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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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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11
    낸시 크레스 외, <장르 글쓰기 01> 中
  2. 2016.03.05
    <도심환경> 2차 합평 결과
  3. 2016.02.21
    <도심환경>을 쓰면서- 이야기의 방향성에 관해
  4. 2016.02.02
    비교적 평범한 '중세 판타지'를 호러물로 바꾸는 요령
  5. 2015.12.09
    기사도, 하드보일드
  6. 2015.11.18
    <도심환경>을 쓰면서 느끼고 있는 점
  7. 2015.11.01
    [리뷰]누메네라
  8. 2015.10.01
    제 2회 한낙원 과학소설상 공모전 출품
  9. 2015.07.19
    장편, <도심환경:File01 뉴욕 할렘 스트리트 연쇄살인 사건> 연재 개시
  10. 2015.06.01
    지금 쓰는 장편 쓰는 사이 사이에
  11. 2015.05.19
    찰스 스트로스, <또 다른 냉전>
  12. 2015.05.12
    [펌질]이순영 시인의 시에 대해서
  13. 2015.04.25
    <도심환경> 1차 합평 결과 8
  14. 2015.04.01
    [리뷰]경성탐정록
  15. 2015.03.17
    레이먼드 챈들러, <빅 슬립> 中
  16. 2015.01.01
    [리뷰]기억 전달자
  17. 2014.11.12
    American fear:미국 호러 장르를 통해서 본 '미국의 공포'
  18. 2014.10.25
    로이스 로리 作 <기억 전달자> 리뷰... ...까진 아니고 간략한 감상
  19. 2014.07.01
    [리뷰]겁스 실피에나
  20. 2014.06.01
    소설 수정 중
  21. 2014.04.28
    아무래도 나는
  22. 2014.04.20
    빨간색 괴물(가제) 1차 합평 결과
  23. 2014.04.10
    공안예술대상 응모 완료 2
  24. 2014.03.22
    <고요한 전쟁> 3차 합평 결과 추가 내용
  25. 2014.03.03
    여치헌, <인디언 마을 공화국> 中

...글쓰기는 숲 속에서 홀로 춤을 추는 일이다. 발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관절이 쑤실 지경에 이르도록 춤을 추는 일이다. 신이 내 작품을 지켜본다는 희망밖에 남지 않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춤을 추는 일이다. 신이 존재하며, 우리의 소설이 출간되든 그렇지 못하든 신이 이 작품을 기쁘게 여기리라는 희망에 매달려 춤을 추는 일이다. ...(중략)... 글쓰기란 믿음의 궁극적인 행위이며 우주를 손 안에 움켜쥐기 위한 행위다. 그에 비해 출판은 룰렛 바퀴일 뿐이다. 그래서 난 이런 결론을 얻게 되었다. 완성된 작품 안에서 어떠한 만족을 얻고 싶다면 글쓰기,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내재된 정신적인 면을 해방시켜야 한다. ...(중략)... 글쓰기는 마치 신앙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신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나 자신만이 존재할 뿐이다.그 어떤 블로그 운영도 글쓰기와 나와의 관계에 간섭할 수 없다. 요한이 썼듯이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글쓰기는 단지 신에게 말을 거는 행위가 아니다. 글쓰기 자체가 실로 신인 것이다...


-에릭 스테너 칼슨

And

*소재 자체는 마음에 든다.

*뉴욕 할렘보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끝까지 쓰면 되게 길어질 듯:Q

*앞 부분은 봤던 거고... ‘아 이게 이런 식으로 풀리는구나’ 하며 봄

*두 가지 문제만 고치면 될 거 같은데 그 두 가지 문제가 작품 전체에 걸쳐 있다독자 입장에서 궁금한 것독자가 빨리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고 있음독자가 궁금하지 않은 것을 자꾸 들이밀고 있다.

*분위기 묘사가 상당히 많은데 구체성이 부족함. ‘형언할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형언할 수 없다고 넘길 게 아니라 그걸 독자에게 납득을 시켜줘야 한다이런 묘사들이 배경의 분위기만 잡고 있고사건과 갈등이 안 나옴이야기가 핵심으로 직행하지 않고 계속 주변부에서 맴돈다예를 들어가르시아의 첫 등장바이크 설명을 길게 할 게 아니라 10분의 1형으로 옛 부하를 족치는 장면부터 들어가고얘가 어떤 인물인지 슬슬 푸는 게 더 나았을 듯.

*모든 캐가 설명충스러워지고 있다.

*캐릭터들의 어조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차별화되어있지 않음전부 동일인물 같다.

*이 긴 분량 동안 죽은 건 쩌리 하나 뿐독자로서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물들의 숫자도 그렇고 문장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웹소설 포맷과는 거리가 멀다가볍게 읽기가 어려움

*니마 좀 버리고 포기하는 법을 배우셈이거 중요.

*루시엔가르시아록슬리섀넌이 정도가 중요한 인물일 거 같은... ....

*작가가 록슬리를 너무 아낀다’ 싶음출연분량도 아껴서 내보내고캐릭터 자체를 애지중지한다는 느낌도 들고.

*사건 배치나 전개플롯 같은 건 이대로 가도 괜찮을 거다그런데 거기까지 가야 하는 길이 너무 길달까완급 조절에 문제가 크다.

*일반 독자 입장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을 부분은 역시 초반 로보의 10분의 1형 장면인 듯

*뭔가 초자연적인 사건인 거 같긴 한데평범한 살인사건처럼 보인다이 정도 분량까지 왔는데!

*외모 묘사가... ...아무튼 묘사가 좀 많다. ‘선명하지만 투박하지 않은 단정한 이목구비’ 같은 묘사는 모순됨.

*부사를 지나치게 남발한다.

*작가가 작중에 개입하여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 의도로 썼으니 그대로 읽어라’ 라고 들이댄다는 느낌을 주는 묘사가 많다더 능청스럽고 세련되게.

*한국 작가가 쓴 미국 배경 소설이라는 게 계속 상기됨마피아라는 놈들이 한국 조폭 같고철거민들이 농성하는 것도 그렇고그런 게 너무 적나라하게 한국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왜 굳이 미국을 배경으로 했는가현대 한국의 독자 입장에서는 물리적인 거리감이 너무나 크다그러다 보니 독자 입장에선 누구에게 이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문제가 있음.

*헐리웃 영화나 미드를 봐도 이입을 할 수는 있다주인공들이 미국인인 건 어쩔 수 없는데독자들을 사로잡는 힘이 부족하다.

*독자들은 인내심이 없다더 빨리쭉쭉 달려야 한다.

