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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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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충 20대 중반에서 후반을 넘긴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10년 전 오늘, 1999년 8월 18일,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 멸망 떡밥을. 당시 사춘기였던 나는 그 나이대 특유의 "쉬밤쾅이딴세상망해버려"하는 심리 때문에 믿고싶어 했었다 그거(...)


결국 아무 일 없이 세기말은 지나갔고(당시 세계적으로 분위기가 여러 모로 흉흉하긴 했지만, 당시 한국도 98년의 IMF크리로 국가부도 이야기까지 나오던 참이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만은,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멸망'은 물리적인 형태로 닥쳐 오는 게 아니라, 기존에 믿어져 왔던 모든 '가치'들이 부정되고 혼돈 속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가능성들(좋건 나쁘건)이 태어나는, 일종의 '시대적 패러다임의 초기화'일 지도 모른다고.


이 '종말'이란 관념을...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물리적인 대재앙'이 아니라, 인류 집단의 심리적, 정신적 대격변기라고 가정한다면 노스트라다무스의 떡밥은 어쩌면 제법 그럴싸하게 들어 맞은 것 같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때까지 세계를 주도해 왔던 '이성과 합리'의 패러다임이 붕괴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일어났던 것처럼. 지금 이 시기는 그 시절의 '이성과 합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가 태동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시야를 좁혀 본다. 일제 치하 조선인들의 정신 세계를 주도했던 가치는 '근대화'였다. 충실히 일제에 부역했던 이들도, 조국 독립의 대의에 헌신했던 이들도 '조선이 이전의 폐쇄적이고 고루한 방식을 답습해선 안된다'는 것 하나에 있어서만은 뜻이 일치했다(그딴 거 없고 그저 돈과 권력 때문에 친일했던 작자들도 있지만 그런 막장들은 일단 논외). 해방이 이뤄지고, 강대국들의 입김에 따라 6.25가 발발한 이후 한국인들의 정신 세계를 주도한 가치는 '산업화'와 '반공'이었다. 그리고 조금만 거슬리면 총구 들이대며 '국민님드라자꾸이럼빨갱이들이쳐들어오거등여?시키는대로만하세염' 하던 군부 독재 시절, '산업화와 반공'의 가치에 도전하던 또 다른 가치가 '자유와 민주화'였다. 그리고 독재 정권이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종식되고 형식적 민주주의나마 어느 정도 정착된 김영삼 정권 이후 한국인들의 정신 세계를 주도하게 된 핵심적 가치가 '경제'였다. 정확히는 '개인의 이익'.


그리고 지금, 경제를 살려줄 거라는 막연하고 근거 없는 기대 하나에만 기대어(그것 뿐인 건 아니지만 다른 이야기니까 일단 젖혀놓고) 수많은 도덕적 의혹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 이의 행보를 본다. 과연 그가 진정한 의미에서 '경제 대통령'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일제 시대 이래 계속 가면을 바꿔가며 한국의 주도권을 한번도 놓지 않은 앙시렝 레짐의 총화나 다름 없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가장 부정한 면모- 한국에서 가장 절대적인 힘으로 군림해 온 패러다임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안티 테제로 삼아서 가장 치열히 항거했던 두 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짧은 간격으로 세상을 뜬 2009년 여름의 한국에서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져 가고 있다고. '개인의 이익'이라는 지금까지의 가치에서 벗어나, '또 다른 가치'에 대한 각성이 시작되고 있다고.


바로 지금이 '종말의 시기'이며,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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