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시절 알던 후배 여자애와 사귀는 꿈....
실제로는 그 애랑 별로 친하지 않았다. 애가 귀엽고 성격도 좋은 편이라서 어느 정도 호감은 있었지만 연애 대상으로서는 취향이 아니었고... 이거 저거 챙기고 신경 써주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어디까지나 동아리 선배로서의 의무감이었던 데다가, 그랬다가 괜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싶어서 어느 정도는 의식적으로 좀 거리를 두기도 했었다.
당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해 보면 걔도 나한테 어느 정도 호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그린 라이트였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딱히 잘생긴 것도 아니고, 성격도 이러니까. 최소한... 그 때는 지금만큼 성격이 꼬이지는 않았긴 하지만.
학교 건물과 기숙사가 좀 거리가 있었는데, 걔와 나 둘 다 기숙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동아리 일이 끝나고 나면 같이 기숙사로 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되게 착하고 순진한 애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고(그 순진함이 조금 갑갑하기도 했지만), 그런 시간이 즐겁긴 했지만 한 편으론 약간 걱정되기도 했다.
'난 얘랑 딱히 사귀고 싶은 마음 없고, 모르긴 몰라도 아마도 얘도 날 남자로서 좋아해서 이러는 건 아닐텐데'
'전에도 후배들과 친하게 지내 보려고 의식적으로 오버하다가 여자애들한테 작업 건다고 오해 받은 적 있었는데 또 그렇게 되는 게 아닐까'
'술자리에서 후배 여자애들한테 술 따르라고 하고 무릎에 앉히고 그 지랄하며 치근대는 고학번 선배새끼들 극혐했는데, 혹시 다른 애들한테는 나도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닐까'
...그래서... 걔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기숙사까지 같이 가 달라고 부탁했을 때 같이 가며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 부탁을 자주 하면 주변에서 괜한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그래서는 너도 곤란하지 않겠냐... 그 애는 한참 아무 말 없이 듣다가 알겠다고 했다. 다음 날부터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지냈고, 나는 학비를 벌기 위해 휴학을 했고 그 동안 그 애는 졸업했다. 그 후의 소식은 모른다. 아마 지금 쯤이면 결혼했겠지. 아니어도 남자 친구 정도는 있을 테고. 귀여운 애였으니까.
한참 시간이 지난 어젯 밤 정말 뜬금 없이 걔와 사귀는 꿈을 꾼 이유는 아마도... 내가 의식적으로 여자를 멀리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욕구 불만이 쌓여서 그런 것일 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전에 친했거나 딱히 친하진 않았더라도 괜찮게 지낸 상대 중 하나의 정보가 랜덤으로 출력된 것일 수도 있고.
그 꿈 속에서는 나름 행복했지만, '근데 나 얘랑 사귄 적 없잖아 실제로는' 이라는 위화감이 드는 순간 깼다.
지금도 내 안에는 '누군가와 人間으로서의 연을 맺고 싶다'는 미련이 남아 있다. 연애는, 사람이 사람과 갖는 인연의 매우 깊은 형태고... 그런 꿈을 꾼 건, 그러한 미련이 연애 욕구의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치워 버려야 할 미련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도 걔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론 누군가에게 반할 일 같은 거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