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결과가 나오건 (높은 확률로 극우 놈들이 먼저 시비 걸어서) 폭력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몸빵이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오늘 휴가 내고 헌재 앞으로 갔다. 경찰들이 막고 있어서 헌재 바로 앞까지는 못 갔지만 아무튼.

어쩌면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고 나름 비장하게 각오하다가 그런 스스로가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늘도 그런 날 웃기게 봤는지 현장에는 사람이 넘쳐나고 분위기는 안전 그 자체였다. 뻘쭘해 하는 나를 반겨준 마교 깃발. 저 깃발 지난 1월 비정규직 집회 때도 봤던 거 같은데?

평일인데도 10만은 온 듯 했다.

익숙한 문구가 보여서 한 장 찍었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공룡들이 지구 온난화를 두고 인간들에게 너도 멸종되지 않게 조심하라고 걱정해주고 있었다(거짓말)

어떤 어르신이 데리고 나온 댕댕이들이 귀여워서 한 장.

LED 없는 정대만 깃발 발견.

이름 모를 저항군이 포스가 함께 하기를 빌어줬다.


저번에 본 곰 다시 발견. 민주당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곰탈은 죄가 없지.

최선두에서 방송보는 중. 나도 모르게 성호 긋고 기도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탄핵 인용 선언 직전, 웬 비둘기 한 마리가 방송 스크린 너머 가로등 위에 날아와 앉았다.

그리고 드디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는 선언이 떨어지는 순간, 얼싸 안는 한복 차림의 여자분 둘. 퀴어 커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2월 3일 이후 123일 간 이어지던 그 춥고 어두운 겨울밤이 드디어 끝을 맞이했다. 조금 울었다. 기쁘다는 감정을 마지막으로 느낀지 10년이 넘었고, 그 때의 그 기쁨마저도 절망으로 변했다. 이제 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가능했구나. 스스로가 꽤나 뒤틀리고 냉소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가끔은 스스로가 인간조차도 아닌 것 같은데 아직 기뻐하고 눈물흘릴 수 있었구나.

누가 적어둔 대로, 진짜 8:0 만장일치로 인용됐다.


붕어빵 천원에 3개 협회 깃발 저것도 소소하게 반가웠지만 굳이 아는 척은 안 했다.

남태령 깃발도 이하동문.


아카이아 노조 깃발 기수분에게는 짧게 인사. 옆에 다른 트위터 지인도 계시더라.

황금거룡 깃발 옆 무진장 떡볶이 단골연합

전에 몇 차례 본 적 있는 타디스 도둑 협회 깃발. 과감히 직접 말 걸어서 사진 찍게 펼쳐달라고 부탁했다. 웃는 낯으로 허락해 주셔 감사합니다.

오늘이 생일이셨다는 분. 피켓 찍고 생일 축하드린다고 인사한 뒤 괜히 창피해져서 도망쳤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순신 장군님, 그 때 그러했듯 이번에도 저희가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큰 전투에서 한 번 승리했다. 하지만 룬썩10 탄핵은 시작에 불과하다. 좌파로서,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다. 다음 과제는 국혐 정당 해체와 차금법 통과 그 둘이다(그리고 유력한 차기 대통령인 이재명은 앞쪽이라면 모를까 뒷쪽에는 부정적이다). 앞으로도 길고 힘든 싸움이 이어지겠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비싼 거 먹으면서 마음껏 축하하자는 생각으로 족발 사왔다.

이런 걸 썼었다(도사려 숨은 굿것 내어 몰아라라는 저 문구는 한겨레 신문에도 실렸다). 이제 운명의 나라가 열리고 와야만 할 그 날이 오고 있다. 오늘은 2025년 봄이 피는 첫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