*자료조사한 걸 일일이 설명하려고 하지 마셈 니마

*서스펜스를 보다 강조해야 흥한다

*요즘 독자들은 예전 독자들처럼 성실하게꼼꼼하게 읽지 않는다다들 먹고 살기가 빡세다 보니 에너지를 써서 정독하지 않으려 함이걸 고려할 필요가 있음

*제목이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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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글씨는 특히 와닿은 지적. 평이 별로 안 좋은 건 괜찮은데, 전부 읽어 온 사람이 1명 밖에 없는 건 좀 기분 상한다, 쯧. 1달도 더 전에 올려놓고 분량 많으니 미리 봐두라고까지 해뒀구만.


확실히 굳이 필요하지 않다 싶은 설명이 너무 많긴 하다. 내가 좀... 공들여서 자료조사한 걸 최대한 써먹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나머지 독자를 지치게 하는 것도 사실이고. 


다만... 애초에 이 작품은 독자를 몰입시켜서 메인 스토리 라인을 쭉쭉 달리는 스타일이 아니고, 디테일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서 견고하게 필연성을 구축하는 스타일이다. 가볍고 빠른 읽을거리를 선호하는 독자가 많고, 그러한 독자들의 필요를 수용해야 흥하는...  요즘 트렌드에 뒤처진 방식이라는 건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그 방식을 철회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이 작품에 있어서는. 


기본적인 방향성을 관철하되 자잘한 설명을 쳐내고 이야기 전개를 가속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긴 한데 어느 선에서 타협해야 할까?   



아무도 읽지 않는 작품을 끌어안고, 알아주지 않는 세상만을 원망하다가 홀로 죽어 간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이 대체 얼마나 많았을까.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억눌러 뒀던 절망이 다시 밀려온다. 단 한 번도 사라진 적 없는, 다만 필사적으로 눌러두기만 해 온 그 절망이.



And

이 글의 가장 근본적인 주제는 "우월한 힘을 가진 입장에서 임의로 선과 악을 규정하고 자신이 선이라고 판단한 이들만 '구원'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은 오만한 태도이며억압 당하는 약자 편에 서서 함께 싸우는 행위 자체가 고결한 것이다"로 압축할 수 있다. 일단... 작가 입장에선 그렇다. 그러한 현실지향적 주제를 갖고 있는 만큼, 난 이 글을 읽은 사람 100명 중 10명 정도는 '사회적 정의'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고 그 10명 중 1명 정도는 인권이나 연대 같은 가치를 위해 작은 행동이나마 하길 바란다. 


그를 위해서는, 독자가 '이런 일이 세상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실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토 나오게 자료 조사한 것도 이것 때문이고, 새벽 4시가 되도록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어떻게 해야 다음 페이지를 쓸 수 있을지 고민한 것도 이것 때문이고, 그러다가 게임과 웹서핑으로 샌 것도 이것 때문이고, 조금만 눈 붙이려고 누웠다가 꿈 속에서도 글을 쓰는 것도 이것 때문이고, 그런 꿈 속에서조차 '아 시발 현실에선 나 다음 연재분 못 썼는데'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가위에 눌리는 것도 이것 때문이고, 가능한 파워 레벨을 낮추고 현실감 있는 서술을 하려고 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이 글은 결국 비극에 가깝게 끝날 것이다. 주인공들은 작은 승리를 거둘 테지만 그를 위해 큰 희생을 치루게 될 것이며, 많은 이들이 죽게 될 것이다. 여전히 현실은 시궁창이고 극적으로 나아지는 것 따윈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고구마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주제가 저러한 이상 모든 게 잘 해결되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나 버리면 이야기의 진실성이 없어지게 되고, 결국 독자는 그러한 주제를 잊어 버리고 그냥 '현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허구의 이야기'로만 이 글을 받아 들이게 될 것이다. 이 글의 엔딩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독자로 하여금 행동을 촉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의 방향성을 확고히 하는 차원에서 정리해 둔다.


나는, 사람이 싫다. 하지만 사람들끼리 모여 이루는 연대는 그렇게까지 싫지 않다.

And

대전제:호러물에서 공포감을 유발하는 핵심 요소는 '공포의 대상과 교감할 수 없을 것' '공포의 대상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그리고 '공포의 대상에 대해 저항할 수 없을 것' 이 3가지다. 그런데 대체로 중세 판타지 물에서는.... 대상이 오크나 오거, 트롤 같은 비교적 흔한 몬스터가 됐건 마법이 됐건 거기에 관한 설명이 세계 속에서 너무 많고, 또 주인공들이 그걸 알아낼 수 있을 만한 루트도 너무 많다. 현자가 설명충 짓을 해주건, 마법대학 도서관을 뒤지건, 다른 모험가들에게 이야기를 듣건.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은 무섭지가 않음. 물론 그 대상이 존내 강할 수도 있고, 그 스펙을 통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는 줄 수 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그 대상은 그 세계 내부에서 객관적인 분석과 연구가 가능한 구체적인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이런 건 너무 빨리 익숙해지게 됨.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가?
 
1)'오크' '오거' '레이쓰' '스펙터' '뱀파이어' 같은 잘 알려진... 이 바닥에선 일반명사 취급되는 이름을 쓰지 말 것. 대신 외모와 행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그냥 주인공들이 임의로 가칭을 붙여서 부르게 할 것.
 
2)몬스터의 경우, 디테일을 바꿀 것. 예를 들어서 뱀파이어 같은 경우... 햇빛을 받으면 재가 된다는 설정이 워낙 유명하고, 여기저기서 마르고 닳도록 쓰였지만 정작 가장 대중적인 뱀파이어 이미지의 원천인 브람 스토커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드라큘라 백작은 햇빛 받아도 안 죽었다. 낮에는 그저 관에서 자고 있으며, 자는 중에도 주변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묘사 뿐이고. 머리를 굴리면 해당 개념의 핵심 컨셉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음.
 
3)마법의 경우, 모든 마법 주문이 뭔가 희생 의식이 필요하다거나 주문의 효과 자체가 흑마법 삘이 난다거나하게 설정할 것.그리고 모든 주문에 대해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을 붙일 것. 이 부작용은 뭔가 음산하고 섬뜩하고 기분 나쁠수록 좋다(주문을 쓸 때마다 검은 개나 까마귀가 어디선가 나타나 기분 나쁘게 마법사를 쳐다보다 어느새 사라진다거나, 쓰고 나면 그날 밤 반드시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거나, 점점 외모가 추하게 변한다거나). D&D 식으로 표현하자면, 모든 와일드 서지가 뭔가 칙칙하고 공포 분위기가 나도록 바뀐 와일드 메이지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중세 판타지 세상인 이상 마법사가 한 둘이 아닐테고, 그런 부작용에 대해 연구하고 왜 그런 부작용이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부작용을 없애거나 완화할 수 있는지 연구한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닐테지만 아무도 그걸 확실히 밝혀내지 못했다고 해둘 것. 그리고 이런 요소들을 통하여 마법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그 진정한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 누구도 완전히 알 수 없다고 못 박아둘 것. 마법은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힘이고, 원래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종류의 힘이라는 걸 명확히 할 것. D&D 기반이라면 아케인 스펠이 거의 다 이 분류에 들어갈 듯?
 
