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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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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만이 희망이다'

장례식 참가 문제 때문에 어머니와 잠시 말다툼을 한 뒤 그냥 혼자 가기로 하고는 사촌들 차 얻어타고 대구에 가서 상 치르고 돌아왔다. 간만에 고종사촌 동생들도 만났는데, 1명은 거의 10년 만에 봐서 처음엔 잠시 못 알아봤다. 

 

아버지를 만나면 늘 화가 나고, 한편으로는 내가 아직도 아버지에게 의존하는 부분이 있구나 싶어서 마음이 복잡하다. 시골집 땅 관련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모양이라 그것도 신경 거슬리고.

 

화장장에서, 관을 쓰다듬으며 흐느끼는 고모부를 바라보며 나는 느끼지 않을 슬픔이라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사촌 여동생이 남편 곁에 붙어 서 있는 걸 보며, 그 역시 나는 느끼지 못할 위안이라는 생각을 좀 했다. 난 사람이 싫고, 혼자 살다 죽기를 원하기에.

 

심난한 2박 3일이었지만, 그래도 고모님의 영혼이 신 안에서 안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And

마지막으로 '기쁘다'고 느낀지 10년이 넘었다. 이제 와서 새삼 다시 그런 감정을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혼자 견디며 살다 죽을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And

 

문재인이, 박근혜 사면을 발표했다. 나야 애초에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별 호감은 없었다. '개중 괜찮은 편이고, 코로나 방역도 이 정도면 잘 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보수 대통령' 정도의 인식이기도 했고, 원래 내가 특정 정치인에게 딱히 개인적 호감을 갖고 지지하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렇기에 딱히 엄청나게 배신감이 들거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5년 전의 그 겨울밤들이 생각나서 초 하나 사왔다.  

 

그 나날들 중 하루는, 그런 일이 있었다. 촛불집회 나가려고 안국역 가는 지하철을 타고, 구석 자리에 앉아서 준비해 온 플라스틱 컵과 플래시, 그리고 비닐봉투를 꺼내 부스럭대고 있었더니 옆에 앉으신 아주머니 한 분이 뭐하고 있는 거냐고 여쭤보시더라. "이렇게 해서 이렇게 만든 뒤 플래시를 켜면 횃불처럼 보여요^^;" 하고 설명드리니까 웃으시면서 수고하라고 하시더라.

 

굉장히 기분이 더럽지만 그 날들의 기억은, 나 자신에게 있어서만큼은 무가치하지 않다. 차기 대통령이 이재명이 되건 윤석열이 되건, 그 가치는 누구도 내게서 빼앗아가지 못한다. 

 

And

학창 시절, 사랑했던 선배가 나왔다. 그립지만, 좀 씁쓸하다.

 

행복하게 잘 사시기를. 그거면 됐다. 

And

사람은 결국 사람을 믿고 기대가며 살아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그저, 내가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난 혼자 살다 혼자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길 원한다. 

And

11월 23일, 90세의 나이로 전두환이 뒈졌다.

 

노태우 국장 결정을 두고, 인터넷 상에서 전라도 광주 출신이라는 어떤 사람이 문재인 정부의 판단을 실드치며 '전노 군사독재에 제일 큰 피해를 입은 광주에서도 이 정도면 ㅇㅋ라고 납득하는 분위기다' '솔직히 타 지역 출신이 에바터는 거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글을 봤다. 하지만 별로 동의할 수 없는 게,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라인이 저지른 죄는 특정 지역민에 대한 학살과 차별만이 아니라, 한국의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박정희에게 죽을 뻔했지만 미국 도움을 받아 살아남고 훗날 용서와 화해의 의지를 표시하셨던 건 개인적인 레벨에서는 미담일 수 있어도, 군사독재의 피해자가 본인만 있는 것도 아닌 이상 여전히 실책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한국의 민주주의는 영웅적인 개인의 업적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이뤄낸 성취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노태우를 국장 치르기로 결정한 것 역시 문재인 정부의 과오로 남을 것이다.

