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이것 저것...

자레드 갈렝 2009. 12. 22. 03:40
1)

금요일날 종강했다. 학회장과 다음 학기 과대를 뽑고, 종강 총회 뒤 종강 파티가 있었다. 내년에 국문과와 합쳐지는데...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문창과 쪽에서 등단 작가가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한데, 내년 학회장을 맡기로 된 후배가 최근 등단했었다. 그 때문에 그 후배가 속해 있는 동아리 왕고(그래봤자 나보다 1년 후배긴 한데)가 이제 막 등단해서 제대로 소설 쓰려는 애를 학회장 시키면 어떻게 하냐, 차라리 자신이 하겠다고 우겼다.

개소리다. 국문과와의 힘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등단'이라는 '대외적인 결과물'이 필요하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이유를 제끼더라도 학과 일을 맡으면 자기 글 제대로 쓰기 힘들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 후배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학회장에 선출이 되었고, 스스로도 그걸 받아 들이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이상 지금 와서 그걸 번복할 수는 없다.

2)

...내가 이번 학기 과대를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더라면, 모든 게 지금보다 좀 더 나았을까.

금요일날, 학회장인 친구놈과 싸웠다. 내가 실무에 있어서-특히 사람 상대하는 데 있어서- 부족한 부분이 있었으니, 그 때문에 속으로 좀 쌓여 있었으려니... 생각했는데, 그 놈 이야기는 약간 달랐다. 그 녀석은, 그것보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 즉 내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화를 냈다.

"1단계는 '인간'이야. 초월적인 가치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그저 다른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하루하루 살기 바빠. 2단계는 '좀 더 먼 꿈과 이상을 가지고 노력하는 인간'이야. 시 쓰는 데 모든 걸 걸고 있는 후배 하나가 거기에 해당되고. 3단계는 '그를 이룬 인간'이야. 자기 세계가 완성되고 많은 이들이 스승으로 존경하지,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5단계는 신이야. 그는 완벽해. 무엇도 그의 세계를 바꾸지 못하고 누구도 그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어. 그런데 넌 지금 4단계에 있어. 넌 신도 인간도 되지 못하고 있어 지금. 내가 안타까운 게 그 부분이라고!"

.......

난 그 친구의 목소리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내내 쌓여 있던 안타까움과 우정, 그리고 거리감을 느꼈다. 걷잡을 수 없이 슬퍼졌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3)

일요일에는 웹진 거울 쪽에서 출판 기념 파티 겸 송년회가 있어서 거기 나갔다. 내 글이 실린 책도 받아 왔고,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친분이 있어 온 사람들도 만났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도 봤고, 누가 쓰러지거나 취해서 싸우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없이 편히 술도 마셨다. 그렇게 밤새 먹고 마시고 떠들다가 아침에 돌아왔다.

그러나, 내 안 깊숙한 곳에서는 모든 게 덧없다는 느낌으로 가득했다.

슬프거나 무력감은 들지 않는다. 그건 이미 겪었다. 잘못된 채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 느낌은 지워지지 않는다.

4)

그런 생각이 든다.

변하기 위해 노력했고, 여러 일들을 겪었고, 그리고 결국 실패했다. 아직 좀 더 노력하려면 못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그냥 잘못된 채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도 모르게 변하거나, 변할 수 없더라도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게 덧없다는 느낌은 내 안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정말로 '잘못된 채로 살아갈' 생각이라면, 아직 해야만 할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