4)신의 힘을 빌리는 성직자의 신성 마법 같은 경우, 저런 종류의 부작용은 없다고 해도 됨. 대신 그 어떤 훌륭한 성직자도 지금 자신이 사용하는 주문이 정말로 자신이 섬기는 신의 은총인지 아니면 대악마나 악신이 일시적으로 힘을 빌려주며 자신을 조종하려고 하는 것인지 결코 완전히 확신할 수 없다고 못 박아둘 것. 기도 등을 통해 신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거나 하는 종류의 마법 주문은 전부 금지.
 
5)세상의 전반적인 파워 레벨 자체를 낮게 잡을 것. 이해하게 쉽게 D&D 기반으로 쓴다고 가정할 경우... 주인공들은 그래도 유능해야 쓰기도 쉽고 보는 입장에서도 답답하지 않으니 대략 3레벨 정도. 3레벨이면 D&D의 표준 배경세계 세팅인 그레이호크 기준으로 상당한 경험과 훈련과정을 거친 베테랑들이다. 전사라면 혼자서 칼 한 자루 들고 오거와도 맞장뜰 수 있고, 도둑이라면 도둑 길드의 하급 간부로서 시골 마을 하나 정도는 관리할 수 있고.... 등등. 그 대신, 상한선을 낮출 것. 너님이 지금 쓰고 있는 건 호러물이지 에픽 히어로물이 아닙니다.  

6)캐릭터들이 속해 살아가는 세상의 묘사도 어둡고 침울하고 질척질척해야 분위기가 산다. 왕궁에서는 한 때는 현명하고 자비롭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이젠 늙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왕이 있고, 그 왕을 둘러싸고 신료들이 수군수군하며 파워게임 벌이고 있고, 귀족 가문에서는 작위와 영지를 계승해야 할 첫째 아들이 전신에 털이 자라나며 성격이 난폭해지는 기묘한 병에 걸리는 바람에 그 소식이 가문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도시 광장에서는 이단심문관들이 마녀를 화형하고 있고, 그걸 지켜보는 평민들은 내일은 또 누가 잡혀갈까 혹시 이웃이 날 밀고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뒷골목에선 재수 없는 행인이 칼침 맞아 죽어가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시골에서는 역병과 기근이 돌고.... 등등.  
 
7)주인공들도 정통적인 영웅이 아니라, 어딘가 엇나갔거나 뒤틀린, 병적인 부분이 있는 부분이 있는 캐릭터들인 쪽이 배경과도 자연스럽게 섞이고 스토리 속에서 움직이기도 좋음. 고결하고 이타적인 기사지만 미녀의 유혹에 극도로 약하다거나, 오랜 세월 전쟁터를 전전한 베테랑 전사지만 검으로는 벨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를 무척 두려워한다거나, 강력한 마법사지만 더욱 강한 마력을 얻기 위해 몰래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거나, 경건하고 신실한 사제지만 독선적이고 오만한 면이 강하다거나, 쾌활하고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지만 저주를 받아서 한 번 화가 나면 주체할 수 없어질 정도로 난폭해진다거나, 기타 등등. 
 

8)적으로 나오는 몬스터의 경우... 대전제에서 언급한 대로 '교감 불능' '이해 불능' '저항 불능'이라는 3대 요소를 극한까지 살리려면 2)에서 제시한대로 평범한 오크나 고블린 같은 놈들을 더 강하고 살벌하고 이질적으로 묘사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무래도 역시 '이 세계에 속한, 비교적 평범한 생물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런 면에서 가장 좋은 놈들은 역시 유령을 비롯한 언데드와 애초에 다른 세계 출신인 요정, 악마, 그리고 만든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유니크한 결과물이 나올 여지가 많은 골렘 및 키메라 종류. 역시 다른 세계 출신인 애버레이션 계열 몬스터들도 가능성이 높다. 성격을 좀 꼬아서 인간이 자기 기준의 선과 정의에 철저히 부합하지 않으면 대량학살도 거리끼지 않는 식의 극도로 독선적이고 오만하며 두려운 존재로 설정한다면 천사도 호러물의 몬스터로 등장시킬 만하다(그렇다고 해서 자기 입으로 "하찮고 천박한 인간" 운운하는 대사를 치면 깬다. 크툴루 신화의 고대신들이 "우매한 인간들 전부 죽어 버려라 크하하" 같은 소리를 하면 그 파워와는 별개로 얼마나 병신 같아 보이겠음? 어떤 의도도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한다거나, 자기 할 말만 할 뿐 유의미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처리할 것. '나름 자기 기준의 선과 정의에 따라 이런 짓을 하는 것 같긴 한데 하는 짓이 존내 끔찍한 데다가 인간 입장에선 그 기준이 뭔지 영 이해할 수 없다' 정도의 느낌을 받게 하는 걸로 충분함).


*참고할 만한 작품:블러드본(게임, 초반 한정), 더 위처(게임), 다키스트 던전(게임), 디아블로1(게임), 적사병의 가면(소설), 오트란토 성(소설), 슬리피 할로우(소설), 베르세르크(만화, 초반~중반 한정)

And

지금 쓰는 장편인 <도심환경>에는 세 주인공들이 나온다. 그 중 한 명은 가르시아 '로보'라는, 전직 마피아 조직원이다. 그가 몸 담았던 조직은 해산됐고 충성을 바치던 대부는 감옥에 있으며, 그는 여전히 자신의 폭력으로 가득한 삶을 후회하는 법 없이 살아왔던 대로 살고 있다.


오늘치 연재분을 쓰면서 내내 고민했다. 작가로서 가르시아라는 캐릭터에게 부여한 속성은, '냉정하고 잔혹한, 하지만 나름의 의리와 명예를 알고 있는 배드애스'다. 그러나 가르시아는 미국적인 마초라기보다는, 홍콩 느와르 영화나 무협지의 '협객'에 가깝다. 마피아 출신 폭력배를 미화하는 건 내 도덕 관념이 허락하지 않고... 결국 그는 자신의 낭만이 무의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끔 내 안에서 예정되어 있다.


그 순간이 임팩트가 있기 위해선 하드보일드한, 거칠면서도 기사도 정신에 투철하다는 가르시아의 행동 원리가 독자에게 설득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서 지금까지 가르시아가 작품 내에서 묘사된 모습을 보자면 설명이 지나치게 많다. 독자가 설득되기 전에 나 자신이 작가로서 설명해 버리는 느낌이랄까.


