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관해, 자기 전에 문득 든 생각 약간.
실례 1)몇 년 전의 일이다. 당시 단단히 반했던 사람이 남자친구도 아니고 무려 약혼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서 한참 멘붕했을 무렵, 오가다가 만나는 여자분들에게 마음에도 없는 '미인이시네요' '사귀는 사람 없으면 저는 어떠함' 운운하는 헛소리를 늘어놓는 버릇이 생긴 적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한테나 작업 거는 찌질이 행세를 함으로써... '내가 이러는 건 원래 이런 놈이라서 그런 거지 상처 따위가 있어서가 아님' '슬픈 과거를 가진 남자 코스프레하며 자기 연민에 허우적거리기보단 난봉꾼 행세가 낫지'라는 자기인식을 형성하고, 거기로 도피하려는 심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전부터 좋아하던 작가인 배명훈 님 강연이 있어서 거기 갔다가...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만난 분한테 그 지랄을 떨었는데, 유부녀라고 하시더라. '어익후 아쉬워라' '내가 비록 이렇지만 유부녀한테는 작업 안 겁니다, 헛소리 죄송' '그래도 좀 아쉽긴 하네요' 등등의 소리를 늘어놨다. 그 자리에서 그 분은 대놓고 싫은 티는 안 내셨지만... 뭐 속으론 불쾌하셨겠지. 취한 채로 '나 존내 쓰레기 같아' 하는 생각과, '어차피 진심으로 한 말도 아닌데 어때' 하는 생각을 반복하며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오던 길에 핸드폰 망가뜨리고, 그 후로 며칠 동안 지독하게 앓았다. 먹는 건 죄다 토하고, 자리에서 꼼짝도 못했다. 우와 병신 돋앜ㅋ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어딘가의 인터넷 게시판 같은데 '미친놈 만났음 다들 주의하세요' 같은 제목으로 나를 까는 글이 올라왔을지도 모르겠다.
실례 2)그 후 개강한 뒤의 일. 새로 출강 오는 여자 교수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의 주제도 관심 있던 분야고, 교수님도 열성적으로 잘 가르치시는 분이어서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쫓아다니면서 이거 저거 질문도 하고 같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면서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 기본적으로 강의 내용도 교수님 자체도 마음에 든 건 사실이었고... 추가로, 호감도를 쌓아 두면 점수도 잘 나올테고 나중에 연줄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 입장에서 좀 건방진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전 이 강의가 좋아요, 교수님도 그렇고요" 같은 소리도 좀 했다. "되게 젊고 미인이시네요 교수님, 처음 뵈었을 땐 30대 후반 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운운하는 드립도 추가.
마지막 학기가 끝나고, 졸업식만 남기고 집에서 ㅅㅂ 어디에 이력서를 내야 하나 데꿀멍 하고 있을 때 그 교수님한테서 메일이 왔다. 신학기 강의 커리큘럼을 짜는데 좀 도와줄 수 있겠냐, 시간 없어도 왠만하면 좀 도와달라~ 라는 내용으로. '흥미로운 주제인데 내 공부도 할 겸 해볼까' '그런데 돈도 안 주면서 시간 없어도 도와달라니 이거 셔틀질 아닌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서... 좀 고민하다가 그렇게 품이 많이 드는 일도 아니고 취업에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 싶어서, 해보겠으니 강의 자료를 보내달라고 답신했다. 하지만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고, 나는 그걸 잊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교수님 입장에선 내가 공부도 잘하는 편이고,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모양이니 셔틀질 시키려다가 양심에 찔려 그만 둔 걸지도 모르겠다 싶다ㅋ
비슷한 경험을 그 전에도 한 적 있었지만 그 때는 뭐 의식적으로 '뻐꾸기'를 염두에 두지 않았으니 경우가 다르고... 저 두 케이스 외에도, 마지막 학기 다니면서 조교 누님한테도 '안 본 동안 예뻐지셨네요' 등등의 헛소리를 자주 했다. 속으로는 계속 내가 마음에 없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는 걸 자각한 채로, 하지만 '상대가 내게 이성으로써의 호감이 있다면 이런 빈말을 하면 안되지만, 어차피 상대도 날 남자로 안 보니까'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이제는... 그러고 싶지가 않다. 나는 결코 순수하거나 고결한 인간이 못 되며, 취직을 하면 남들 다 하는 대로 상사한테 적당히 아부도 하고 비위 맞추기도 하면서 적당히 회사 생활을 할 것이다. 하지만 뭐랄까, 저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판단해 보자면... 좀 더 심도 깊은 뻐꾸기는, 나한테 맞는 방식이 아닌 것 같고... 현실적으로도 내가 그러면 썩 좋은 결과로 돌아올 것 같지가 않다.
하물며, 새로 반하게 된 분이 있는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마음을 알게 하고 싶지 않다. 자주 볼 기회도 없겠다 나도 요즘 바쁘겠다... 이러다가 말겠지. 머릿 속이 그 분 생각으로 가득 차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거나 한 수준도 아니고. 난 그 분에게 반한 게 맞지만, 아직까지는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대로... 흐려지겠지 아마도.
그립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