 

전두환에 대해선 뭐...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감옥에 가지 않을 거, 한 10년 쯤 고통받다가 뒈지길 바랐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그것만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다행히 이번에 전두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결정됐고, 군바리들이나 몇몇 극우 유튜버, 국혐당 내에서도 소수 의원들이나 조문을 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여전히 난 불길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박근혜가 감옥에 갔을 때, 이제 군사독재와 그 부역자 빨아제끼는 패거리들은 더 이상 힘이 없고 이명박으로 상징되는 탈이념적, '실용적' 탐욕과 이기심만이 대한민국의 가장 큰 적이 되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범람하는 현재 시점에서 보자면 그 '실용적' 탐욕과 이기심은 얼마든지 군사독재로 상징되는 억압적이고 가부장적인 '힘'에 대한 욕망을 구체화할 그릇으로써 그 망령을 다시 무덤에서 불러낼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국혐당으로 대표되는 구 한나라당 계열 정당에서도 소장파(이준석 등) 의원이나 관료들은 최소한 군바리들과는 선을 긋고 싶어하는 모양이지만, 난 그들의 의지력을 믿지 않는다. 애초에 국혐당 쪽에 가 있다는 거 자체가 문제고, 민주당을 꺾기 위해선 얼마든지 강령술에 손을 댈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하튼.... 근현대 한국사의 헤게모니 대부분을 장악해왔던 군사독재의 수괴라고 할 만한 놈들은 이제 어제자로 다 죽었다. 그 망령들을 다시 불러내는 걸 막는 것은 산 자들의 몫일 것이다. 그들에게 희생당한 광주 영령들을 비롯해, 민주화 과정에서 억압받고 고문당하고 죽어간 이들의 영혼이 이젠 편히 안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마침, 어제 광주 시청 위에는 무지개가 떴다. 

 

http://www.kukinews.com/newsView/kuk202111240073 

 

"전두환 떠난 날, 광주에 무지개 떴다"…온라인서 목격담

트위터 캡처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사망한 가운데 광주에서 무지개가 떴다는 목격담과 사진이 온라인에 잇달아 올라왔다. 누리꾼들은 5·18 광

www.kukinews.com

 

And

쿠데타와 인권 탄압에 대해 립서비스성 사과는 하겠지만 법적인 처벌은 가능한 안 받겠다던 그 분이 마침 기억하기도 좋게 탕탕절에 갔다. 더 길게 고통 받다가 죽지 않은 점은 아쉽긴 하다. 뭐 전두환이라도 그렇게 되길 빌어야지. 여튼 띵복을 액션빔. 

 

내 멘탈 상태도 요즘 많이 안 좋지만 오늘은 일단 축하할 만한 날이다. 마침 탕수육이 좀 남았으니 한 잔 하자. X를 눌러 JOY를 표한다. 

And

반가워하는 꿈을 꾸다가 깼다.

 

 

지금도 여전히 그 친구들이 그립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만나게 되면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기엔 나 자신이 너무 많이 변했다.

 

이런 삶도 있는 거려니 한다. 하지만 가능하면 빨리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고 싶다. 

And

꿈에서, 학창 시절 사랑했던 분을 봤다.

 

이제 나는 그 사람과의 연이 없음을 안다. 아마도 지금쯤 그 분은 다른 남자와 맺어져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디, 그러길 바란다.

 

아직도 혼자시고 만에 하나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지금의 난 굳이 그 분과 사귄다거나 하고 싶지 않다. 그런 걸 바라기엔 내가 너무 많이 변했다. 이제 나는 사람이 싫고, 그저 혼자 살다 혼자 죽기만을 원한다. 

 

 

그래도 오랜만에 봐서 좋았다. 부디 내 꿈에서의 그 아름다운 모습 이상으로, 당신의 현실을 행복하게 잘 사시길.