이미 써서 업로드해 버린 부분은 어쩔 수 없긴 한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된다.       

And

1)완전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지 않는다 해도, '카메라'가 특정 인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면 어느 정도 캐릭터의 속 생각을 묘사해줘야 장면의 긴장도를 높이기가 좋은 듯. 총기나 무술 관련 설명을 자연스럽게 하기도 쉽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심리 묘사를 하되 부분적으로만 하고 특정 부분에 대해선 보여주기로 일관해서 독자를 낚는 수법도 있을 수 있겠다.


2)이야기의 구성이 조밀하지 못해서 고민 중. A라는 인물의 시점에서 주어진 떡밥을 B라는 인물이 캐치해 간다거나 하는 요소가 더 필요한데 지금까지 쓴 걸 다시 읽어보니 각 부분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건 그 때 그 때의 흐름에 맡기면 안 되고 사전 설계 단계에서 철저하게 준비를 해둬야 하는데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장편을 쓴 경험이 없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아직 부족하다는 게 느겨짐.

3)총기 좋아 무술 좋아 액션 씬 좋아 헉헉헉. 특히 총. 전에 합평 모임에서 '내가 이번 작품 배경을 미국으로 한 이유는 마음껏 총질을 하고 싶어서다'라고 한 적 있는데 보람이 느껴진다. 한국 배경이면 총질을 정당화하기 위한 부가 설정이 너무 많아져서 도저히 이렇게 못할 듯. ...나는 재미있게 쓰고 있긴 한데 너무 설명이 많은 거 아닌가 싶어서 좀 그렇긴 함.

4)'사냥꾼' '경찰' '마피아' 세 주인공 중 경찰을... 상업적 고려 때문에 한국계 혼혈이라는 설정으로 바꿨는데 머리 속의 이미지와 따로 놀고 있는 상태. 지금이라도 원래 설정대로 라틴계 혼혈로 고칠까 싶음. 

5)배경이 미국이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 가능한 등장 인물들의 인종을 다변화하고 있는 중. 에스키모부터 마오리 족까지 최대한 폭넓게... 가능하면 단역으로라도 다종다양하게 인종 분포를 한다는 게 소소한 목표. 

6)12월 5일에 광화문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규탄 집회를 한 번 더 한다고 한다. 지난 주 토요일엔 못 갔었는데 이번에 가려면 열심히 써서 어느 정도 비축분을 모아 둬야 할 듯. ...조회수 보면 탈력감이 들긴 하는데.   


And

http://mirrorzine.kr/index.php?mid=w3_nonfiction&document_srl=8401

And

1분 차이로 마감에 맞췄다. 


만일 이게 뽑히면 상금으로 어머니 선물 사드려야지.... 맛사지 기계가 좋겠다.... 나머지는 저금해둘까... 뭐 그런 생각하고 있다가 살짝 현타가 왔다. 뽑히면 엄청 좋기야 하겠지만... 경험적으로 봤을 때 내 놓고 잊어 버리고 있는 게 바람직하다. 취업할 때 이력서랑 자소서 보내놓고 잊어 버리고 있는 게 마음 편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취업은 만일 비정규직이어도 몇 달은 따박따박 돈이 들어오지만 공모전은 쟌넨 한 번 받고 끝이라 유감이랄찌ㅇ.<


몇 번 쯤이나 더 공모전에서 떨어지면 성과가 있을까 아오 젠장-_- 


+


일단 접수는 된 모양이다. ....아아번뇌가밀려온다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모지사바하


+


그러고 보니 나 곧 생일이구나. 생일 선물로 이거 어떻게 좀 안 될까 시벌탱.....

And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현재 프롤로그와 1회차를 올린 상태.





http://mirror.pe.kr/novel2/104320


http://mirror.pe.kr/novel2/104576



원래 이 장편은, TRPG 시나리오 용으로 구상한 거였다. 작중 시점과 동일한 2011년 초겨울에 플레이를 시작했었고, 마침 그 때는 월가 점령 시위가 한참 이슈가 되고 있었다. 플레이는 도중에 파토가 났지만 아이디어가 아까워서 계속 묵혀 놓고 있다가... 소설용으로 고쳐서 재시동을 건 게 재작년이었다. 조회수 올라가봤자 돈은 쥐톨도 안 들어오지만 기왕 올리기 시작한 거 홍보도 좀 해야겠다 싶...긴.... 한데.... 어..... 어디다 하지.... 내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도 없고...........





And

이미지 트레이닝을 겸해서 같은 배경으로 가볍게 쓰던 소품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진도가 안 나가서 한 달 정도 방치해 놨었는데, 어떻게든 쓰다 보니까 이 뒤에 어떻게 쓰면 좋을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씨풋 역시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처박아 놓고 잘 나신 영감이 떠오를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그냥 쓰고 봐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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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rror.pe.kr/novel3/27182


<솔스티스 월드>를 만드는 계기가 된... 정확히는 RPG 팀에서 "냉전 배경으로 크툴루 신화의 고대신과 싸우는 엘리트 인간 조직 플레이를 해보자"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단편 소설. 냉전의 쌔한 분위기와 코스믹 호러가 잘 어우러져 있다. 이 번역에서는 인류가 대피하는 XK-마사다가 은하계 중심으로부터 600만 광년 가까이 있다고 오역이 되어 있는 게 옥의 티. 은하계 지름은 10만 광년 좀 넘지 않나... 싶어 원문을 찾아 봤었는데 그럼 그렇지, 원문은 six hundred light years라고 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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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djuna.kr/xe/index.php?mid=board&page=6&document_srl=12378338


어린이"이라는 편견에 기초한 관념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에 의하여, 한 "어린이"의 조심스러운 말이 분서당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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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대충 저 나이였고, 지금은 소설로 분야를 옮겼지만 나 역시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건 시였다. 그 때 생각이 나서... 당시 국민학생이었던 내 습작 노트를 다시 한 번 꺼내 봤다. 첫 감상은 "아오 슈ㅣ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오글거리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 손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었고 두 번째 감상은 "...그래도 이 때 내 나이가 10살, 11살 수준이었던 거 고려하면 제법 괜찮다?" 였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 지금은 오히려 결코 저런, 철저하게 자기 내부로부터만 비롯한- 남의 시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문장을 쓸 자신이 없다. 


