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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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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27
    <사바하> 봄-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하니
  2. 2020.01.09
    오랫동안

당연히 스포 많음. 전에 이미 재미있게 봤었지만 아무래도 좀 의아한 구석이 많았는데, 어젯밤에 OCN에서 틀어주길래 재주행하고 생각을 정리해 봤더니 이제서야 아다리가 좀 맞는 것 같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불교에는 악이 없다, 파순이니 마라니 하는 건 인간의 삶에 대한 집착과 욕망을 형상화한 것 뿐"라는 대사였다. 불교 교리에 비쳐보면 그 대사 자체는 맞는 말이지만 김제석이 처음에는 진짜 성인이라고 할 만한 존재였다가 타락한 것이었다면 그 이후에 김제석이 하는 일들 역시 불교 교리를 잘 모르는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쉬운 악행이라기보다는 그저 인간의 깨달음을 방해하는 다른 무언가여야 앞뒤가 맞는다. 

불교에서는 '부단한 수행을 거쳐 올바른 깨달음을 이룸으로써 속세에 대한 모든 미련과 집착을 떨쳐내고 윤회전생과 생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의 핵심은 저 '속세에 대한 모든 미련과 집착'은 재물욕이나 권력욕 같은 건 물론 부모에 대한 효도나 이웃에 대한 친절, 친구 간의 우애, 사회적 정의 같은 보편적으로 긍정적인 가치 역시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만일 내가 시나리오 작가였다면 네충텐파의 예언을 듣고 타락한 김제석이 그런 긍정적인 가치를 행함으로써 세간에서 존경받지만 그를 통해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오욕칠정과 속세에서의 삶에 집착하도록 만들었다는 식으로 묘사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대중적으로 어필할 만한 스토리는 아니긴 하다-_-) 정작 작중에서 김제석은 사천왕의 이름을 가진 네 제자들을 시켜 자신이 태어나고 100년 후 영월에서 태어난 여자아이들을 다 찾아 죽이라고 명령하고 그것이 악을 물리치는 방법이라고 정당화했다(즉 누가 봐도 명백한 악행을 저질렀다).

처음엔 그게 혼란스러웠는데, 다시 보니까 김제석이 처음 귀의했던 밀교 종파에서는 '불로불사를 이루는 것을 성불로 취급했다'는 대사가 있었다. 그걸 보니 비로소 뭔가 아귀가 맞춰지는 것 같더라.

불교의 모태가 된 힌두교에서는 아무리 사악한 존재여도 올바른 방식에 따라 길고 고통스런 수행을 하면 강력한 힘을 얻는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신들의 왕 인드라(한자로는 제석천, 또는 제석신왕이라고 쓴다. 김제석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따온 걸로 보인다)가 그 권위에도 불구하고 수행으로 강한 힘을 얻은 아수라에게 패배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그래도 결국 최종적으로는 인드라가 승리한다). 불교에서도 수행을 쌓는 과정에서 타심통이니 천안통이니 하는 초능력을 얻는다고 가르친다. 다만 그런 건 어디까지나 올바른 깨달음을 이룬 정각자, 부처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일 뿐이므로 초능력 자체에 혹해서는 안 된다는 걸 강조할 뿐이다. 하지만 애초에 김제석이 따랐던 밀교 종파에서는 초능력 자체가 목적이었기에 김제석은 수행을 통해 손가락이 6개가 되고 불로불사를 달성한 순간 자신이 중생을 제도할 미륵이라는 오만에 빠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천황의 스승으로서 권세를 누린 동시에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한 모순된 행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아무 의문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작중에선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며, 이것이 없어지므로 저것이 없어진다'고 표현되는 우주의 섭리에 따라 그런 김제석을 멸하기 위해 태어난 카운터 파트가 바로 금화의 쌍둥이 언니다(후술하겠지만, 후보가 몇 몇 더 있었을지도 모른다). 즉 김제석은 애초부터 잘못된 신앙을 따랐고, 혹독한 수행으로 초능력을 얻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깨달음을 이루지는 못한 것이다. 네충텐파의 예언은 그걸 지적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때 김제석은 자신이 미륵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네충텐파가 예언을 들려주는 순간 그의 눈빛이 변했다고 언급하는 건, 그 순간 김제석이 타락한 게 아니라 자신이 처음부터 그릇되어 있었음을 자각했다는 의미라고 본다). 내가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헷갈린 이유가 이거였다. 난 처음에는 김제석이 진짜 부처나 아라한 바로 아래 정도의 경지에 이른 성인이었다가 타락한 거고 그를 통해 원래는 김제석을 죽이는 뱀이었던 금화의 쌍둥이 언니가 부처가 된 거라고 생각했거든. 

