남자의 잘못이지, 그 캐릭터의 잘못은 아니다.

인터넷은 단순한 도구적인 객체가 아니라 엄연히 그를 이용하는 인간이 속해 있는 총체적인 현실의 일부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네트 상에서 행해지는 토론이나 의사 결정은 그의 옳고 그름과는 별도로 엄연히 유의미한 인간의 행위이지 헛된 미망이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오늘 토론에 참가한 패널들은 그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2)
조중동 광고주 압력 운동이 과연 온당한가
나는 이 운동(열성적으로 참가하는 사람들에게는 '숙제'라고 불리는)에 대해 부정적이다. 일전에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보는 사람들이 많은 조선일보에 무리를 해 가며 광고를 실었다가 조선에 광고 싣지 말라는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바람에 도산 위기에 몰려 있다는 영세 여행사의 사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것은 너무도 많은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조중동이 지난 수십년 간 종이신문 시장의 헤게모니를 쥐고서 권력과 유착하며 숱한 사회적 해악을 뿌렸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은 경제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속해 있으며, 광고주 입장에서는 해당 신문의 논조와는 별개로 사람들이 많이 보는 신문에 광고를 내는 게 시장 경제 체제 내에서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고도화되고 복잡해진 현대에서 자본주의는 결국 신자유주의로 귀결된다는 것,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서 승자독식 적자생존으로 사회적인 분위기를 고착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것. 보다 많은 기득권을 쥔 자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주는 경향이 생기기 쉽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의지를 명확히 하는 것과는 별개로,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이고 그 틀에 속한 이상, 이윤을 내는 것이 존재의의인 기업이 시장 원리에 따라 합리적으로 어느 신문에 광고를 낼 것인지를 판단한 것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불쾌해할 수는 있을 망정 지금처럼 조직적으로 광고주들을 압박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최소한 내게 있어선 그렇다.

난 압력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심정적으로는 절절히 공감한다. 조중동은 지난 수십년 간 권력의 그늘에서 너무 커져 버렸으며, 한 명의 국민 입장에서 그 전횡에 대항할 수단은 너무도 적다. 그리고 지금 사람들은, 그토록 오만하고 거대하던 조중동이 휘청이는 걸 보고 있다. 난 천박하지 않고 야비하지 않은 언론에 대한 희망, 적어도 스스로의 목소리가 뚜렷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언론을 보고 싶다는 그 소박하고도 간절한 소망을 이해한다. 하지만, 그건 나의 방식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한겨레나 경향에 구독 신청을 넣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 신문들도 읽어봐라'고 추천하는 것, 그리고 인터넷에 이런 글이나마 남기는 게 고작이라는 것. 그게 날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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