아마 12살 때였던가 미술 시간에 선생이 내 그림을 보고서(당시 난 걸어가며 책을 읽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런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옆에 깔려 있는 아스팔트 도로와 주차된 자동차를 검게 칠했었다) "그림에 검정색을 너무 많이 쓴다, 너 머리가 좀 이상한 거 아니냐"라는 소리를 대놓고 했었다. 그 당시 내 정신 상태가 여러모로 불안정했던 건 사실이지만, 애들 다 있는 앞에서 공공연히 그런 소리를 하며 또라이 취급을 하던 그 선생도 존경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검은 자동차와 검은 아스팔트를 그럼 검게 칠하지 너님 같으면 파랗게 칠할래 샹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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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그로부터 얼마 전 미술 시간에 미래의 풍경을 그리라고 했는데 딴 애들은 죄다 로봇이니 수중도시니 같은 거 그리고 있는데 난 산소가 사라지고 바다도 죄 말라서 시커먼 하늘 아래 해골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핵미사일 떨어져 있는 거 그렸었지. 그리고 그 때도 그 선생은 성의 없다고 개욕했고. 2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기억나니 새삼 ㅈ같다.


ps=장도리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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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환경()

*전체적으로 기대되는 수작. 배경은 미국인데, 작가와 독자가 모두 한국인이라는 데서 오는 이질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관건

*괴물의 정체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과거 시점과 현재 시점이 만나는 지점이 불명확함. 왜 하필 그것이 인디언들과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현재 재개발 와중에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가, 그런 부분이 좀 임팩트가 더 있었으면 한다.

*인디언들이라는 존재의 등장이 어떠한 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위성 측면에서 약간 의문이 있다. 왜 굳이 지금 그 괴물이 깨어나는가?

*01이 이어지는 부분이... 독자를 이야기 내에 몰입시키지 못하고 소외시키는 느낌. 좀 더 자연스럽게 이어줬으면 싶음

*주연이 셋인데, 독자가 셋 중 하나에게는 몰입해야 한다. 록슬리는 비인간이니 논외, 가르시아나 루시엔이 그 역할을 해 줘야 한다. 루시엔의 경우는 캐릭터가 찌질해 보일 수 있음. 초반 몰입은 중요하다.

*묘사가 수려하긴 한데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읽다가 빡세:Q

*대화(특히 록슬리가 블라블라 하는 부분)가 재미있긴 한데, ‘한국적 표현이 종종 튀어나온다. 보가트 경사의 개이득!(Profit)"이라거나.

*헌트 시장의 인물상 묘사가 마음에 든다.

*이야기 흐름에 있어서 묘사에 리듬 조절? 강약 조절? 그런 게 필요하다. 예를 들어, 록슬리가 나오는 부분.

*마지막에 록슬리가 돌아오는데, 마치 투자자가 너무 결말이 암울하니 희망적인 걸 보여줘라고 요구해서 나온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주제가 흐려진다는 느낌. 시장부터 시작해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도 전부 죽고. 그런 판인데. 이 결말은 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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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rrorzine.kr/index.php?mid=w1_domestic&document_srl=7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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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죽으면 어디에 묻혀 있는지가 중요할까? 더러운 구정물 웅덩이든, 높은 언덕 꼭대기의 대리석 탑이든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 당신이 죽어 깊은 잠에 들게 되었을 때, 그러한 일에는 신경쓰지 않게 된다. 기름과 물은 당신에게 있어 바람이나 공기와 같다. 죽어버린 방식이나 쓰러진 곳의 비천함에는 신경쓰지 않고 당신은 깊은 잠에 들게 되는 것뿐이다. 나도, 이제는 그러한 비천함의 일부가 되었다. 러스티 리건이 그랬던 것보다도 훨씬 깊숙이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노인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는 핏기 없는 이불 위에 올려놓고 차일을 친 침대 위에서 조용히 누워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짧고 불확실한 중얼거림과 같았다. 그의 사고는 타 버린 재처럼 회색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면 그 또한, 러스티 리건처럼 깊은 잠에 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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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타이틀을 바꿨다. 이전의 타이틀은, '지옥에서 너 자신을 구하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어딜 가더라도 그곳은 내게 있어 저마다 다른 종류의 지옥에 불과할 것이며 내 유일한 운명은 오직 그 색채 없는 불길 속에서 홀로 견뎌내는 것 뿐이라는 예감이 든다. 허수아비의 주머니 속에서, 별들 사이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언제까지 가능할까? 가끔은 형언할 수 없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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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rrorzine.kr/index.php?mid=w2_oversea&document_srl=37415

 

사회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리뷰. ...내가 사상적으로는 사회주의자에 가까운 주제에 정작 개인적 레벨에 있어서는 타인과의 소통과 이해를 거부한다는 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약간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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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브 바커의 <미드 나이트 미트 트레인>과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에서 나타난 공포의 키워드를 분석해서 미국인이 갖고 있는 '두려움'의 두 원형을 추출해 내고, 그것이 한국인 입장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비교 분석한 글. 2회 파운틴 리뷰 공모전에 내서 최우수상에 뽑혔다. ...그것까진 좋았는데, 뽑혀서 실리자마자 파운틴이 폐간되어 버렸다. 안습. 시부엉 내가 투고하는 데는 어째 코너가 폐지되거나 잡지 자체가 폐간되거나 왜 죄다 이 모양인가 몰라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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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원래 이런 종류의 작품들 좋아한다. 멀게는 <1984><멋진 신세계> <우리들>부터 해서 <해리슨 버거론><롱워크>를 거쳐 가까이는 <그림자 아이들><설국열차> <헝거게임 시리즈>에 이르는, 전체주의적인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그에 저항하는(최소한 그러한 체제의 끔찍함과 불합리성은 자각하고 있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작품.

 

그런데.... ....깨놓고 말해서, 이 소설에서 제시되는 사회상은 이런 장르 중에서도 특히 극도의 공포와 암울함을 달리는 <나는 입이 없다, 그러나 비명을 질러야 한다>에서 드러나는 그것에 비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내가 온갖 막장의 극한을 달리는 현시창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상대적으로 그렇게 여기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입이...>를 읽고 난 뒤 <1984>를 읽으면 그 세상이 따사롭게 햇볕 내리쬐고 옆에는 얼음 띄운 레모네이드가 놓여 있는 여름 해변처럼 보일 지경인데 이 정도 수준이면 뭐 양호하지(...).