 

And

자신이 한 노력(열심히 공부해서 명문대 졸업장 따는 것)만을 '올바른 노력', 결과적으로 그와 충돌하게 되는 다른 방향의 노력은 전부 '잘못된 노력' 내지는 '노력 아닌 것'으로 규정해서 배제하면서도 그런 자신은 어디까지나 올바르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자의식을 유지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런 욕망이 없다면 이것이 진짜 공정이며 정의라고 금칠해가면서 갸아악 구와악거릴 필요도 없다.

 

And

불현듯 부끄러운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가 그 때 좀 더 절제했다면, 적어도 그 분과 평범한 친구 사이 정도로는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다가 그 후에 내가 겪은 일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됐어도 결국 좋게는 안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괜찮다, 이런 삶도 있는 거다.

 

 

그러나 애초에 모래알이나 바람이나 빗방울 같은 걸로 태어났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비록 이렇게 됐지만, 그래도 한 때 사랑했던 그 분은 부디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내가 두 번 다시 연애 같은 거 할 일이 없을 거라는 점이 다행스럽다. 

 

 

And

일단 차별주의자들은 제끼고, 그 외의 사람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비판하는 주된 논지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선 외면한 채 겉으로만 깨어 있고 올바른 척하는, 1세계 백인들(특히 미국 리버럴들)의 자기만족적 위선'이라는 건데 그 말도 나름 일리가 없지는 않다. 미국에서 흑인을 '블랙' 대신 '아프로 아메리칸'으로, 미국 원주민을 '인디언' 대신 '네이티브 아메리칸'으로 호칭하는 것도 이전에 비해 용어 자체의 차별적 뉘앙스는 확실히 옅어졌지만 정작 흑인들이나 미국 원주민들 의견은 안 묻고 백인들이 알아서 결정한 거거든. 흑인 입장에선 아프로 아메리칸이란 단어가 노예로 끌려와서 내내 차별에 저항해 온 역사적 맥락을 삭제한 밋밋하고 기계적인 표현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 의견도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봤을 때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대기업 경영자나 대형 언론인, 고위 관료, 선출직 공무원이 아닌 공장 나가는 옆집 김씨나 택시 모는 앞집 최씨, 편의점 점장인 뒷집 박씨, 고시낭인인 윗집 이씨는 애초에 개인 단위에서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여성 차별이나 동성애 혐오에 반감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과는 별개로 난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범속한 소시민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렇다면 적어도 소시민의 입장에서, 여자들 앞에서 '남자가 역차별 당한다' 같은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일상적 레벨에서 개인이 스스로를 규율하는 최소한의 기준은 되어줄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 자체를 경계해야 할 때는 오직 그 자체를 명분 삼아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쓰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류가 되었을 때 뿐이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선 그런 자들도 물론 있지만, 아직 그 정도 레벨은 아니다(애초에 그런 사람들이 주류가 될 정도라면 도덕적 명분을 강조하는 것 자체가 힘이 없어진 사회라는 뜻이다). 내가 보기엔 인간이란 원래 그런 자기만족적 위선이라도 스스로 만들어 내어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않으면 짐승보다 나을 게 없는, 근본적으로는 우리 집 고양이보다 딱히 고귀하거나 특별할 것 없는 생물이다. 그리고 나는 인간이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별로 가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휴머니스트가 아니다.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다.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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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 내가 사람을 싫어한다는 걸 깨달았다. 남을 해치기 전에 스스로를 해치는 게 역시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아침부터 참 상쾌하고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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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출판사가 요즘 말이 많은 곳이라서 선뜻 홍보하기가 영 좀 그렇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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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은 대동맥 박리. 향년 54세.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2217346

 

베르세르크 작가 미우라 켄타로 눈물의 후기들 : 클리앙

1993년 14호 7월로 27살. 되돌아보면 만화로 점철된 27년. 이대로 괜찮은가? 2000년 1호 게임샵에서 베르세르크 체험판에 열중중인 소년이! 그 뒤에 도키메키메모리얼2를 들고 있는 내가! 잉여인간이

www.clien.net

예전에 이 후기 봤을 때는 웃겼는데 이젠 웃지 못하겠다. 이 만화의 주제는 '인간이 운명에 저항할 수 있는가?'였는데, 결국 검은 날개 페무토로서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인 그리피스와 그의 운명을 완성하기 위한 수많은 희생양 중 하나로 끝났을 뻔한 운명을 거부한 가츠의 대립은 결말이 이뤄지지 않게 됐다.

