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미네이터 1은 80년대 냉전 끝물, '편리한 도구로서 만들어졌던 기계가 인류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켜 핵무기를 인류에게 겨냥한다면?'이라는 공포에서 출발한 차가운 테크노 호러였다. 그리고 터미네이터 2는 암울한 운명에 저항해서 미래를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결실을 맺는 액션 영화였다. 둘 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멈출 수 없고 냉혹한 로봇'을 적으로 내세워 내내 쫒고 쫒기는 긴장감을 강조하는 한편 운명과 자유의지의 관계, 인간과 로봇의 교감이라는 서브 플롯에도 충실해서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고전 명작 영화로 남았다. 타임 패러독스의 미해결, 이해하기 힘든 일부 설정 오류 같은 문제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2부작으로서 당대는 물론 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다.
그러나 그 이후 나온 후속작들은 하나 같이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의 악역 TX는 분명 설정 상의 성능은 역대급이었지만 그걸 잘 보여주지 못하는 연출 때문에 2의 T1000이 보여준 압도적인 간지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추한 모습을 보였고, 샐베이션은 크리스찬 베일과 샘 워딩턴이라는 호화 캐스팅에도 불구하고 중구난방 스토리와 말 많고 진부한 3류 악당으로 묘사되는 스카이넷 때문에 매력이 없었고, 제니시스는 존 코너가 터미네이터로 타락한다는 강렬한 설정과 시대의 흐름을 통해 파워업한 그래픽 기술 및 액션으로 어필하려고 했지만 함량 미달이었으며, 결정적으로 다크 페이트는 오리지널 2부작을 감독한 제임스 카메론과 OB 린다 해밀튼 및 에드워드 펄롱의 복귀, 라이즈 오브 더 머신과 샐베이션과 제니시스 전부 비공식화 선언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다 낚시나 다름 없었고 설정도 새 캐릭터들의 개성도 기존의 재탕에 가깝다는 게 밝혀지며 폭망했다.
2003년에 개봉한 본작은 사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좋은 작품은 아니다. 상기한대로 안타고니스트인 TX는 매우 저열한 액션 묘사로 인해서 '터미네이터 잡는 안티 터미네이터, 터미네이터의 지배자 터미네트릭스'라는 화려한 설정이 무색하게 굴욕 짤만 잔뜩 남겼다. 비장한 분위기를 깨는 억지 개그(별 모양 선글래스 그거 말야 그거 허미 쓉펄) 문제도 크다. 그러한 단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작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2 이후의 다른 작품들과는 완전히 차별화되는 힘이 있다.
본작이 혹평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2에서 영악하면서도 최소한의 도덕성은 갖고 있으며 미래의 저항군 지도자에 걸맞는 판단력과 리더십을 보여줬던 소년 존 코너가 무기력한 약쟁이로 성장했다는 충격, 그리고 T800이 존 코너와 교감하며 인간성을 배우고 사라 코너와도 악수를 주고 받은 뒤 스스로를 희생하는 장면을 보고 감동한 관객들의 감정을 전부 무시하는 듯한 설정과 대사들 때문이었다고 본다. 나 역시 처음 봤을 때는 그 부분들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다시 보자, 전혀 새로운 게 보였다.
2에서 관객들이 감동한 것은 존 코너 일행의 노력과 분전, 그리고 희생을 통해 멸망의 운명을 벗어났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핵미사일 발사와 인류 멸망의 악몽에 시달리던 사라 코너가 적은 글귀 '운명은 없다' 그리고 그 후 '오직 우리가 만든 운명만이 존재한다'라고 고쳐 쓰는 장면에서 강조된다고 보통 여겨져왔다. 하지만 여기서 간과되는 건, '운명'이라는 건 보통 결정된 미래를 말하며 그 미래가 행복한지 불행한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점이다.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은 태생적 악조건을 극복하고 결국 좋은 결말에 도달했으면 운명을 극복했다고 하지만, 좋은 태생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나쁜 결말에 도달했으면 순전히 자기 책임이라고 여긴다. 어쩌면 어떤 사람이 그 악조건을 극복하는 것 자체가 운명의 일부였을지도 모르고, 반대로 어쩌면 어떤 사람이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하고 그를 받아들이는 게 운명의 일부일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풍요롭지만 결과가 뻔하고 명확한 삶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애초에 사람은 '운명'이니 '팔자'니 하는 것이 총체적으로 어떤 건지 알지도 못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운명은 어디까지나 보통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없고, 오직 그 자신만의 인과에 따라 스스로 굴러갈 뿐이며, 인간은 그 단편적인 일부만을 접하고 '우린 운명을 극복했다' '우린 운명에 순응했다'고 혼자 멋대로 착각하는 것에 불과한 걸 수도 있다. 그를 고려했을 때 '나쁜 결과는 운명, 좋은 결과가 나온 건 운명에 대한 승리'로 간주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그리고 합리적일망정 썩 유쾌하지는 않은 이 결론을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은 영화 시작하자마자 대뜸 관객들에게 도전적으로 들이댄다.