 

그러한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 사회가 끔찍한 이유는, 단순히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무자비한 억압 속에서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멋진 신세계>의 소마로 대표되는, 현실의 그러한 끔찍함과 불합리성을 최소한 잠시 잊게라도 해주는 오락거리들 덕에 그럭저럭 그러한 억압과 고통을 견뎌가며-심지어는 위로부터의 우민화와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합리화 끝에 아예 그게 억압과 고통이라고 여기지 조차 않으며- 살아가는, 그리고 그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변혁을 주도하는 주인공들을 불신하고 비난하는 대중들의 모습도 이러한 작품군에서는 자주 묘사된다. <멋진 신세계>나 한 발 더 나아가 <쇼생크 탈출> 같은 작품에서는 그러한 사회의 피라미드 최상층부에 있는-약간 통찰이 부족한 작품에서는 그저 누가 봐도 확실히 나쁜 놈들인 탐욕스럽고 가학적인 소시오패스로만 묘사되는- 지배 계층마저도(<멋진 신세계>에서는 무스타파 몬드 총통, <쇼생크 탈출>에서는 새뮤얼 노튼 교도소장으로 대표되는) 그러한 사회적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도 견고하게 고착되어 버린 구조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데다,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여기기에 다만 지금껏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며 스스로가 지배 계층이라는데 만족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 사회가 끔찍한 진짜 이유는, 기층 대중들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최정상에서 군림하는 지배자마저도 변혁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채 그저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어떠한 변화도 혁신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근본부터 차단되어 있으며 그것은 이미 너무나도 공고해 개인적인 레벨의 선의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 밑바닥부터 정점에 이르기까지 그 사회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이 체념한 채, 일체의 존엄이나 자율성을 포기하고 오직 스스로를 해당 사회의 존속을 위해서만 기능하는 무한히 대체 가능한 대상물로 격하시키게 된다는 것-철저하게 자발적인 과정을 통해!-. 그것이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 속에서 묘사되는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가 끔찍한 이유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세상은 그 정도로까지 막장은 아니다. 색깔도 볼 수 없고, 음악도 들을 수 없을 지언정 최소한 텍스트 상으로 묘사되는 바에 의하면-종족 단위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과연 그렇게 이타적인 존재일 수 있는 지에 대한 의구심이나, 고작 2번까지의 규율 위반만 허용되고 그걸 넘어서면 임무 해제라는 최후의 수단이 기다리고 있는데 오히려 너무 임무 해제가 빈발하는 나머지 임무 해제 조치의 권위가 약해질 거라는 문제를 제한다면- 이 세상의 원로들(, 이 세상의 독재자들)은 진심으로 공공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비록 아이들의 곁에서 항상 그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 하나를 감시하고 심판하기는 하지만 그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어디까지나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익과 안전을 위해 쓰인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 속의 세상에서는 진정한 감정과 그에 대한 기억들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기억 보유자와 전달자라는 존재가 있다. 게다가 그들은 위험한 이레귤러 취급당하는 일 없이 공식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유사시의 조언자로서 존중받기까지 한다.

 

이러한 작품군의 특성에 비춰봤을 때 기억을 보존하고 전달한다는 이들의 존재의의는, 사회의 폐쇄와 정체, 부패를 막고 변혁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남기는 최소한의 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말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막상 내용물을 들여다보면 권력과 자본만이 자유로운 권리를 향유하며 전횡을 펼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내가 보기에 이 작품 속의 세상은...... , 섹스 못하는 것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개선이 필요한 요소들이 제법 많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럭저럭 사람 사는 곳으로서의 최소 조건은 충족하는 사회주의적 공동체로 보인다(책 날개에 보면 작가의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런 종류의 작품들 속에서 묘사된 온갖 종류의 막장 세상들을 보아 왔고, 건국 이후 반 백 년 세월에 걸쳐 권위주의적 군사 독재와 기업 친화적 경제 구조가 완연히 뿌리내린 한국사회에서 자라온 나로선 이 정도면 무슨 동화 속 세상 같다).

 

정수라의 노래, <! 대한민국>의 가사에서는 한국을 두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우리의 마음 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곳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저것은 이상론이고, 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300만 광년은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 보라. 과연 2014년 현재 한국이 최소한 그러한 이상을 지향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And

http://mirrorzine.kr/index.php?mid=w3_nonfiction&document_srl=8387

 

이번에는 시간이 급박하여 솔까말 좀 대충 썼음. ....그리고 사령관과 백작님은 내가 데려가서 결혼시킨ㄷ.....

And

이전 버젼은 주제 의식 측면에서 아무래도 다소 얄팍한 감이 있다. 이전 버젼의 주제를 한 줄 요약하면 '억압과 공포를 통해 돌아가는 시스템을 확립했다는 부분에 있어 남한이나 북한이나 마찬가지다' 정도가 되겠는데...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양자가 서로 증오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다 강조하고, 화자의 고독감과 절망감이 국가주의로 전화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엮으려면 좀 더.... 좀 더 강한 묘사가 필요하다. 대충 어떤 식으로 묘사하면 될지는 감이 오는데... 내 멘탈이 버텨줄까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내내 '카메라'가 화자의 시점에 맞춰짐으로써 독자의 이입을 유도하는 식이었는데... 지금 생각 중인 장면이 나오면 앵글이 바뀌어 버린다는 문제도 있고. 이를 어쩐다. 

 

+

 

시대 배경이 시대 배경이다 보니 추억돋는다... 내가 오락실에 처음 다닐 무렵에는 파이널 파이트와 캡틴 코만도, 골든 액스가 한참 대세 게임이었고, 연식이 좀 됐지만 서커스나 원더 보이를 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재미를 붙일 무렵 스트리트 파이터2가 동네 오락실을 정ㅋ벅ㅋ했고, 대전 액션 게임이 흥하자 사장님들은 뒤이어 아랑전설과 사무라이 스피리츠를 들여놨다. 다니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뀔 때 즈음 철권과 킹 오브 파이터즈가 나왔고, 중학교 때였던가 캡콤의 던전스 앤 드래곤즈 2탄이 나왔다. 하지만 합평 모임 쪽도 거울 쪽 합평에 나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여자잖아? 오락하던 이야기는 못 할 거야 아마..... 

 

And

소설을 통해 정치적 주제나 정치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가치'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송곳>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만화가 어필할 수 있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대의라거나 시대적 정의 같은 걸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수인이라는- 그저 평균보다 약간 더 정의감 강하고 올곧은 인물을 통해 누구나 일상적으로 접하는 현실의 불의와, 그를 마주한 인간의 두려움, 무력감, 분노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보다 '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특별히 고결하고 영웅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한 없이 야비하고 비굴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난 두 번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테마들에 감동하고, 스스로 그런 테마들을 그려내고 싶어하는 거다.

 

최규석 씨는 네이버에 <송곳>을 연재하기로 한 이유로 '어린 독자들이 보고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끔 하기 좋아서'라고 말했다. 훌륭한 이유다. 하지만, 나는 오직 '두 번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그 이유 뿐이기에- 즉 쓰는 나 자신을 다잡고 채찍질하기 위해서 소설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뿐, 이로서 사람들을 바꿔 놓을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어필할 만한 설득력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가 없다.

 

 

그 간극이 끔찍하리만큼 먹먹하다.  

And

 

빨간색 괴물()

 

*동화인 줄 알았는데.... ....속였구나!

*풍자로 읽어야할지, 진지한 사회 소설로 읽어야 할지, 어떤 식의 독법을 적용해야 할지가 불분명하다.

*시대상이 불명확함.

