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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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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란 무엇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다채로울 수 있다. 요정이 나와야만 할 필요는 없다. 인간이 나오지 않아도 된다. 용이 없어도 된다. 요는 판타지에는 신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신비성은 딱히 스케일이 커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SF에서도 신기하고 이상한 일은 벌어진다. 그럼 SF와 판타지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서 클라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는 유명한 언명을 남겼다. 랜달 개릿의 다아시 경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법은 보편적인 논리와 분석, 계측이 가능하다. 슬레이어즈에서는 마법으로 만든 냉장고와 거대 로봇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둘을 구분하는데 의미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판타지는 환상의 모험담이다. 반면 SF가능성의 세계. 판타지는 뭔가 신기한 일이 일어났을 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신이나 요정이 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SF는 그 에 신경을 쓴다. 판타지는 주로 자연의 경이와 신비를 다룬다. 한 발 더 나아가, 판타지는 과학에 있어 모종의 공포심을 갖고 있다. 판타지의 거두인 톨킨과 루이스는 2차 대전 참전 경력자였다. 톨킨과 루이스는 과학의 소산인 폭격기와 잠수함이 무수한 이들을 죽이는 걸 보았고, 톨킨은 그러한 경험을 살려 반지의 제왕에서 과학기술을 부정했다. SF와 판타지를 반드시 구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둘은 각자의 방향성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 있어 그를 이해한다면 보다 더 훌륭한 SF와 판타지를 쓸 수 있게 된다.

 

세상사가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낄 때 사람은 신과 정령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에 기원을 올린다. 늑대의 경우, 사람들은 가축을 잡아먹고 가끔 사람도 습격하는 늑대를 두려워했다. 누군가가 자신은 늑대의 힘을 빌릴 수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고, 그들은 이후 샤먼이 된다. 그 이후 샤먼은 신정일치 사회의 신왕으로 발전한다(애니미즘에서 토테미즘으로의 전화). 그 이후 다신교 판테온이 성립된다. 다신교 판테온의 신들은 인간보다 강하고 현명하지만 그 욕망이나 성향, 사고방식 등에 있어 근본적으로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신들의 이야기가 신화가 되었다.

 

하지만 신화는 동시에 인간에게 주는 교훈을 내포하기도 했다. 수메르의 여신이었던 이난나는 저승의 문을 통과하며 갖고 있는 것(광채, 옷가지, 장신구 등)을 하나 씩 빼앗기다가 결국 마지막 문을 통과하고 나자 죽어 버린다. 이는 저승에는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교훈이 반영된 것이다(그래서 고대 수메르와 바빌론 문명의 고분에는 부장품이 없다). 신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이러한 절대적인 정의의 개념은 교훈으로서의 신화에서 규율로서의 신화로 발전하여 인간의 도덕관념을 규정하고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대원칙- 즉 유일신 신앙이 성립되게 된다.

 

그렇다면 신화에서 판타지로 어떻게 발달했는가? 판타지는 신화에서 비롯했다. 그렇다면 역으로 판타지를 통해 신화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판타지에는 실로 다양한 갈래가 존재한다.

우선 동화(Fairy tale)가 있다. 동화는 신과 정령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 신화다. 동화에서 중요한 건 어떻게 나무 인형이 말을 하느냐, 어떻게 평범한 아줌마가 작아지느냐가 아니다. 그로 인해 무슨 사건이 벌어지느냐에 주안점을 둔다.

그 다음은 검과 마법 이야기다. 이것은 신이 존재할 수는 있되 결코 직접 나서지 않는 세계에서 인간이나 그에 준하는 이종족이 펼치는 모험담이다. 검과 마법 이야기가 발달하면 할수록 신의 비중은 줄어든다. 신은 인간사에 직접 간섭하기에는 지나치게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초자연적 픽션(Supernatural Fiction)이다. 이것은 인간의 일상에 초자연적 힘이 개입하고, 인간이 그를 막는 이야기다.

그 다음은 슈퍼 히어로 판타지다. 이것은 평범한 일상을 무대로 신적 존재로부터 힘을 얻은 영웅들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다. 초자연적 픽션의 경우, 그러한 초자연적 존재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드라큘라는 주인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안타고니스트다.

그 다음은 다크 판타지다. 이것은 기사도 로망이 사라진 버젼의 검과 마법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검과 마법이라는, 인간들 고유의 힘은 남아 있지만 그러한 인간을 둘러싼 세상 자체가 꿈도 희망도 없다.

그 다음은 도시 판타지다. 삶의 공간인 도시에서 펼쳐지는 신비한 이야기다. 일상의 공간인 도시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대단히 친숙하다. 하지만 여전히 비일상적, 초자연적 요소가 있다.

그 다음은 마술적 사실주의다. 이것은 어른만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카프카의 벌레같은 경우,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잠에서 깨고 나자 벌레로 변해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가 왜 벌레가 되었느냐에 대해선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 대신 그 변화는 주변 사람들의 내면의 추한 욕망과 질시를 자극한다.

그 다음은 역사 판타지다.

그 다음은 신마 이야기/기담이다. 이것은 신화와 전설이 현실과 공존하는 세계의 ’(모험이 아니라)의 이야기다.

그 다음은 차원 이동물이다. 이것은 현실을 떠나 판타지 세계를 오가는 이야기로서 주인공에게 신화적 영웅의 성격이 강하게 부여된다. 오즈의 마법사, 나니아 연대기가 이에 해당한다.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 신화 속의 영웅 전설은, 신명 사상(신의 뜻에 따라 옳고 그름을 결정)에 기반하고 있다. 다른 한 기반은 신은 옳은 자를 수호하기에, 피고와 원고가 결투를 벌여 승리하는 쪽이 옳다는 논리에 입각한 사법 결투다. 왕의 경우, 처음에는 신의 권위에 복종한다. 하지만 지배하다 보면 자신의 욕망을 더 추구하게 되고, 권력의 망자로 타락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의 망자(반드시 타락한 왕 자신이 아니라, 그 왕의 타락을 상징하거나 타락의 결과물인 다른 무언가일 때도 있다)를 타도하기 위해 신명을 받드는 영웅이 탄생한다. 그러한 영웅의 여정(일상->경이의 세계->거대한 대결->보상을 얻고 귀환)을 밟는 것이 그리스 신화적 영웅의 삶이다. 조셉 캠벨이 이러한 영웅의 여정의 기본 도식을 정리했고, 그 이후 영웅의 12단계로 세분화된다(평범한 일상->모험에의 소명->소명의 거절->조언자와의 만남->첫 관문 통과->아군과 적과 시험->핵심부로의 접근->시련->보상->귀환->부활->보상과 함께 귀환). ‘호빗이 이에 잘 부합하며, 약간 변형된 형태긴 하지만 마블 히어로 영화 앤트맨도 이러한 영웅 서사의 도식에 대체로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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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추후 업로드 예정. 


강의 내용에 대한 설문도 좀 했는데 '북팔은 너무 멀어요'라고 쓸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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