존 코너는 심판의 날을 무사히 넘기고 나서도 불안감과 PTSD, 미래에 대한 목적의식 상실로 방황하며 일용직을 전전하고 주소도 연락처도 없이 떠도는 신세다.
새로이 등장한 조력자 터미네이터 T850은 심판의 날은 미뤄졌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존이 2 시절의 추억담을 꺼내려 하자 단호하게 '그것은 나와는 다른 개체다'라고 대답하며 말을 끊어버리고, 그걸로도 모자라 미래의 존 코너는 자신에게 죽었다고 무심하게 밝힌다.
사라 코너는 백혈병에 걸려서 이미 몇 년 전 시점에서 죽었다.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3년을 버티다가 예정됐던 심판의 날이 무사히 지나가자 비로소 안도하며 죽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사라의 관 안에는 추억을 되새길 만한 요소 대신 오직 무기만이 가득 차 있었다.
정말이지 하나 하나가 2를 감동적으로 본 관객들을 비웃는다고 여길 정도다. 당시의 혹평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고, 처음 봤을 때는 나도 저런 요소들이 불쾌했다. 그러나 다시 보면서 든 생각은, '운명은 사람의 감정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돌이켜 보자면, 1에서 카일 리스는 '스카이넷은 디펜스 네트워크 컴퓨터 시스템이었고, 뛰어난 성능과 신뢰성 덕에 모든 분야에서 폭넓게 이용됐지만 스스로 지성의 새로운 질서를 이뤘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스카이넷이 학습을 거듭한 결과 기술자들의 업데이트 없이도 자체적인 진보를 이루는 특이점에 도달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후 스카이넷은 자의식을 얻어 각성하고는 자신을 잠재적 위협으로 규정한 인류를 적대하게 됐고, 핵미사일 발사 명령권을 탈취해서 대규모 핵전쟁을 일으켰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당시 관객들을 감동시켰던 '오직 우리가 만든 운명만이 존재한다'는 글귀는 '우리(존 코너 일행)의 노력으로 절망적인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적인 선언이 아니다. 작중의 사라 코너도 당시 관객들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우리(스카이넷을 만든 마일즈 다이슨과 사이버다인 시스템, 나아가 컴퓨터에 지나치게 많은 결정을 떠넘기고 쉽게 꿀만 빨고 싶어했던 인류 자신)가 절망적인 미래를 자초했다'는 가혹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이 더할 나위 없이 비정한 기조는 작품 끝까지 이어진다. 히로인 캐서린 브루스터의 아버지(미군의 고위 장성이자 스카이넷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다)는 늦게나마 상황이 심상찮게 돌아간다는 걸 느끼지만 결국 TX에게 살해당하고 존 코너 일행에게 크리스털 피크로 가라는 유언을 남긴다. 그곳에 스카이넷의 본체가 있으며 그걸 파괴하면 멸망을 막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기대어 거기로 향하지만 그 과정에서 T850은 TX에게 패배하고 해킹당해 존을 가로막는다. 존은 필사적으로 설득하려고 하고 T850도 새로이 덧씌워진 명령에 나름 어떻게든 저항해보려고 하지만 결국 그를 잠시나마 멈춘 건 2 시절의 추억 이야기 같은 게 아닌 '여기서 존이 죽으면 임무를 달성할 수 없게 되고 존재의의가 없어진다'는, 지극히 논리적인 귀결이었다. 시스템 과부하를 감수하고 스스로를 리부트함으로써 TX가 덧씌운 명령에서 해방되어, 마지막으로 수소 전지를 자폭시켜 TX와 함께 최후를 맞이하는 T850을 뒤로 하고 목적지에 도착한 존과 캐서린이 마주한 건 스카이넷의 본체가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건 핵전쟁 시 VIP가 피신해서 각지의 군사기지와 통신할 수 있는 벙커였다. 스카이넷은 애초에 본체가 없고 인터넷 상에 컴퓨터 바이러스의 형태로 퍼져 있어서 물리적인 파괴로 없애는 게 불가능했다. 그 스카이넷은 이미 가동됐고 그에게 조종되는 무인 로봇이 각지에서 인류를 습격하는 혼란이 이어지고, 충격 받아 막막해하는 가운데 한 기지에서 전화가 걸려와 누가 책임자냐고 묻는다. 그리고 내내 고뇌하고 휘둘리기를 거듭하던 존 코너는 잠시의 망설임 끝에 대답한다. "내가 책임자요." 멸망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아니라, 멸망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수단이 있는 곳에서 저항군 사령관이 된 존 코너는 모니터를 통해 핵미사일이 발사되고 심판의 날이 실현되는 걸 지켜보며 확실히 깨닫는다. 운명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미쳐 날뛴다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지 않고, 돌아서지 않고, 멈추지 않고 싸우겠다고 각오를 다지면서 영화는 끝난다.