*작가의 계몽적 의도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이 좀 있어서 읽으며 약간 불편했다

*독자층을 명확하게 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종종 10살 먹은 소년이라는 서술자의 시점에 맞지 않는 문장이나 표현이 있다.

*~~했어요 식의 종결 어미가 좀 부자연스럽다.

*철수의 시선에 일관되게 이야기의 시점이 맞춰져 있어야만 철수의 변화가 의미가 있을 듯

*서술자가 10살 아이답지 않다. 어른들의 행동을 전부 꿰고 있잖아! 병원에서 스피커폰으로 간호사를 부른다거나 하는 것도 어른의 행동방식이지 아이의 행동방식이 아니다.

*철수가 선생님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과정이 너무 길다. 초반 설명이 너무 긺. 독자는 이런 거 충분히 알 수 있으니 진도를 좀 더 빨리 빼줬으면 싶다.

*선생님에게 엄마의 이미지를 전치시켜 철수의 외로움을 부각하는 과정이 그렇게 절실히 필요한 것 같지 않다

*선생님이 철수에게 밥상을 차려 주는데 미역국이라도 끓여 주지! 그냥 택시만 떨렁 잡아 철수를 태워 보낸다는 것도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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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 예술대상에 이거 완성해서 보냈는데 떨어짐. 아슬아슬하게 검열 기준에 걸릴까 말까 하는 작품을 뽑는다는 취지에 비해, 이 글은 불온한 블랙 유머가 없어서 아마 안 될 거야... 싶긴 했다. 최소한 겉으로는 일단 메르헨의 외피를 뒤집어 쓰고 있는데, 동화답지 않은 어법이 너무 많기도 하고. 영 부족했다 싶은 부분을 증보해서 쓰고 있는 중이긴 한데 이야기가 저 혼자서 너무 침울해지고 있다(....) 내 잘못이 아니야, 이 글은 그렇게 쓰여질 운명이었을 뿐이야(..........)

 

부활절인데 정작 나는 죽어나는 기분이다. 날씨 더럽게 좋네 시부엉...

 

PS=공룡이 안 나와서 문제였던 걸지도 모른다.

 

 

And

골계미랄까, 해학이랄까.... 그런 게 부족해서, 아마 안 될 거야.... 싶긴 한데 일단 완성해서 보내놓긴 했다.

 

기본 구상과 주제만은 그럴싸한데 그게 이야기로서 형상화가 잘 안된다거나, 초반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진이 빠져 버려 중반 이후로 급격히 맥아리가 없어진다는 게 내 소설의 고질적인 약점이다. 이번에도 그런 내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듯하다. 심사위원진도 화려하고, 공모 주제도 마음에 들어서... 제법 공들여 썼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다-_- 호러 장르를 좋아하긴 하지만 직접 써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너무 모험을 하지 말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객관적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먹히겠다! 까진 아니어도, 나 자신이 현재 수준에서 이르를 수 있는 극한의 역량을 짜내어 썼다는 자각이 드는 소설을 쓴지 너무 오래 지났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소설 따위 관두고... 이번에는 비정규직으로 전전할 생각 말고 제대로 준비해서 번듯한 직장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다시 밀려온다. 약 값도 필요한데...

 

...3개월이다. 앞으로 3개월만 죽어라 써보고, 그 때까지 뭔가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면 관두자. 

And

*너무 날 것이다. 이야기가 아니라, 제시되는 사상들이 너무 낡았다. 이광수의 <무정> 같은 계몽주의 소설스러운 느낌.

*이반 파트와 존 파트 간의 무게중심이 맞지 않는다. 구성이 잡히지 않고 되는 대로 썼다는 느낌. 상징 또한 너무 애매하다. 서사 전체를 관통하는 확고한 이야기가 부재하고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감이 있다. 새로운 거라곤 관념우주라는 설정 뿐인데 그게 형상화가 부족하다.

*미메틱 포머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다.

*소재가 흥미로움. 상대의 정신에 침투해 가치관을 바꿔놓는다는 설정 자체는 흔한데, 이런 식으로 쓰인 건 본 적이 없다.

*낯선 개념들이 많다 보니 진입장벽이 좀 높다. 사상적인 문제도 그렇고.

*이반이 코트를 벗어줬는데 그 애가 이미 죽어 있더라... 같은 장면 같은 건 좋았다

*소재만 유지하고,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해 이야기를 새로 써야하지 않을까. 현재로서는 관념우주가 어떤 공간인지 설명하는 내용 뿐이다. 이야기 내의 설정으로 녹아 있어야 한다

*소소한 고증 오류. 우주공간이 검어 보이는 이유가 잘못 설명되어 있다

*이반의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다. 완전히 그 이념을 숭상한다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동질감을 가진 인물 같음

*관념 위주의 소설이라고 해서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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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되는 사상이 낡았다는 지적은 좀 포인트를 못 잡았다고 여겼는데... 이 글을 쓰면서 염두에 둔 건 새로운 정치 사상을 구상해 제시하는 게 아니라 '미메틱 포머라는 장치를 통해 사상의 개변이 일어나고 새로운 이념이 성립하는 것이며, 그러한 이념들은 어디까지나 미메틱 포머를 조작하는 인간(특히 지배층)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가공된 것일 뿐 무슨 신의 섭리나 절대적 진리 같은 게 아니다'라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쓰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도 존이 숲을 쇼핑몰로 바꾸는 장면이었고. 그걸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반론은 안 했는데 기분은 좀 그렇긴 했다(....) 

And

미합중국 출범에 걸림돌이 된 민주주의

 

연방헌법이 인디언 부족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기 위해서는 연방정부와 주 정부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 간의 권한 배분을 규정한 연방제 민주공화정원리는 미국 정부와 인디언 부족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1776년에 독립을 했지만 미국이 연방국가 체계를 갖춘 건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였다. 주 헌법을 가진 각 주가 실질적으로 통치권을 행사했고, 연합정부는 각 주를 대리해 외교권을 행사하는 대표부 정도에 불과했다.