하지만 이미 자신이 성취한 경지에 홀려 버린 것에 더해 작중에서 나한이 말하는대로 그저 오래 살고 싶다는 한없이 세속적인 욕망에 빠진 김제석은 그를 무시하고 금화의 쌍둥이 언니를 '악'으로 규정한다. 원래 불교에는 악이 없지만, 상술한대로 김제석의 신앙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기에 그게 가능했다. 

한편 금화의 쌍둥이 언니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금화의 다리를 물어 뜯어 절름발이로 만들어 놓고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도 자살했다는 언급이 있다. 그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감독의 페이크라고 볼 수도 있지만 서사작법의 관점에서 봤을 때 그런 건 별로 세련된 방법이 아니다. 개인적인 가설은 금화의 쌍둥이 언니 역시도 처음에는 원래부터 사악한 괴물이 맞았고, 진짜 뱀인 김제석을 멸할 '짐승'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는 거다. 즉 금화의 쌍둥이 언니는 처음부터 악으로 태어났다는 나한의 대사도 어느 정도는 진실을 내포하고 있되, 김제석이 네충텐파의 예언을 듣는 순간 자신의 악성을 깨달았듯이 금화의 쌍둥이 언니는 평생 그녀를 두려워하고 미워해오던 금화가 그녀를 죽이려고 농약 섞은 밥을 먹이려다가 마지막 순간 자비를 베풀어 대신 스웨터를 벗어주고 떠나자 창고 바닥을 파헤쳐 라이터(즉, 자신의 불성)을 찾아내고는 부처로 거듭나 예언을 실현시키게 된 것이다. 금화의 쌍둥이 언니를 지키던 뱀은, 석가모니가 수행을 하는 동안 그의 곁을 지켰다는 나가의 왕 무찰린다를 의미하는 거고. 그리고 김제석이 죽은 순간 그의 카운터 파트라는 자신의 숙명적 소임을 다했기에 스스로도 최후를 맞이한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 김제석 같은 존재가 나타나 번뇌에 빠져 세상을 어지럽힐 테지만 비천하고 사악한 존재가 올바른 깨달음에 도달해 부처가 되는 일도 계속 일어날 것이다. 

 

다만 지금도 유감스러운 건... 정작 나 자신은 이 해석이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거. 깨놓고 말해 김제석이 믿었고 나중에 자신의 동방교로 발전시킨 예의 밀교 종파가 처음부터 글러먹었다고 보기보다는 한 때 김제석은 진짜 부처나 아라한의 경지 바로 아래 단계에 도달한 성인이었다가 예언(황야에서 기도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마주한 최후의 유혹 비슷하게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걸 가로막는 최후의 시험)을 계기로 오만과 아집에 빠져 타락했으며 금화의 쌍둥이 언니는 금화의 자비(=불교 최고의 가치)를 통해 부처가 되었다고 보는 쪽이 더 극적이지 않나 싶다. 위의 해석은 그 자비의 의미를 좀 축소시킨달까... 결정적인 역할이라기보단 예언 실현의 트리거(그것도 하찮은 건 아니지만) 정도 역할로 격하시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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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을 미뤄뒀던 소설을 마저 쓸까 싶어서 한글 창을 켰는데 더럭 겁이 나는 건 서글픈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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