작가이자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이성과 논리로 납득할 수 없는 불합리와 부조리가 횡행하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그 불합리와 부조리를 결코 바꿀 수 없다는 걸 마음 깊이 알고 있더라도, 그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을 계속하는 인간의 투쟁이 그 자체로 자신을 그 자신이게끔 한다고 여겼다. 그의 저서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카뮈는 신들을 속인 죄로 영원히 비탈 위로 바위를 밀어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된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 시지프스에게 주목했다. 전통적으로 이 이야기는 시지프스의 오만과 끝없는 헛수고의 반복을 강조하며 겸허함을 가르치는 우화로 여겨졌다. 그러나 카뮈는 시지프스의 노역을 인간에게 철저히 무관심한- 끝없이 냉혹한 거대한 우주 속에서 삶의 이유도 목적도 갖지 못하는 인간이 체념이나 굴복 없이 그를 직시하고 저항하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나아가 우주적 불합리와 부조리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 의지의 발현으로 여겼다. 신화 속에서 시지프스의 바위는 비탈 정상으로 밀어올려봤자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간다. 시지프스는 다시 돌아내려가 바위를 밀어올리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면, 그 반복은 곧 그런 운명에 대한, 바위에 대한, 신들에 대한 경멸의 증명이 된다. 그 고통 속에서 그는 바위나 신들보다 강한 것이다. 그를 통해 시지프스는 고유한 존엄성을 획득한다.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사람은 운명이니 팔자니 하는 것이 총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잘 알지도 못한다. 그런 이상 좋은 미래는 정당한 노력의 결과로 받아들이고 나쁜 미래는 부당한 운명으로 여기며 거부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며 더 나아가 자기 기만이다. 이 작품, 터미네이터3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은 심판의 날에 직면한 존 코너와 캐서린 브루스터에게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어떤 위로도 건네지 않는다. 어떤 구원도 없다. 대신 말한다. 운명을 사랑하라고, 삶을 긍정하라고, 너 자신이 되라고. 그리고 존 코너는 단호한 결의로 그에 화답한다. 이 한 없이 어둡고 차가운, 소름끼치는 건조함과 냉혹함. 그리고 그 가운데서 빛을 발하는 의지가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을 2 이후 나온 다른 어떤 터미네이터 영화와도 다르게 만든다. 카뮈는 또 다른 저서 '반항하는 인간'에서, 이렇게 적었다. 인간의 가장 큰 자유는 무너진 세상 위에서 자신이 무너질지 말지를 선택하는 자유라고.
벙커의 통신기 앞에 앉은 존은 '행복'할 것이다. 시지프스가 행복하리라고 믿듯.
'오직 우리가 만든 운명만이 존재한다'라는 말은, '어떤 운명이건 우리가 만든 것이다'라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AI 기술이 폭주라고 할 정도의 속도로 발전하고 국회는 급히 규제 법안을 만들고 있는 2025년 말 현실을 본다. 최초로 '로봇'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카렐 차펙의 희곡이나 이 영화에서처럼 로봇이 직접 반란을 일으키는 상황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AI 시대가 인류사를 (나쁜 방향으로) 바꿔 놓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