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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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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있어 나갔다 돌아오며, 반한 사람과 닮은 사람을 봤습니다. 반한 사람이 떠올라서... ...좀, 그렇더군요.

 

전 스스로가 무슨 사이코패스인 게 아닐까 하는 망상은 안 합니다. 하지만, 제가 제 개인적인 고통과 절망들에 너무 깊이 파묻힌 나머지 남들의 입장과 감정을 잘 헤아리지 못하는 인간이라고는 생각합니다. 그런 경향 자체는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저는 그런 경향이 특히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많이요.

 

그런 문제를 갖고 있는 제가 누군가를 사랑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반한 사람이 이미 남자 친구가 있고, 그 사람에게 있어 저는 생판 남은 아닐 망정 약간의 면식 외엔 어떤 관계도 없는 '그 누군가'에 불과하리라는 게 고통스러우면서도 약간은 다행스럽습니다. 그 사람이 혼자였고, 운 좋게 제게 어느 정도 호감을 가졌고, 제가 어프로치를 하고, 그런 과정들을 거쳐서 좋은 관계가 되었다고 해도... 제가 그런 정서적 문제를 갖고 있는 이상 관계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서로 상처만 주고 받은 채 끝났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점이 조금은 다행입니다.

 

제가 더 이상 人間이 되고자 하는 욕구를 거의 포기한 것도 그 고통과 절망들, 그 실패와 좌절들에 눌려 더 이상 거짓 희망을 갖고 싶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저의 그러한 자기몰입성 때문에 친구로서의, 연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리라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합니다.

 

주여, 고백합니다. 더 이상 人間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주변 사람들이 볼 가능성이 작게나마 있는 블로그를 통해 이런 감정들을 토로하는 건.... 누군가가 동정도 우월감도 아닌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제 안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욕구가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전 압니다.

 

어쩌면 저는 누군가에게 동정을 받고, 그 동정심에 기대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싶은 걸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구심이 들 때면 스스로가 한 없이 추하고 끔찍하게 여겨집니다. 신의도 절조도, 더 이상 가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마지막으로 남은 명예만은 잃고 싶지 않은데, 만일 그조차도 거짓이라면? 제 명예마저도 그저 누군가에게 과시하거나, 혹은 반대로 '온갖 좌절에도 불구하고 명예를 추구하는 나'라는 이미지를 어필해 보임으로써 얄팍한 동정심을 이끌어내거나 허세를 부리고 싶어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좀 더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제 고통과 절망들을 해결해 달라고 빌 마음도 없습니다. 전, 당신께서 그런 일을 하시기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끔 이렇게 푸념도 하고 원망도 하지만, 전 여전히 당신을 섬길 것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전, 역시 그 때 죽었어야 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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