 

 

 

 

제 10대의 일부를 차지했던 의미 깊은 작품을 그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우라 켄타로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  

And

현역 시절 복무했던 부대 이름을 검색해봤는데, 몇 년 전에 없어졌다고 한다. 현실에서의 그 부대는 없어졌지만, 내 악몽 속에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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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는 필연이자 인간이 처음으로 대면하게 되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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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980033.html

 

‘극단적 선택’이란 말의 공허함…그는 마지막을 ‘선택’하지 않았다

[토요판] 김도훈의 낯선 사람① 스텔라 테넌트80년대 슈퍼모델의 시대 저물고90년대 ‘시대의 얼굴’로 떠올라미니멀리즘 패션 구현 앞자리성마른 패션계에서 30년 ‘장수’건조한 세련됨 나를

www.hani.co.kr

 

나 역시, '죽고 싶다'가 아니라 '죽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시도했고, 실패했었다.

 

그 후로 제법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언제나, 맛있는 걸 먹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재미있는 걸 보며 웃고 있을 때도 항상 머릿속 한 구석에선 '다 됐고 그냥 죽을까' 라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지금도. 

 

그렇군, 스텔라 테넌트라는 모델이 있었구나. 

And

좀 더 사적인 감정 쪽은 블로그 쪽에 토로하곤 한다. 내가 이러고 있는 건, 사람이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유치하고 모순적인 욕망을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까지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그것도 너무 길었다는 생각이 든다. 슬슬 블로그 터뜨릴 때가 온 걸지도 모른다.

 

다시 한 해가 저물고 있고, 죽을까 하는 생각이 부쩍 자주 든다. 

 

 

And

짜증나는 추석이었다. 뒤늦게 오늘이 생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알게 뭐야 젠장. 

And

옛날 메일이나 좀 정리해볼까 싶어서 옛 네이버랑 다음 메일함 들어갔다가 내상 입었다. 이제는 연락이 끊긴, 옛 인연들이 거기 남아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10년이 더 지난 이제는 날 거의 잊었을, 내 딴에는 나름 어느 정도 가깝다고 여기고 좀 더 친해지고 싶어 서툴게 노력했던 인연들.

 

 

난 혼자 견디다가 죽어야만 한다. 그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고통스럽다.

 

 

부디 그들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립다.

And

교회 문제로 어머니와 크게 다퉜다. 제기랄. 

 

이유는 달랐지만, 아버지와는 이미 거의 절연한 상태다. 어머니와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고양이와 놀면서 계속 그 생각을 반복했다. '고양이는 좋아. 하지만 난 죽을까 싶어.' '우리 고양이는 예쁘고 착해.' '역시 죽을까?'

 

 

And

좀 가볍고 무난한 이야기는 그 쪽에 하는데, 그래도 종종 쪽지 같은 걸로 억눌러 둔 감정을 풀고 싶다는 욕구가 들곤 한다.

 

난 견뎌야 할 필요가 있다. 

And

어머니를 만나고 오면 늘 기분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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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등의 말들이 개소리만도 못한, 아무 의미도 없는 공기의 진동에 불과하다는 걸 진정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삶이 좀 덜 고통스러워진다. 물론 삶의 기쁨에도 둔감해질테지만, 기쁨을 느끼지 못해도 견디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고통이 너무 크면 그렇지 않다.

 

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