 

주 사이의 교역을 규제할 권한이 연합정부에 없는 바람에 상거래가 통일되지 않았고, 주마다 자기 필요에 의해 개별 정책을 펼치곤 했다. 통상에 관한 조약을 외국과 체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부 주의 교역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미시시피 강 항해권을 별 이해관계가 없는 북부 주의 대표가 포기해버려 큰 마찰을 빚기도 했다. 여러 주에서 화폐를 남발하는 바람에 재정이 붕괴되었고, 급기야 1786년에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세금과 빚의 지불 연기를 요구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강력한 중앙정부의 출현을 주장하는 이른바 연방파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연방파는 비교적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과세권 문제부터 건드리기 시작해 연방행정부와 대통령의 권한으로까지 논의를 진전시켰다. 여러 차례 진통 끝에 제헌의회는 18879월 최종적으로 연방헌법을 완성했다. 이제는 헌법을 비준하는 일만 남았다. 13개 주 중에서 9개 주가 비준하면, 연방정부가 성립하는 것으로 규정을 고쳤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소규모 자작농은 물론이고 대지주까지도 연방정부의 과세를 두려워했다. 연방헌법이 발효되면 연방정부는 전제군주와 같은 힘을 소유하게 되어, 자기들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하고 군대를 동원해 국민을 꼼짝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영국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혁명을 일으켰는데 권력의 분산이라는 혁명의 성과를 연방정부가 무시하는 게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 미국인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 가까이서 공공집회를 열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국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미국인의 태도는 민주주의 이념과 맥이 닿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공동체의 큰 틀을 인민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원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미국 독립 직후에 통용되던 민주주의 이념은 직접 민주주의를 지칭하는 용어로, 요즘 우리가 민주주의 하면 떠올리는 대의제(간접) 민주주의는 아니었다. 18세기 후반까지는 민주주의라고 말하면 직접민주주의만을 가리켰다.

 

그런데 대중이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민주주의 원리는 미합중국 출범에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13주 국가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면 미합중국이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이 되어야 하는데, 민주주의의 자연적 한계는 미국의 확장에 발목을 잡을 여지가 많았다. 루소 역시 <사회계약론>에서 민주정은 국민 모두가 한 곳에 쉽게 모일 수 있고 서로 다 알 수 있는 아주 작은 국가를 전제로 한다고 적었다. 민주주의는 넓은 시장과 많은 교역을 전제로 하는 거대한 국가에 어울리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미합중국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이념이 있어야 했다. 이렇듯 절박한 형편에 놓인 연방헌법의 기초자에게 안성맞춤의 이데올로기가 제시되었는데, 바로 공화주의였다.

 

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요즘은 공화주의를 민주주의와 결부시켜 사용하고 있지만 이 둘은 다른 차원의 이념이다. 그러면 공화주의의 실체는 무엇일까?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공화주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정부 형태가 어떤 것이든 간에 법에 의해 지배되는 모든 국가를 공화국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법에 의해 지배될 때 비로소 공공선이 우위를 차지하고, 공적인 것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공화주의에 대한 루소의 해석은 공적인 것혹은 공공선을 뜻하는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서 공화주의(Republicanism)라는 용어가 유래한 사실과 맞닿아 있다. 공화주의의 특징에 대해서는 대체로 자의적인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시민의 자치적 참여 등을 핵심으로 꼽고 있다. 개인의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는 관련이 깊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는 자신의 주요한 원리, 특히 절대 국가에서 반대하면서 제한 국가를 옹호하는 원리를 공화주의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공화주의적 관점을 잃어버렸다. 법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둘은 서로 달랐다. 모든 법은(타인의 자의에 예속되는 것을 막으려는 비자의적인 법조차도) 어쩔 수 없이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는 자유주의자와는 달리, 공화주의자는 그러한 법이 자의적 권력과 예속의 중압을 경감시켜준다면 어떤 엄격한 법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공화주의는 자의적 권력에 의한 자유의 제약은 거부하지만, 공공선에 의해 자유가 제한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공적인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대체로 공감하는 공공선이 존재하고 이러한 공적인 것이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려면, 법으로 형상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가 있는 사회에서는 국가의 법이 아닌 사회의 법이 실현될 공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공공선이 국익의 위세에 자꾸만 밀려난다. 그러다 보니 공화주의 이념은 겉보기만 화려한 담론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미합중국 수립 과정에서 공화주의가 한 역할이 바로 이랬다.

 

민주주의, 공화주의와 결합하다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일한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념이 아님에도 연방헌법 기초자는 공화주의를 민주주의와 같은 평면에 대립항으로 놓고 양자를 비교했다. 연방헌법 초안 작성에 관려한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존 제이 등이 함께 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에는 민주정과 공화정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두 가지 있는데, 공화정에서는 전체 시민이 선출한 소수의 대표에게 통치권이 위임되고, 시민의 수가 늘어나고 영토가 커지더라도 공화정은 그에 맞추어 확장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건국 초기의 지도자가 공화주의 이데올로기에 매력을 느끼게 된 주된 이유는 주 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연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자신들의 필요에 공화주의가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화주의는 전제정치와 상반된 이미지를 가졌으면서도 모호한 내용으로 되어 있어 입맛대로 각색하기 좋은 이념이었다. 연방헌법 기초자들은 통치 범위를 확장하면 당파나 이해관계가 한층 더 다양해져서, 다른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만큼 다수파가 공통의 동기를 가지는 것이 어려워진다며 큰 정부를 선택해야 하는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바람직한 정부 형태인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큰 규모의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주의 권한을 연방정부에 양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케케묵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해서 공화제의 외투를 뒤집어 쓴 미합중국이 탄생했다. 반면 민주주의는 전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연방헌법 제정 과정에서 헌법 본문은 물론 전문에서조차 민주주의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처럼 뒷전으로 밀려났던 민주주의는 언제 다시 무대 위로 등장했을까?

 

왕정이 근대적 국민국가로 탈바꿈하는 시기에 왕권에 대응하는 의회를 확립하고 군주 주권과는 다른 국민 주권을 정립하는 데 공화주의는 큰 몫을 했다. 그런데 공화주의는 근대국가의 이데올로기로 채택되기에는 큰 약점이 이었다. 국가의 외형을 키우는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확대된 규모에 걸맞게 중앙정부의 권한을 늘리는 데는 그리 신통치 못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매력적인 정치 이념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인민은 정치적으로 평등하게 대우받길 원했다. 정치 참여에 대한 요구를 국가권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길들이는데 인민에 의한 통치라는 이데올로기는 효과적인 장치가 될 수 있었다. 다만, 사전에 조율할 게 있었다. 민주주의란 인민이 직접 참여한느 방식의 정부 형태라는 등식을 지워버려야 했다. 이러한 필요는 그대로 현실에 반영되었다. 인민이 직접 참여하면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일느바 그리스 시대의 고전적 민주주의는 순수 민주주의라 불리며 실제 정치 세계에서는 발붙이기 어려운 강학 상의 정치체제로 오그라들었다. 그러고는 그 빈자리를 지금의 우리가 흔히 거론하는 간접민주주의가 채웠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나자 더 이상 권력을 행사하는 통치자 수라는 잣대로 민주주의를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선거권의 확대, 기회의 균등 등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1820년대 미국 사회에서 통용되던 민주주의란, 인민에 의한 직접선거를 의미하는 정치적 범주를 넘어 그 이상의 가치와 요소를 포함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주의였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바뀌면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접목이 이뤄졌고, 이렇게 해서 민주공화정은 지금의 우리 귀에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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